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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빠라빠라빰' 수사반장의 추억

  1989년 10월12일 방영된 TV드라마 <수사반장>의 마지막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박반장(최불암 분)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남긴 명대사다.

 “빌딩이 높아지면 그림자도 길어집니다.”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잉태한 빈부격차의 갈등이 흉악한 강력범죄로 체현되던 사회상을 풍자한 말이었다.

  1971년 3월6일 첫 방영된 <수사반장>이 880회(총 18년7개월)의 대장정을 마치는 순간이었다. 사실 자발적인 출발도 아니었다.

   “나쁜 놈들은 반드시 죗값을 받는 드라마 하나 만들라”는 고위층의 지시로 제작한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이다. 

1971년 첫 방영 된 <수사반장>의 포스터. 범죄의 생태와 인간본성을 추적하는 흥미와 긴박의 수사실화극이라 했다. 최불암 김호정 조경환 김상순 등 4형사가 보인다.  

 순사(일제 경찰)의 이미지 때문인지 초반 인기는 형편없었다. 광고주도 붙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과학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수사물도 아니었다. 박반장을 비롯한 수사팀은 주로 ‘육감수사’와 시민제보에 의존해서 범인을 잡았으니까….

 조기종영의 위기에서 드라마를 살린 것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휴머니즘이었다. 저마다 기구한 사연을 안고 있는 범인들에게 수갑을 채워야 하는 형사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따뜻한 시선을 다뤘다.

  울며 범행사실을 털어놓는 범인에게 “어이구, 왜 그랬어!” “이 친구 정말 잡아 넣어야 하는 거야?”하며 안타까워하던 형사들의 표정이 생생하다.

  박반장이 입은 바바리코트는 남성들의 드레스코드가 됐다. 시청률이 70%에 달했다. 추격신 촬영 도중 출연진을 진짜 경찰로 오인하고 도망치는 소매치기들을 실제 검거하는 일도 생겼다.

  출연진을 찾아온 출소자들에게 “행상이라도 하라”며 사준 손수레가 한두 대가 아니었다. 그렇게 1970~1980년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형사들’이 하나둘 떠났다.

  1·2대 막내형사 김호정(1978년)·남성훈(2002년), 여형사 이금복(1999년), 넉살 좋은 형사 조경환(2012년)씨에 이어 시골형사 김상순씨까지 세상을 떠났다.

  박반장(최불암씨)과 단골 범인역(이계인·임현식·변희봉씨 등)이 남아 ‘인간미 넘쳤던 왕년’을 증거할 것이다.
  지금 고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진혼곡이 있다. ‘빠라빠라빰 빠라빠라빰~ 빠빠빠빠빰~’ 재즈 드러머 류복성씨가 연주했다는 그 강한 비트의 <수사반장> 시그널 음악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