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은 예의와 해례로 나뉜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되는 ‘예의’는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설명한 것이다.

 

<세종실록>이나 <월인석보> 등에도 실려 있다.  그러나 1930년대 말까지 한글 창제의 원리와 용법을 설명한 ‘해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고대 및 범자, 혹은 몽골문자 기원설은 물론이고, 어이없게도 화장실 창살 기원설까지 등장했다.

 

1940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경북 안동에서 기와집 10채값을 주고 ‘예의’와 ‘해례’가 모두 실려있는 <훈민정음> 원본(사진)을 구입했다.

 

원본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세종의 한글 창제 신화는 자칫 물거품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간송은 500년 만에 찾아낸 기화(奇貨)를 얼마나 아꼈던지 한국전쟁 중에도 품에 안고 다녔고, 잘 때도 배개속에 넣었다.

 

이렇게 극적으로 찾은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옥의 티가 있었다. 표지와 본문 앞쪽 두 장이 없었다.

 

지금 남아있는 두 장은 해례본을 간송에게 넘긴 이용준과, 이용준의 스승이자 사회주의 국어학자인 김태준이 재구성한 것이다.

 

낙장 두 장은 언제 어떻게 사라졌을까. 우선 ‘연산군대의 한글 탄압 시기’가 꼽혔다.

 

즉 1504년(연산군 10년) “임금(연산군)이 신하를 파리 목숨으로 여겨 죽이는데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한글 투서가 돌았다.

 

화가 난 연산군은 “언문(한글)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쓰지도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바로 연산군의 이 한글금지령이 무서워 원본의 앞 두 장을 떼어버렸다는 것이다.

 

다른 의견도 있다. 훈민정음 원본의 각 장 뒷면에는 재활용한답시고 누군가 붓글씨로 <십구사략언해>의 내용을 빼곡히 베껴놓았다.

 

<십구사략>은 중국 19개 왕조의 흥망성쇠를 기록한 역사책이다. 18사략에 원나라 역사를 더해 19사략이 되었다. 이 책은 조선조 세종 때에 수입되었고, 이후에 한글로 번역됐다. 이것이 <십구사략언해>이다.

 

그런데 <훈민정음> 원본의 각 뒷면에 누군가 베낀 <십구사략언해>의 한글 표현이 18세기 경상도 북부 방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게 사실이라면 18세기 이후에 떨어져 나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용준이 1940년 당시 처가인 광산 김씨 가문에서 <훈민정음> 원본을 빼돌려 간송에게 넘겼는데, 그 과정에서 소유자 도장이 찍힌 부분을 뜯어냈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물론 낙장 두 장이 있었다면 금상첨화였겠다. 하지만 어느 날 500년 만에 홀연히 등장한 <훈민정음> 원본은 비록 두 장이 떨어져 나갔어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이다.        

문화재청이 최근 이 낙장 두 장을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원본에 가깝게 표준이 될 만한 <훈민정음> 정본(定本)을 제작하겠다는 것이다.

 

낙장의 복원이 국어학자들의 오랜 꿈이었다니 시도해볼만한 작업이겠다. 그러나 ‘원본과 정본’은 엄연히 다르다. 사라진 원본이 나타나지 않는한 완벽 복원하기는 어렵다. 혹 참고용이라면 모르겠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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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