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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사람보다 나은 짐승, 짐승보다 못한 사람

  ‘忠犬 라츠, 류머티즘 病死’
 경향신문 1969년 9월 5일자는 ‘라츠’라는 개(犬)의 부음기사를 실었다. 신문이 사람도 아닌 개의 죽음을 알린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고견(故犬)’은 바로 6년 전인 63년 사냥을 나갔다가 오발사고로 총상을 입고 쓰러진 주인을 구한 충견이었다.
 무슨 사연일까. 라츠는 경기도 광주군에서 주인 유동근씨의 집에 살고 있었던 셰퍼드였다.

총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주인을 구한 충견 라츠.  

  ■주인 구한 충견 라츠
 1963년 2월28일 주인집 아들(유병주·17살)은 아버지의 사냥총을 들고 15리 떨어진 산속으로 들어갔다. 라츠가 물론 동행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병주군이 그만 돌뿌리에 걸려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총의 방아쇠가 당겨져 이미와 넓적다리에 8발의 총상까지 입었다. 병주군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 때 라츠가 움직였다. 그는 5리나 떨어진 마을까지 달려 내려갔다. 마침 지나가던 동네소년 2명의 바짓자락을 물고 늘어지면서 자꾸 산속으로 가자는 시늉을 했다. 알아차리지 못한 소년이 자꾸 돌아서려 하면 라츠는 애걸하듯 계속 바짓자락을 당겼다. 동세소년들은 결국 30분 동안이나 라츠의 뒤를 따라갔고, 마침내 총상을 입고 쓰러진 병주군을 발견했다,
 병주군은 그렇게 목숨을 건졌다. 이 일이 알려지자 ‘사람보다 나은 충견’이라는 찬사가 터져나왔다.
 어린이 단체인 새싹회가 라츠에게 표창장을 전달하는 등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그랬던 라츠가 6년만에 ‘류머티즘’으로 병사했다니 당연히 부음을 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충견의 이야기는 각 문헌과 구전설화를 통해 심심찮게 전해진다.

 

 ■의로운 개 무덤
 전북 임실군에는 ‘오수(獒樹)’라는 지명이 있는데, 개(獒)와 나무(樹)의 사연을 안고 있다.
 즉 옛날 김개인(金蓋仁)이란 사람은 개를 끔찍히 사랑했다. 하루는 김개인이 개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가 술에 취해 길가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들불이 일어나 김개인이 누운 자리까지 번져왔다. 그러자 개는 근처 냇물로 뛰어들어 전신에 물을 묻혀서 김개인이 누워 있는 주변의 풀을 쉼없이 적셨다. 천신만고 끝에 불은 꺼졌지만 기진맥진한 개는 죽고 말았다. 
 나중에 깨어난 주인은 죽은 개를 보고 노래를 지어 슬픔을 표하고 개를 묻어주었다. 김개인은 봉분에 지팡이를 꽂아 표시했는데 그 지팡이가 잎이 피는 나무로 변했다. 그래서 이 고을의 지명이 오수(獒樹)가 됐다.
 경북 구미에도 유명한 ‘의로운 개 무덤’, 즉 ‘의구총(義狗塚)’이 있다.
 개주인 이름(이번에는 김성발)만 다를 뿐이지 주인을 구한 사연은 ‘오수 이야기’와 똑같다.
 즉 김성발이 기른 기는 매우 영리했다. 하루는 주인이 술에 취한 채 길가에서 잠이 들었는데 들판에 불이 났다.
 그러자 개는 멀리 떨어진 낙강(洛江)까지 뛰어가 꼬리에 물을 적셔 와서 불을 끄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탈진한 개는 결국 죽고 말았다. 깨어난 주인은 개의 시체를 거두어 묻어주었다. 사람들은 개의 무덤을 구분방(狗墳坊)이라 했다.
 1665년(현종 6년) 선산부사 안응창(安應昌)은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의열도(義烈圖)에 의구전(義狗傳)을 기록했다. 20년 뒤인 1685년(숙종 11)에는 화공이 의구도(義狗圖) 4폭을 남겼다.

주인을 구한 개 라츠가 류마티즘으로 병사했다는 부음기사. 라츠는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가장 의로운 동물
 고려 충렬왕 때(1281~82)의 일이다. 부모를 모두 전염병으로 잃은 어린 소년이 백구 한마리와 살았다. 아이가 개꼬리를 잡고 나가면 사람들이 밥을 내주었다. 절대 개가 먼저 먹는 법이 없었다. 아이가 목 마르다고 하면 개는 우물가로 데리고 갔다. 사람들은 그 개를 의견(義犬)이라 칭송했다.(<고려사절요> <동사강목>)
 개는 충직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남송시대 홍매(洪邁)의 <용재수필(容齋隨筆)> ‘인물이의위명(人物以義爲名)’를 보라.
 “금축(禽畜) 중에서 어진 것으로는 의로운 개, 까마귀, 매, 송골매가 있다.(禽畜之賢 則有義犬 義烏 義鷹 義골)”
 얼마전 한밤중 아파트에 불이 나자 짖어서 주인을 깨워 살렸다는 애완견 ‘둥이’의 사연이 화제를 뿌리고 있다.
 그런데 역사 속 의견(義犬)들과 드라미틱한 사연과 비교하면 동이의 이야기는 다소 부족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뉴스가 되는 이유는 뭘까. 세상인심이 하도 팍팍하다보니 세상 인심이 하도 팍팍하다 보니 그 정도 견공의 사연까지 미담이 되는 것인가. 새삼 충렬왕 때 아이를 돌본 의견을 소개하면서 붙인 <동사강목>의 사론을 보라.
 “당시(충렬왕 때) 나라를 해치는 무리들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이 개는 주인을 알아보았다. 저들이야말로 짐승보다 못한 자들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