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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책골 선수 피살, '광란의 범죄'

 “자살골에 감사한다.”
 1994년 7월 2일(현지 시간) 새벽 3시,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인의 한 클럽 주차장에서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다. 괴한들이 축구대표 수비수 안드레아스 에스코바르를 에워싸고는 ‘자살골, 고맙다’고 비아냥대면서 6발의 총탄세례를 퍼부었다, 괴한들은 한발씩 쏠 때마다 ‘골, 골, 골, 골, 골, 골’이라고 외치며 저주를 퍼부었다.
 비극은 94미국 월드컵 무대에서 잉태됐다. 발데라마와 이기타 등 걸출한 스타들이 축을 이룬 콜롬비아는 남미 예선에서 전통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5-0으로 대파하는 등 역대 최강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축구황제 펠레는 “브라질보다 더 브라질다운 축구를 하는 팀”이라면서 콜롬비아를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았다. 이 예언이 바로 ‘펠레의 저주’를 연 서막이었음을 간파한 이는 없었으리라. 콜롬비아는 첫판부터 ‘발칸의 마라도나’ 하지가 이끄는 루마니아에 1-3으로 덜미를 잡혔다.

 

 ■“다 죽이겠다“
 6월 23일 미국과의 2차전에서 파국이 일어났다. 전반 33분 미국 존 하크스가 콜롬비아 문전으로 낮은 크로스를 날렸다. 콜롬비아 최고 수비수 에스코바르가 사력을 다해 넘어지며 걷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에스코바르의 발에 맞은 공은 속절없이 콜롬비아 골 안으로 굴러갔다. 에스코바르로서는 생애 첫 자책골이었다. 콜롬비아는 이 자책골이 빌미가 되어 1-2로 패했다. 마지막 3차전에서 조 선두를 달리던 스위스를 2-0으로 꺾었지만 만사휴의였다. 우승후보에서 예선탈락으로 급전직하한 것이다. 콜롬비아의 국내 분위기는 불길했다. “다 죽이겠다”는 경고메시지가 폭주했다.
 몇몇 선수들은 귀국을 꺼렸고, 프란시스코 마투라마 감독은 아예 에콰도르로 도피했다. 정작 자책골의 장본인인 에스코바르는 ‘쿨’하게 귀국의 길을 선택했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7월 5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이 사건은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미국과의 2차전 패배 직후 마약 갱단인 메데인 카르텔이 “귀국하는 선수들을 죽이겠다”고 여러 차례 협박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메데인 카르텔은 한 때 세계 최대 규모의 코카인 밀매조직이었다. 그러나 1993년 12월 두목인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피살당하면서 조직 대부분이 와해됐다. 7개월 사이에 피살된 두 사람의 이름이 같은 ‘에스코바르’였다는 것이 공교롭기만 하다. 

 

 ■마약조직과의 연계성
 문제는 일부 대표선수들이 메데인 카르텔의 라이벌 조직인 칼리 카르텔과 연루 소문이 파다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붕괴 직전인 메데인 카르텔이 축구대표 선수들에게 보복테러를 선언했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메데인 카르텔과 연계된 축구도박조직의 관련성도 주목을 받았다. 사실 콜롬비아 제2의 도시인 메데인은 93년 한 해 동안 6653명이 살해당하는 등 마약과 혼돈의 도시로 악명이 높았다.
 사건 직후 콜롬비아 언론은 ‘나라 전체의 자살골’(‘엘 템포’지)이며, ‘경악, 또 하나의 광란의 범죄’(‘엘 파이스’지)라고 개탄했다. 이반 데베도우트 스타디움에 마련된 빈소에는 12만 명의 시민들이 몰려들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세사르 가리비아 대통령은 “콜롬비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스포츠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축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라면서 울먹였다.
 후유증은 컸다. 차기 감독으로 내정된 에르난 고메스 수석코치는 감독 취임을 거부했고, 일부 선수들도 ‘공포 분위기에서 무슨 대표팀이냐’며 줄줄이 탈퇴를 선언했다. 사건 하루 만에 붙잡힌 범인은 경호원 출신인 움베르토 무노스 카스트로였다. 그는 1년 뒤 43년의 징역형을 받았지만 곧 26년형으로 감형됐다. 급기야 2005년 10월에는 ‘모범수’로 석방됐다. 단 11년의 형기만 채운 것이다.

 

 ■축구는 좌절 증오 폭력이다.
 에스코바르의 아버지인 다리오는 “콜롬비아엔 정의가 없다. 법관들은 대체 무엇을 하는 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범인의 조기석방으로 에스코바르 피살사건에 마약조직에 개입됐음이 입증됐다. 무노스의 조직이 그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생애 첫 자책골을 넣고 망연자실하던 27살 꽃미남 청년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4년에 한번 올리는 월드컵 제단에 뿌린 피라고 치부하기에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 회장의 한마디 말이 떠오른다.
 “축구는 희망과 사랑을 주지만 때로는 좌절과 증오, 폭력을 주기도 한다.”
 에스코바르가 비명 속에 스러진지 20년 후인 2014년 7월 5일 새벽, 콜롬비아가 다시 한 번 시험무대에 선다.
 세계 최강이자 개최국인 브라질과 8강 전을 벌이는 것이다. 콜롬비아인들은 20년 전 에스코바르가 뿌린 피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을까.
 경향신문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