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주신(主神) 제우스가 감춰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준 이가 프로메테우스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매일 간을 쪼여먹히는 형벌을 받았지만 인간은 덕분에 문명의 세상을 밝혔다.

그리스인들은 인간문명의 길을 열어준 불을 신성시해서 올림피아의 성역 곳곳에 피워놓았다.

고대 올림픽 기간 중에는 제우스와 헤라 신전 등에 불을 더 밝혔다. 이것이 성화의 기원이다.

신들의 제전이던 올림픽을 위한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근대올림픽이 시작되자 성화 의식은 재개됐다. 하지만 1936년 나치 치하의 베를린 올림픽 때 사달이 일어났다.

고대 그리스와 아리안족의 연관성을 강조하며 달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성화봉송식. 나치는 그리스~베를린 사이 7개국 3000여킬로미터의 길을 성화봉송로로 택했는데, 훗날 제2차 세계대전의 침공로로 활용됐다.

 

당시 올림픽 조직위원장인 카를 디엠이 ‘릴레이 성화봉송’ 아이디어를 냈다.

나치정권의 선전장관인 파울 괴벨스가 무릎을 쳤다. 그리스에서 채화한 성화를 베를린까지 3331명의 주자를 동원하여 11박 12일 동안 3187㎞를 뛰어 봉송했다.

고대 그리스를 현대 독일 아리안족의 전신으로 여겼던 아돌프 히틀러 총통에게 그보다 완벽한 그림이 없었다. 게다가 7개국 3000여㎞의 성화봉송길은 나치독일의 유럽 침공 루트가 되었다.

성화봉송은 이후 때로는 조롱의 대상이, 때로는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됐다.

1956년 멜버른 대회 때는 수의과대 학생이 푸딩 깡통에 매단 가짜 성화봉을 들고 경찰의 호위까지 받으며 멜버른 시장에게 건넸다. ‘성화 조롱 의식’이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2008년 올림픽을 개최한 중국은 국력을 과시하듯 전세계 13만7000㎞를 성화봉송루트로 삼았다.

그러나 런던·파리·이스탄불 등에서 중국의 인권문제에 항위하는 시위가 성화봉송을 막았다.

2014년 리우데자네이로 올림픽의 성화봉송길도 최루가스가 뒤범벅된 시위현장으로 변질됐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밝힐 성화가 1일 도착해서 101일간의 국내봉송 대장정을 시작했다.

그저 치러야 하는 행사이겠거니 하고 무작정 달릴게 아니다. 성화봉송의 의미를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문명의 상징인 불을 신성시했던 고대 그리스인의 마음을 새겨보면 어떨까.

덧붙여 2차대전 후 ‘성화봉송은 나치의 아이디어’라는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1948년 런던 올림픽의 성화봉송 모토를 ‘평화의 릴레이’로 정하자 반대목소리가 사라졌다. ‘평창 성화’가 지금 달리고 있는 릴레이 길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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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