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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얼굴'의 부처님…'백제의 미소'로 복원해야 할 과정 얼굴은 광대 형상인데, 이름하여 국가가 지정한 ‘보물’ 문화재란다. 전북 익산 삼기면 연동리 석불사 법당에 턱하니 자리잡고 있는 불상 이야기다. 언젠가인 지는 모르지만 불상의 본 얼굴은 떨어져 나갔고, 어느 시점에 누군가 새로운 얼굴, 즉 불두(佛頭)을 얹어놓았다.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 좌상.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백제 시대 최대의 3차원 환조석불로 유명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목이 달아났고 누군가가 새로운 불두를 얹어놓았다. 하지만 ‘광대 형상’의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복원해놓았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인자하거나 엄숙해야 할 부처나 보살의 얼굴이 아니다. 기왕 얹어놓을 요량이면 좀 제대로 만들 일이지, 왜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저렇게 흠결있는 불상인데도, 보물(제45호) 대접을 ..
'모나리자처럼…' 우리에게도 죽어도 못 내보낼 문화재 있다 1위 부여 외리 문양전(보물 제343호), 2위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국보 제91호), 3위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이 최근 1960~2019년 사이 해외전시를 다녀온 한국문화재 순위를 집계한 자료를 필자에게 보내주었는데, 자못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부여 외리 문양전’(22회·6408일)이라는 유물이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59년 동안 22회였으니 그야말로 뻔질나게 해외를 드나든 셈이다. 그 뒤를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8회·2650일)와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7회·2255일)이 따르고 있다. 다소 의외가 아닌가. 1·2위를 달리고 있는 ‘부여 외리 문양전’과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가 어떤 유물이기에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
중국과는 완전히 다른 '한국의 서원'…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이유다 (이 기사는 문화유산 채널 프로그램임 '문롸유산 알려줌'을 위해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풍기군수 주세붕(1495~1554)이 안향의 옛집터에 사우(祠宇)를 세워 봄·가을에 제사지내고 이름을 백운동 서원이라 했다.” 1541년(중종 36년) 5월 22일 에 사관의 평을 빌려 언급된 ‘서원의 효시’ 기사이다. 주세붕이 성리학을 처음으로 도입한 대학자 안향(1243~1306)을 기리기 위해 안향의 집터에 서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은 “서원 좌우에 유생들이 거처하며 배우는 학교를 세웠고, 약간의 곡식을 저축하여 밑천은 간직하고 이자를 받아 운영했고, 고을 백성 중에 준수한 자가 모여 먹고 배우게 했다”고 부연설명했다. 이뿐이 아니라 터를 닦다가 우연히 발견한 구리 300근으로 서울에서 유교 경전 뿐 아니라 정..
불에 탄 조선 임금의 초상화는 왜 '전쟁유산' 대접을 받을까 매서운 눈과 귀만 보이고(태조), 왼쪽 뺨과 귀 부분이 없어지고(원종), 귀밑머리와 귀만 보이고(순조), 왼쪽 뺨과 코, 눈이 싹 다 날아가고(순종)…. 불에 타 흠결 투성이인 어진(임금 초상화)인지라 전통적인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문화재청이 이러한 어진들을 다름 아닌 ‘전쟁유산’으로 평가해 이른바 ‘근대적 문화유산’의 개념으로 문화재 등록을 추진한단다. 무슨 연유가 있는 것일까.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란갔다가 불에 탄 원종(인조의 아버지·추존왕)어진. 그나마 원종어진은 얼굴의 반쯤은 남아있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조선 임금의 어진 48점 중 영조 어진과 연잉군 어진 등 극히 일부만 살아남고 나머지 절대다수는 불에 탔다.|국립고궁박물관 제공지금으로부터 66년 전인 1954..
올 11월까지 비무장지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공동등재한다 문화재청은 올해 말까지 북한과 함께 비무장지대 일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의 공동등재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인 추진일정을 밝혔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지난 11일 2020년 문화재청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남북간 협의를 거쳐 오는 12월까지 유네스코에 잠정목록의 공동등재를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2년 1개월 여의 지루한 휴전회담 끝에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공산 양측이 군사분계선(휴전선)의 말뚝을 박고 있다.정 청장은 “비무장지대 일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기준인 ‘탁월한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에 부합하는 논리를 도출하고, 오는 11월 잠정목록 신청서 작성을 마무리하는 것이 올해 목표”라고 밝혔다. 남북간 협의가 제대로 진행되어 올해..
1750년 '조선판 코로나19'로 22만명이 떼죽음 당한 사연 1432년(세종 14년) 4월 21~22일 세종대왕이 화들짝 놀라는 일이 일어났다. 마침 극심한 전염병으로 백성들이 신음하자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는 토목·건설공사를 중단하라”는 명을 내린 터였다. 그것이 그치지 않았다. 세종은 관리들이 제대로 환자들을 구호하는지 혹 생명이 위태로운 자가 있는지 사람을 시켜 알아보았다. 한마디로 감찰단을 파견하여 관리들의 전염병 대책에 잘못이 있는지 낱낱이 파악했던 것이다. 그런데 소격전(도교 주관의 제사 관장 부서)을 살피던 감찰단원의 보고가 세종의 억장을 무너뜨렸다.“소격전 소속 여종 복덕은 시각장애인인데, 굶어죽게 생겼습니다. 복덕은 아이까지 안고 있었습니다.”깜짝 놀란 세종은 소격전과 한성부 북부지역(북부령) 책임자 등 관리 2명을 문책하여 형조에서 심문하도록 하..
'세종 코스프레'가 하고팠던 고종은···110년 만의 계조당 복원 이야기 “1443년(세종 25년) 5월12일 왕세자(문종)가 신하들의 조회를 받을 집을 건춘문 안에 짓고, 이름을 계조당(繼照堂)’이라 했다.”()세종대왕 치세(재위 1418~1450)의 말년(1455~1450)에 왕세자(문종·재위 1450~1452년)가 임금 대신 정사를 맡았다. 이름하여 ‘대리청정’이다. ‘앉아있는 종합병원’이라 일컬을 정도로 각종 병마와 싸우면서 훈민정음 창제(1443년) 및 반포(1446년)에 몰두하기 위한 세종의 깊은 뜻이었다. 신하들이 지속적으로 세종의 대리청정 계획에 “아니되옵니다”라 반대했지만 그 뜻을 꺾지 못했다. 복원될 계조당. 계조당은 세종 연간에 왕세자(문종)의 대리청정 때 신하들을 조회하고 정사를 펼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다. 그후 고종도 왕세자인 순종을 염두에 두고 ‘..
'신라는 내 동생'…한반도 남부에서 현현한 고구려비의 정체 중원 고구려비를 말할 때 절대 잊어서는 안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예성동호회’라는 향토연구회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그 중요한 국보(중원 고구려비·국보 205호)와 보물(봉황리마애불상군·보물 1401호)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 뿐인가. 예성동호회는 고려 광종이 954년 어머니 신명순성왕후를 기려 지은 숭선사의 위치를 알려주는 명문도 확인했다. 예성동호회는 1978년 당시 충주지청 유창종 검사와 장준식 현 충청대 교수 등이 만들었다. ■ 예성동호회의 개가 향토답사회 모임이 찾아낸 중원고구려비문 독해내용. 고구려가 신라를 형제국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당시에는 문화재 축에도 끼지 못했던 기와를 주우러 다녔고, 모임의 이름도 없었다. 그러나 답사팀은 어느 식당의 디딤돌에서 연꽃무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