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4초, 경주 동궁에 화재진압 ‘골든타임’ 위한 ‘방화수로’ 있었다”

 “통일신라 시대에 화재진압용 골든타임에 대처한 최첨단 시설이 조성돼있었다. 신라시대 골든타임은 4초였다.”   
 신라 동궁과 월지(안압지)는 삼국통일 직후인 679년(문무왕 19년) 조성된 궁원이다.
 이 궁원에서는 1975~79년 사이 대대적인 발굴조사 끝에 3만점이 넘는 유물과 30곳의 건물터 등이 출토되고 노출된 바 있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발굴조사 이전에도 총연장 107m 가량의 화강암제 석조수로가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실체에 대한 연구가 전무했다. 전문가들은 이 수로가 단순한 낙수처리용이나 경관용 등으로 볼 뿐이었다.

수로 조성된 부분(검은 선). 동궁내 화재가 발생할 때 바로 곁에 조성된 방화수로를 통해  불을 끄는 것이 월지의 물을 끌어쓰는 것보다 골든타임에 부합된다는 주장이다. |박홍국 관장 제공

 그런데 최근 이 수로의 용도가 실은 ‘통일신라판 최첨단 소화전’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은 신라사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신라사학보’에 최근 게재한 논문 ‘신라 동궁지 석조수로(石造水路)의 기능에 대한 고찰’에서 직각으로 9번이나 꺾어지며 조성된 궁원의 수로는 소방시설로 규정했다.
 이 석조의 수로는 너비가 29∼30㎝(윗부분), 높이는 14∼15㎝이며, 석재의 길이는 1.2∼2.4m 정도다.
 긴 화강암 석재를 단면 요(凹) 자 모양으로 쪼아내어 수로를 만들었다. 월지 서쪽 건물에서 시작해 아홉 번 직각으로 꺾이는데, 첫 번째와 다섯 번째 굴절 구간에는 길이가 각각 165㎝, 90㎝인 수조형 수로가 설치됐다.

경주 동궁터에서 확인된 수로. 최근 연구결과 통일신라판 소화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해석됐다.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제공

 박홍국 관장은 우선 그저 수로의 용도라면 기와나 자연석을 사용하면 될 것을 굳이 길이 1m가 넘는 화강석재로 정교하게 만든 점을 주목했다. 이것은 들어온 물의 누수를 최대한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됐다. 또 물막이판 고정홈이 설치된 것은 이유 있어 보였다. 수로를 조성한 이들이 홈에 나무 등을 끼웠다 빼는 방법으로 물을 보내거나 차단하기 쉽게 한 것이라 여겼다.
 그렇다면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수를 받아내 흘려보낸 수로일 가능성은 없을까.
 그러나 낙수용 수로라면 당연히 각 건물의 처마 끝선 아래 조성되어야 했다. 그러나 복원된 건물의 처마 끝선과 수로는 약 2m 가량 떨어져 있다. 또 떨어진 낙수라면 수로바닥면에 패인 부분이 보여야 할 것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바닥면은 매끄러웠다.
 그렇다면 수로의 물을 식수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그럴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는게 박관장의 해석이다.
 지상에 노출된 수로의 물은 먼지나 낙엽 등으로 오염될 가능성이 크다. 생활용수로서도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백성들의 살림집이면 모르되 동궁의 중심지역을 지나는 곳에서 채소나 과일을 씻는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관장은 경관용으로 쓰였을 가능성도 배제했다. 그냥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로 밋밋하게 물이 흐르게 만든 장치가 무슨 경관용이란 말인가. 게다가 동궁의 곁에는 신라예술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월지(안압지)가 조성되어 있지 않은가.
 이런 가능성을 배제한 박관장은 ‘방화수로’, 즉 요즘으로 치면 소화전의 개념을 떠올렸다.
 바로 곁에 안압지(월지)가 있는데 무슨 방화수냐고 할 수도 있겠다. 물을 끌어다 쓰면 될일을 왜 번거롭게 방화수로를 만들었을까. 

석조수로와 복원도니 동궁건물의 처마 끝선은 맞지 않는다. 수로가 처마에서 흘러내려오는 낙수를 받는 용도가 아니었다는 방증이다. |박홍국 원장 제공

그러나 동궁은 화재에 취약한 목조건물이었다. 숭례문 화재에서 보듯이 화재진압을 위한 골든타임이 필요했다.
 박관장은 몇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동궁터 건물에서 발화된 심야의 화재를 가정했다. 만약 2m 옆에 조성된 석조수로의 물로 불을 껐을 경우라면 4초 이내가 걸렸다. 그러나 이 건물에서 40~140m 떨어진 안압지에서 물을 끌어 불을 껐을 경우라면 25~60초 가량 걸렸다.
 동궁의 건물터와 가장 가까운 안압지 서안에는 엄청난 물이 있지만 실제로는 회랑에 가로막혀 있다. 빨리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다. 만약 물을 뜰 수 있는 두레박조차 없는 상황이라면 연못의 물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방화용 수로가 건물 바로 곁에 조성되어 있다면 불을 끄기 위한 ‘골든타임’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특히 목조건물에 붙이 붙기 시작하면 가까운 곳에 바다·연못·강 등 아무리 많은 물이 있어도 소용없다. 걷잡을 수 없이 불이 번지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불길이 약할 때 즉시 물을 뿌릴 수 있는 물통 몇개가 오히려 효율적이다.
 박 관장은 “목조건물의 화재 피해 양상은 콘크리트 건물과는 확연히 다르다”며 “기둥 몇 개만 타버려도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천장에 불이 붙는 순간 거의 무너지는 특성을 고려할 때 초기 진화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조원창 한얼문화재연구원장은 “화강암 석재로 수로를 만들고, 그 안에 물막이용 홈을 군데군데 조성한 예는 백제와 고구려의 유적 유구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그 용도가 무엇인지는 더 연구해볼 과제”라 말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