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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덕수궁 돌담길

 “영성문은 작년(1920년) 여름 헐렸다. 영성문터~정동까지 신작로가 뚫렸다.”(동아일보 1921년 7월25일)
 덕수궁돌담길이 지금의 모습으로 조성됐음을 알리는 신문기사이다. 영성문(옛 경기여고 길가)은 원래 역대 국왕의 어진을 모셨던 선원전의 출입문이었다. 일제가 고종의 붕어 이후 경운궁(덕수궁의 옛이름)을 대폭 축소하는 과정에서 궁역의 중간을 잘라 길을 내고 담을 쌓은 것이다. 덕수궁돌담길은 조성 당시부터 ‘사랑의 길’로 유명세를 탔다.

 “그 옛날 덕수궁 담 뒤의 영성문 고개를 사랑의 언덕길이라고 일러왔다. 남의 이목을 꺼리는 젊은 남녀들이 사랑을 속삭였던 것이다.”(정비석의 <자유부인> 1954년)
 길 양편에 조성된 덕수궁과 미국·영국대사관의 돌담이 높고, 담 안의 나무들이 내뻗은 울창한 가지가 ‘자연의 터널’을 이뤘다는 것이다. 그랬으니 연인들의 은밀한 연애장소였던 것이다. 하지만 정비석은 “지금 젊은이들은 이 길이 사랑의 언덕길인지조차 모른다”고 했다. 덕수궁돌담길은 1954년 무렵부터 퇴락한 ‘사랑의 길’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 길은 어째서 ‘이별의 길’로 전락하고 말았을까. 별의별 속설이 등장하지만 이곳에 이혼을 담당하는 가정법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그나마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돌담길을 따라 걷던 부부의 이혼길이라는….
 1961년 작사가 정두수는 늦은밤 제대복을 입고 비내리는 돌담길에 기대어 울고 있는 사나이를 보았다. 그 때 정신없이 만든 노래(진송남의 ‘덕수궁돌담길’)는 구슬프기만 하다.
 ‘비 내리는 덕수궁 돌담길을…무슨 사연이 있기에 혼자 거닐까…밤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밤에….’
 이영훈 작사·작곡의 ‘광화문연가’는 덕수궁돌담길의 추억을 자극한다. ‘이젠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마침 전체 덕수궁돌담길 전체구간(1.1㎞) 가운데 끊겨있던 170m 구간이 이어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서울시가 그 구간을 소유·점유했던 영국대사관과 개방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는 것이다. 사랑-이별-추억이 깃든 길을 한번 걸어봐야겠다. 게다가 우리 역사의 애환이 담긴 길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