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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휴전선 155마일 과연 맞나요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주도하는 ‘위민크로스 DMZ’ 행사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죠.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여성의 날이자 대북 5·24조치 3년째인 24일 12개국 30여 명이 DMZ를 도보로 횡단하겠다는 계획인데요. 북한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행사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지요. DMZ를 관할하는 유엔사도, 우리 통일부도 긍정적인 반응이랍니다. 5월 말엔 DMZ(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가 새삼 전세계의 주목을 받겠네요. 마침 장이 섰으므로 필자가 세계인의 검색어로 떠오를 DMZ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한번 다뤄볼까요.  

정전협정문에 첨부된 휴전선(군사분계선)의 시작점. 분명히 임진강변 육상에서 시작되고 있다.

먼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휴전선 155마일(248㎞)’이라는 말을 봅시다. 그런데 ‘155마일’의 근거가 불확실하답니다. 지리학자인 김창환 강원대 교수가 정접협정문에 첨부된 지도를 토대로 디지털맵으로 계산한 결과 148마일(238~239㎞)였답니다. 세계적인 지리콘텐츠를 제공하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홈페이지도 ‘148마일’로 해놓았다네요. 필자 역시 유엔사 등을 통해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155마일의 근거를 전해듣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요.
 1953년 사인된 정전협정문에 휴전선(군사분계선)의 길이를 표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전협정은 ‘임진강변~~동해안까지 모두 1292개의 말뚝을 박아놓고, 이 말뚝을 쭉 이은 선을 기준으로 남북 2㎞ 씩 후퇴한다’고 했습니다. 엄밀히 말해 ‘휴전선’이 아닌 ‘휴전점’이었던 거죠. 또 이 말뚝(휴전점)을 실제 철책으로 이은 것(휴전선)이 아니라 정전협정문에 지도로만 첨부해놓았습니다. 그것을 거리를 재서 일일이 말뚝을 박았으니 정확한 측정이 어려웠겠죠.
 여기서 또하나 착안점이 있습니다. 휴전(선)임을 표시하는 철책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가 말하는 철책은 휴전선에서 남북 2㎞씩 떨어져 설정된 비무장지대 남(북)방 한계선입니다. 그러니 어느 한 쪽이 철책을 넘었다면, 그것은 휴전선이 아니라 남(북)방 한계선을 넘었다는 얘기가 되지요.

정전협정에 첨부된 한강하구 수역(조강). 이곳엔 휴전선(군사분계선)이 표시돼있지 않다. 이곳에 표시된 A(가)-B(나) 점선은 그저 황해도와 경기도를 구분짓는 도경계선이라는 설명만 돼있다.

 앞서 휴전선은 뭐라 했습니까. 임진강변(파주 장단 동장리~강정리)에 세운 제0001호 말뚝에서 동해안의 제1292호 말뚝까지를 (지도상으로) 이은 선이라 했습니다. 즉 휴전선은 임진강변부터 동해안까지, 그러니까 육지에만 그어졌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임진강변 서쪽, 즉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 흐르다가 강화도 북쪽에서 다시 예성강과 합류해서 서해바다로 빠져나가는 수역은 대체 무엇이냐. 이 수역엔 휴전선이 없다는 얘기냐. 그렇습니다. 임진강변 서쪽의 수역에는 휴전선이 없습니다. 우리는 임진강·한강·예성강이 만나 서해로 빠져나가는 수역을 조강(祖江), 즉 할아버지강이라 했습니다. 정전협정에는 조강을 ‘한강하구 수역’이라 표현했습니다.
 정전협정문(제1조 5항)은 ‘한강하구 수역은 쌍방의 민간선박에게 개방돼있으며, 자기측 육지에 배를 정박시킬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정전협정에 따르면 남북한 양측의 민간선박은 서해바다~강화도 북쪽 수역(조강)~한강(임진강)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故) 리영희 교수는 이 수역을 정전협정이 보장한 ‘남북 공용의 국제수로’라 해석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지도들은 휴전선을 조강(한강하구 수역)을 지나 서해바다까지 연결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기자들도 똑같은 오류를 저지릅니다. 휴전선은 육상에만 존재할 뿐 해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골백번 주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성강과 만나는 강화도 북변의 조강. 정전협정은 민간선박의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한 수역으로 규정했다. 해상인 이곳에는 휴전선이 그어지지 않았다.

 사실 DMZ는 없어진지 오래됐습니다. 본연의 비무장지대, 즉 DMZ(De-militarized zone)는 1963년까지 10여 년 동안은 그런대로 유지됐답니다. 그러나 북한의 요새와 진지 및 철책 구축과 중화기 및 전투병력 투입이 촉발돼 비무장지대는 역설적이게도 중무장지대로 변질된 것입니다.
 유엔사 특별고문을 지낸 이문항씨가 제안한 것이 있습니다. ‘없어진 DMZ를 다시 구축하자’는 것입니다. 그럴듯 합니다. ‘모든 군사역량과, 폭파물·지뢰·철조망 등 위험물을 제거한다’는 정전협정(제2조13항ㄱ)대로 하자는 것이니 말입니다. 필자는 이에 한가지 첨언하겠습니다. 정전협정상 휴전선이 그어져있지 않는, 그래서 국제수로 혹은 평화수역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조강(한강하구 수역)은 어떻습니까. 그 수역을 평화와 화합의 단초로 삼으면 어떻습니까.
 이 참에 정전협정문을 꺼내 DMZ 공부해서 ‘다시 쌓기’를 한번 모색해본다면 어떻습니까. 이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