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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내가 강이고, 강이 곧 나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하쿠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본 이름을 빼앗긴채 늙은 마녀의 앞잡이가 된 인물이다.

 

하지만 하쿠는 길잃은 소녀 치히로를 도와준 고마운 존재가 된다.

 

어느 날 치히로가 백룡(白龍)으로 변한 하쿠의 등에 타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불현듯 치히로의 뇌리를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어릴적 물에 빠져 허우적댄 적이 있었는데, 죽을 고비에서 자신을 구해준 바로 그 강(江)이 ‘하쿠’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치히로는 하쿠의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준다.

 

“하쿠야. 네 이름은 고하쿠강(江)이야.”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하쿠는 온몸을 비늘을 날려보내며 자아를 되찾는다.

 

하쿠는 강이자,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쿠가 백룡으로 변한 것은 전혀 터무니없는 스토리전개가 아니다. 동양에서 용(龍)은 대표적인 물의 신(神)이다. 굳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올릴 필요가 없다.

고구려 건국신화에도 ‘강=사람’의 전설이 등장한다.

 

동명왕(주몽)을 낳은 유화 부인이 바로 하백(河伯)의 딸이다.

 

당대의 금석문인 모두루묘지(중국 지안)에는 ‘하박(河泊)’으로 표현됐다.

 

생판 ‘가짜뉴스’는 아닌 셈이다. 물 속 궁전에 살던 하백은 물의 신이다.

 

맏딸인 유화가 천제의 아들 해모수의 꾐에 빠져 정을 통하자 불같이 화를 낸다.

 

급기야 딸 유화에게 “우발수에서 살라”는 벌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태어난 유화와 해모수의 아들이 바로 주몽이다.

 

훗날 부여 태자 대소에게 쫓긴 주몽의 발길을 강(개사수·압록강 동북쪽)이 막아섰다.

 

다급해진 주몽이 “나는 천제의 아들이고, 하백의 외손”이라 외쳤다. 그러자 강에서 자라와 물고기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사람과 강의 밀접한 역사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구 반대편 뉴질랜드 사람들은 한술 더 떴다.

 

최근 뉴질랜드 북섬 145㎞를 흐르는 황거누이강(사진)을 인격체로 대우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황거누이강을 둘러싼 원주민 마오리족의 전통과 관습, 관행, 즉 ‘강=사람’임을 인정한 것이다.

 

황거누이 강이 품고 있는 물질적·정신적인 요소를 ‘인격체’로 대우해달라고 외쳐온 마오리 공동체의 170년 염원이 이뤄졌다.

 

마오리족의 격언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Ko au te awa, ko te awa ko au(내가 강이고, 강이 나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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