전국시대 초나라에 우맹(優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초나라 재상 손숙오(孫叔敖)가 죽고, 손숙오의 집안은 곧 곤궁에 빠졌다. 우맹이 나섰다. 손숙오의 의관을 걸치고 행동과 말투를 흉내냈다. 가히 ‘인간복사기’였다. 초 장왕도 “손숙오가 다시 살아온 것이냐”며 당장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자 우맹은 ‘아내의 말’이라면서 재상직을 거절한다.

“제 아내가 신신당부했습니다. 제발 초나라 재상은 되지 말라고…. 손숙오라는 분을 보라고…. 재상이 죽으니 그 자손들은 송곳 하나 세울만한 땅도 없어지지 않냐고…. 손숙오처럼 될 바에는 차라리 자살하는 것이 낫다고….” 그제서야 우맹의 뜻을 알아차린 장왕은 손숙오의 자식들에게 400호의 봉지를 내려줬다.



제나라에는 순우곤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어느 날 초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제나라 임금(위왕)이 순우곤을 불렀다. “황금 100근, 사두마차 10대를 줄테니 조나라로 가서 구원병을 요청하라”면서…. 순우곤이 하늘을 우러러 웃었다. 왕이 “왜 웃는 것이냐”고 묻자 대답했다.
“아 글쎄, 어느 농사꾼이 ‘돼지 발 하나와 술 한 잔’을 들고는 이렇게 기도하더라구요. ‘광주리가 넘치고 수레에 가득 차게 오곡이 풍성하게’ 해주소서. 이게 이를 말입니까. 하도 가소로워 웃는 겁니다.”
왕은 조나라에 보낼 예물을 황금 1000근, 사두마차 100대 등으로 늘려 순우곤에게 주었다. 과연 조나라는 10만대군과 전차 1000대를 보냈다.

진시황 때 난쟁이 가수이자 우스갯소리를 달하는 우전(優)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희대의 폭군인 진시황이 연회를 열고 있을 때였다. 마침 비가 억수같이 내려 호위군사들이 속절없이 맞고 있었다. 우전이 지나다가 말했다.
“여러분들, 쉬고 싶죠?” “예.” “그러면 조금 있다가 당신들을 부를 테니 대답하시요.” “예.”
이윽고 연회가 벌어지자 우전이 난간으로 다가가 큰소리 쳤다. “호위병들!” “예!” “너희들은 키만 컸지 무슨 소용이냐. 가련한 친구들같은 이…. 난 키는 작아도 이렇게 방안에 쉬고 있구나.”
희대의 폭군인 진시황도 깨달은 바가 있어 호위병사들을 반씩 쉬게 했다.

이 세 사람은 <사기> ‘골계열전’에 기록된 대표적인 골계가(滑稽家)들이다. 당대에는 죄인과 동일시됐던 데릴사위(순우곤)이거나 가수 출신(우맹·우전)이었던 사람들이다. 키도 왜소하고, 외모도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기지와 해학이 넘치고, 반어법과 풍자가 뛰어났다. 서슬퍼런 군주 앞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세치 혀를 놀려댔으니 말이다.
 
도둑 누명을 쓰고 치도곤을 당한 유세가 장의(張儀)가 혀를 끌끌 차는 아내에게 그랬단다.
“내 혀는 살아있나 봐주겠소?(視吾舌尙在不)”
“혀는 있구려.(舌在也)”
“그러면 됐소.(足矣)”(<사기> ‘장의열전’)
아내는 ‘썩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한비자(韓非子)의 경고는 유명하다.
“용(임금)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타고 놀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목덜이 아래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을 건드리면 사람은 죽는다.”
제 아무리 임금의 사랑을 받는 유세·골계가라 해도 절대 ‘역린(逆鱗)’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기지와 해학 넘치는 반어법과 풍자로 시대를 풍미했다. 골계가의 한마디에 제 아무리 폭군이라도 웃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으니….
 
1974년 전국 12웅의 하나인 중산국의 왕릉에서 흥미로운 유물이 발견됐다. 지금으로 치면 개그맨이나 코믹배우가 동물과 함께 공연을 펼치고 있는 철제촉대(사진)이다. 역사서를 보면 “중산국은 밤새도록 넋을 잃고 음란하게 노래부르며 놀며, 미색의 남자들이 창우(倡優)가 된다”고 기록돼있다. 중산국은 “밤새도록 음주가무에 능한”(<삼국지>·‘위서 동이전’) 동이족의 일파가 세운 나라이다.
 
그러고 보면 철제에 표현된 남성은 한 무제 협성률(協聲律·음악장관)이 된 이연년(李延年)의 선조는 혹 아닐까. 대대로 노래와 춤에 능했던 이연년이 중산국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사마천도 대단한 사람이다. 지금으로 치면 ‘개그맨 열전’을 역사서에 당당히 기록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마천이 이들을 사서에 올린 이유는 분명하다.
“천도는 넓고 넓다. 은미한 말 속에서도 이치에 맞는 것이 있어 이것으로 얽힌 것을 풀 수 있다.(天道恢恢 談言微中 亦可以解紛)”
 
요즘 ‘사마귀 유치원’이나 ‘비상대책위원회’ 같은 풍자개그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서슬퍼런 임금 앞에서 대놓고 풍자개그를 날리는 2000년 전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TV를 통한 풍자마저도 못마땅하게 여겨 생겼다 없어졌다를 반복하는 신세이니 말해 무엇하랴.
 
또 하나. 고 배삼룡·이주일씨 등 작고한 코미디언은 물론이고 유재석이나 최효종·김원효 같은 개그맨들도 <애정남>의 말처럼 참으로 ‘애매한 시대’를 타고 났다. <애정남>은 그럴 것이다.
“참 애매합니다~이. 2000년 전 태어났다면 역사서에 이름 석자 올라갔을텐데 말입니다~이.”
그러고 보니 중산국 창우의 얼굴이 안경 안쓴 최효종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이기환 문화·체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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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