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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카이저 베켄바워 몰락하나

흔히 ‘축구황제’의 수식어가 펠레에게만 붙는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71)의 별명도 ‘카이저(Der Kaiser·황제)’다. 선수 시절의 화려함만 따진다면 펠레(브라질)나 마라도나(아르헨티나), 크루이프(네덜란드) 등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곧잘 ‘헛다리 예측’으로 비웃음을 사는 펠레나 마약 복용 등으로 망가진 마라도나에 견줄 수 없다. 선수(주장)와 감독으로 월드컵을 제패했고, 클럽(바이에른 뮌헨)에서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룬 유일한 축구인이다. 2006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장, 바이에른 뮌헨 회장 등 축구행정가로도 이름을 떨쳤다.

‘레전드 업계’에도 급이 있다면 베켄바워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야 할 것이다.

‘리베로(자유인) 시스템’을 완성시킨 전술혁명가로도 유명하다. 리베로시스템의 원조는 1960년대 이탈리아 인터밀란의 왼쪽 수비수였던 자친토 파케티다. 파케티는 공격과 수비수의 업무 분담이 확실했던 시대에 왼쪽측면에서 적극 공격에 가담하는 전술을 시도했다.

파케티의 플레이에 감명을 받은 베켄바워는 중앙수비수인 자신에게 이 전술을 적용했다. 만약 중앙수비수가 쏜살같이 공격에 가담하면 어떨까. 중앙수비수의 공격을 상상도 하지 못한 시대였으니 전담 마크맨을 붙이지 않은 상대는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베켄바워가 재창조하고 스스로 소화한 전술혁명은 1974년 서독의 월드컵 우승으로 꽃을 피웠다. 이 전술은 1980년대 3-5-2시스템으로 진화하면서 세계 축구의 주전술이 됐다.

오만하기까지 한 카리스마 역시 베켄바워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늘 명령하는 듯한 표정과 몸짓…. 올드팬이라면 이탈리아와의 1970년 멕시코 월드컵 4강전에서 쇄골이 부러졌음에도 투혼을 불사르던 베켄바워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독일대표팀과 바이에른 뮌헨팀을 ‘카이저가 조종하는 꼭두각시 팀’이라 표현했다.
이렇게 평생을 ‘카이저’로 승승장구하던 베켄바워가 궁지에 몰렸다. 2006 독일 월드컵 유치과정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들을 매수한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아트사커의 창시자’인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회장이 몰락한 것이 엊그제다. 팬들의 존경을 받아온 레전드가 비리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꼴이 안타깝기만 하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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