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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양궁의 비결은 역시 '피와 땀'

4500년 전 태양이 10개나 한꺼번에 떠올랐다. 산천초목이 불타기 시작하자 동이족의 군장인 예가 나섰다. 동방의 신궁이던 예는 시위를 당겨 태양 9개를 차례로 떨어뜨렸다. 떨어진 태양은 세발달린 까마귀, 즉

여자양궁은 1984년 LA올림픽 이후 32년간 단체전 금메달 행진을 이었다. 장혜진, 최미선, 기보배 선수 역시 리우올림픽에서 단체금메달을 땄다.

삼족오로 변한다. 하나 남은 태양은 비로소 지상세계를 정상으로 운행한다.

2500년 후 고구려 창업주 주몽이 등장한다. 주몽은 비류국 임금(송양)과 영토를 걸고 활쏘기 경쟁을 펼친다. 주몽은 100보(70~100m) 앞에서 화살을 쏘아 지름 3㎝의 옥반지를 산산조각낸다.

신궁의 전통은 조선 창업주 이성계로 이어진다. 이성계는 100m 앞에 둔 은거울 10개를 모조리 맞췄다. 화살 한 발이 노루 한마리를 꿰뚫고 풀명자나무에 깊숙히 박히기도 했고, 무려 180m 앞의 과녁을 맞춘 적도 있다. 50보(60m) 거리에 주발 크기의 큰 과녁을 만들고, 그 속에 다시 2치(6㎝)짜리 작은 은(銀) 과녁을 붙였다. 지금으로 치면 10점 골드 안에 퍼펙트골드(X점) 과녁을 더 만든 것이다. 이성계는 물론 그 작은 은과녁을 연속으로 명중시켰다.

예-주몽-이성계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다. <산해경> <삼국사기> <고려사> <태조실록> 등에 등장하는 사실(史實)이다. 과장이 섞여있을 수도 있다.

8년 만에 남자단체전 금메달을 딴 김우진, 구본찬, 이승윤.

그러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김경욱 선수가 10점 과녁 정가운데에 설치한 카메라를 두번이나 명중시켰다. 1994년 국제양궁대회에서는 한승훈 선수가 36발 모두를 10점 과녁에 맞추는 희대의 만점기록(360점)을 선보였다. 이 또한 수백, 수천년 후에는 한낱 허풍으로 치부될 지도 모를 신(神)기록 행진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한국 양궁이 리우 올림픽 남녀 단체전에서 식은 죽 먹기로 금메달 2개를 땄다. 국제양궁연맹이 어떻게 하면 한국의 독주를 막아볼까 별의별 수단을 다 쓰지만 별무신통이다. 지난 런던 올림픽부터 세트제 승부라는 변수 많은 룰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또한 헛수고가 됐다. 상대 선수들이 10-10-9를 쏘면, 10-10-10으로 응수하는 데야 견딜 재간이 없다.

특히 여자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28년간 8회 연속 금메달 행진이다. 역시 면면이 이어온 ‘신궁의 피’를 속이지 못하는가 보다. 그러나 어디 ‘피’로만 돌릴 것인가.

리우 경기장과 똑같은 세트를 만들어 적응하고, 뇌신경 훈련으로 실전상황을 실생활에서 음미했다. X선 비파괴 검사로 활과 화살의 내부결함을 파악해 장비를 교체했고, 3D프린터로 선수 각각의 손에 꼭맞는 그립을 장착한 장비를 마련했다. 무엇보다 하루 600발을 쏘며 구슬땀을 흘렸다. 한국 양궁의 비결이 무엇인지 알겠다. ‘피와 땀’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