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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연예인 예명을 둘러싼 해프닝

 1976년 4월 29일 경향신문은 의미심장한 한줄짜리 기사를 소개한다.
 ‘연예인들의 국어명 전용 전용작업을 펼쳐온 MBC가 가수 김세나 양에게 순수 우리 말로 이름을 바꿔 출연하도록 종용했다’는 것이었다. 이어 ‘만약 김세나가 본명인 김희숙이나 다른 우리말 예명을 쓰지 않는 한 MBC에 출연할 수 없다’는 방침도 전했다. 이는 1970년대 연예계로까지 불똥이 튄 이른바 국어순화운동의 광풍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국화순화전국연합회가 창설되고(73년 11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어순화운동을 독려하고 나섰으니(76년 4월) 오죽했으랴. 박정희 대통령이 문교부에 “모든 분야에서 쓰는 외국어를 우리 말로 다듬는 시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분야별로 시안만들어 심의기구 검토하게 한 뒤 신문 방송 대중매체에서 서서히 보급시키라. 국어순화운동은 순조롭게 발전시켜야 한다. 뚜렷한 방안이 아직 서있지 못한 초기단계이기에 방송을 들어보면 일부에 혼선이 없지 않다. 체육계의 경우 인사들이 시안을 만들게 되면 어떤 말은 더 좋은 우리 말로 고치자든지 또 어떤 말은 세계공통으로 쓰이고 있는 용어이기 때문에 굳이 고칠 필요가 없다든지 하는 적절한 견해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MBC의 경우 김세레나를 비롯해 외국인 예명을 가진 연예인 80명에게 개명을 종용했다.
 김세레나의 경우 이미 김세나로 바꿨지만 그것도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절충 끝에 김세나의 이름은 지켜냈지만 연예인 예명을 둘러싼 혼란은 온갖 해프닝을 낳았다.
 하지만 방송국 간 통일된 이름을 마련하지 못해 혼선을 빚었다.
 일례로 템페스트의 경우 어느 방송은 ‘돌풍’, 어느 방송은 ‘돌풍들’로, 어느 방송은 ‘5인조 돌풍’으로 달리 번역됐다. 바니걸즈는 ‘토끼소녀’, ‘토끼소녀들’은 물론 심지어는 ‘토끼아가씨들’ 등으로 제각각 일컬어졌다.
 연예인들은 개명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패티 김은 ‘김혜자’로, 뜨와 에므아는 ‘너와 나’로, 바니걸즈는 ‘토끼소녀들’로, 봉봉 사중창단은 ‘봄봄’으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 말이 좋기로서니 라나에로스포를 ‘개구리와 두꺼비’, 어니언즈를 ‘양파들’, 템페스트를 ‘돌풍’, 드래곤즈를 ‘청룡들’, 바블껌을 ‘풍선껌’, 블루벨즈를 파란 종을 뜻하는 ‘청종(靑鐘)’, 투코리언즈를 ‘도향과 창철’, 쉐그린을 ‘막내들’로 각각 개명했다니 참…. 
 당대 국어순화운동을 펼치면서 뻔질나게 인용한 것은 ‘프랑스 정부가 불어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영어식 불어사용을 일절 금했다’(동아일보 76년 4월20일 사설)는 것이었다. 50대 이상이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물론 되도록이면 우리 말 이름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적불명의 외국어를 남발하는 것도 꼴불견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을 무슨 국가차원의 정화운동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획일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직역의 이름이 남발된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별세한 위키리씨도 1970년대 국어순화운동의 열풍 속에 본명인 ‘이한필’로 바꿔 활약했다. 하지만 역시 팬들의 뇌리 속에는 ‘이한필’ 보다는 ‘위키리’가 더 친숙한 것 같다. 위키리씨가 1964년 남성4중창단인 ‘포클로버스’(네잎클로버) 소속으로 불렀던 ‘저녁 한 때의 목장 풍경’이 떠오른다.
 ‘끝없는 벌판 멀리 지평선에 노을이 물들어오면 외로운 저 목동의 가슴 속엔 아련한 그리움 솟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