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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해시태그 운동의 시조는 광개토대왕이었다?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우十)’

1946년 5월 경주 노서동 140호 남분에서 흥미로운 청동그릇이 출토됐다.

 

그릇엔 을묘년(415년) 광개토대왕을 기리기 위해 제작했음을 알리는 명문이 있었다.

 

무덤은 ‘호우총’이라 명명됐다.

 

1946년 발굴된 호우총 청동그릇. 광개토대왕을 기려 그릇을 만들었음을 알리는 명문과 함께 #와 十 문양이 새겨져 있다.  

정복군주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흔적이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확인됐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유물이었다.

 

그런데 그릇의 명문에는 70년 가까이 흘렀어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아직 숨어있다. 마지막 글자인 ‘十’자와, 명문의 윗부분에 비스듬히 새겨진 #자다.

 

1946년 발굴된 호우총 청동그릇. 광개토대왕을 기려 그릇을 만들었음을 알리는 명문과 함께 #와 十 문양이 새겨져 있다.


발굴보고서는 ‘十자나 #자는 여백을 채우기 위한 부호라고 했다.

 

그러나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

 

#는 풍납토성과 구의동 아차산 4보루 등에서 출토된 토기에서도 보인다.

 

十자의 경우 광개토대왕을 기려 그릇 10개를 만들었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분명치 않다.

 

최근 금관총 발굴에서 확인된 두 자루의 ‘이사지왕 명문 대도(大刀)’에도 十자가 모두 새겨져 있다. 우연 같지는 않다.

 

 

#기호에 관심을 둔 이는 소설가 최인호였다. 최인호는 소설 <제왕의 문>에서 #문양을 하늘의 우물(井)인 백두산 천지라 했다.

 

정복군주 광개토대왕과 욱일승천하는 고구려를 상징하는 문양이라 풀었다. 그러나 이 또한 추정일 뿐이다.

 

‘井(#)은 하늘이고, 十은 땅’이라는 <주역>의 풀이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호우총 명문 그릇을 보면 #은 천정처럼 위에, 十은 맨 마지막에 새겼다.

 

물론 十, # 외에도 Ⅹ, 卍, 小, 工자와 같은 알쏭달쏭한 문양들이 삼국시대 심심찮게 확인된다. 이런 문양들이 제작자(지)와 주문처를 표시한 것인지, 귀신을 쫓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저 여백의 표시인지 여전히 수수께끼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인들이 과연 왜, 어떤 목적으로 다양한 부호를 썼으며, 특히 #와 十자 문양을 즐겼는지 지금으로선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최근들어 #문양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뜨고 있다. ‘해시태그(hashtag)’ 운동이다. 해시태그(hashtag)는 게시물에 일종의 꼬리표를 다는 기능이다. 특정 단어 또는 문구 앞에 해시(#)를 붙여 관련정보를 한곳에 묶을 때 사용한다.

 

가장 인상적인 해시태그 운동은 2015년 4월 26일 네팔 카두만두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벌어졌다. 진도 7.8의 강진에 공식 사망자만 3000명이 넘었다.

 

이때 네티즌들이 네팔의 참상을 알리고 애도의 뜻을 전하는 메시지를 올리면서 ‘#PrayForNepal’의 태그(꼬리표)를 붙였다. 애도의 마음을 담은 전세계 네티즌의 글이 이 꼬리표 안에 결집됐다. 최근에는 #문단_내_성폭력, #미술계_내_성폭력’ 등의 해시태그 운동이 SNS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고구려 호우총에서 발견된 청동그릇에 새겨진 #표시가 대체 뭔지 몰랐었는데…. 고구려인들이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우十)’라 새긴 것이 해시태그 운동의 표시가 아닐까. 그저 우스갯소리를 했을 뿐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