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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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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외교의 허와 실 ‘조공외교’가 시작된 것은 중국 주나라 때이다. 제후가 천자를 알현하는 것을 조(朝), 알현할 때 바치는 물품을 공(貢)이라 했다. 100개가 넘는 주변국이 조공하면 천자국인 주나라가 ‘제후임을 허한다’는 책봉 이벤트로 진행됐다. 겉으로 볼 때의 조공은 굴욕외교 그 자체다. 조선의 송시열은 “소국(조선)이 대국(명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도리여서 군신의 의리를 정했다”고 천명했다. 명나라 사신으로 간 권근은 “산 넘고 바다 건너 중국에 들어와 늘 조공하옵고, 삼한(조선) 땅은 길이 제후국이 될 것입니다”라는 충성서약을 방불케하는 시를 중국황제에게 바쳤다. 매티스 미국 국무장관이 일본 방위상과 만나는 모습. 매티스는 중국이 '주변국들에게 조공외교를 강요하고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세종은 ‘사대의..
내가 강이고, 강이 곧 나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하쿠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본 이름을 빼앗긴채 늙은 마녀의 앞잡이가 된 인물이다. 하지만 하쿠는 길잃은 소녀 치히로를 도와준 고마운 존재가 된다. 어느 날 치히로가 백룡(白龍)으로 변한 하쿠의 등에 타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불현듯 치히로의 뇌리를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어릴적 물에 빠져 허우적댄 적이 있었는데, 죽을 고비에서 자신을 구해준 바로 그 강(江)이 ‘하쿠’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치히로는 하쿠의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준다. “하쿠야. 네 이름은 고하쿠강(江)이야.”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하쿠는 온몸을 비늘을 날려보내며 자아를 되찾는다. 하쿠는 강이자,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쿠가 백룡으로 변한 것은 전혀 터무니없는 스토리전개가 아니다. 동양에..
빵과 장미, 그리고 여성 1789년 10월 5일 아침, 7000여 명의 여성시위대가 프랑스 파리 시내를 행진하기 시작했다. 터무니없이 높은 데다 공급마저 부족한 빵 때문에 고통을 받던 여성들이었다. 서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데 귀족들은 매점매석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곧 식량이 바닥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자 여성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을 반대하는 '여성들의 행진' 참가자들 이때 루이 16세의 부인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고급케이크)를 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댔다. 실은 가짜뉴스였다. 장 자크 루소가 1765년 자서전()을 쓰면서 ‘어느 왕비가 했다’고 운을 떼며 이 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1765년 불과 9살이던 앙투아네트가 이런 말을 했을 리 없다. 어쨌..
연필잡기와 신언서판 중국 당나라 때부터 통용된 관리등용의 원칙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다. 신(체모)·언(말씨)·서(글씨)·판(판단력) 등을 두루 갖춘 인물을 뽑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은 ‘서·판’이었고, 이 서·판 시험이 끝나야 비로소 신·언 전형으로 넘어갔다. 옛 사람들이 판(판단력)과 함께 서(글씨)를 그 사람의 능력과 됨됨이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글씨 쓰기가 대접을 받은 이유가 있다. 조상들은 예부터 눈에 보이는 뇌의 일부라거나 정신의 일부로 여겨왔다. 젓가락질 하나 변변히 못한다고, 연필 하나 제대로 잡지못한다고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뇌의 두정엽에 있는 운동중추의 30%가 손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논문이 있다. 젓가락을 사용하면 30여 개의 관절과 50..
한국 여성 90살 시대의 개막 여성은 왜 남성보다 오래 살까. 갖가지 주장 중에 성염색체설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서로 다른 염색체를 지닌 남성(XY)에 비해 X염색체가 둘인 여성(XX)이 훨씬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여성의 경우 X염색체 하나를 잃어도 남은 하나로 활동할 수 있다. 반면 짝을 이루지 못한 남성(XY)은 늘 불안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호르몬의 차이도 거론된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노화의 주범인 유해산소의 발생을 억제시키고 질병의 저항성을 높인다. 인간의 X염색체(왼쪽)와 Y염색체. 사람의 경우 X염색체가 둘인 여성(XX)에 비해 짝을 이루지 못한 남성(XY)은 늘 불안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반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흥분과 공격성을 자극한다. 두터운 피하지방 덕분에 여성이 불필요한 에너지..
지구의 7자매들 경제학 용어인 ‘골디락스’는 천문학에서도 통용된다. 영국의 전래동화()에서 유래했다. 길을 잃고 헤매던 골디락스 소녀가 오두막집에 들어가 뜨겁고, 차갑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스프 등 3가지 스프를 놓고 고민하다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스프를 먹었다는 것이다.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라면 바로 골디락스의 스프처럼 물이 있고, 기온이 적당해야 하며, 태양과 같은 항성의 빛을 꾸준히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은하계에는 태양과 같은 항성이 2000억개에 달한다. 그 중 골디락스 영역을 갖춘 항성계가 있고, 지구를 쏙 빼닮은 행성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수명 10조년에 이르는 항성(왜성) 주변을 돌고 있는 지구와 같은 행성을 그린 상상도. 온도가 0~100도 사이로 추정돼 생명체가 살..
VX와 옴 진리교, 그리고 김정남… “총 맞고 죽나 독가스에 질식돼 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다.” 독일의 화학자인 프리츠 하버(1868~1934)는 ‘독가스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을만큼 독가스 예찬론자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소금을 분해해서 치명적인 염소가스를 만들었다. 독일은 1915년 봄 벨기에 이프르 전선에서 168t의 염소가스를 살포했다. 결과는 끔찍했다. 염소에 노출된 피부와 눈 등이 타들어갔다. 흡입되어 몸속으로 들어간 염소는 물과 반응하면서 온몸의 장기를 사정없이 파괴시켰다. 연합군도 독가스로 맞섰다. 그러나 1915년 가을 첫번째 시도에서 되레 쓰라림을 맛봤다. 독가스를 살포했으나 때마침 역풍이 부는 바람에 오히려 3000명 가까운 영국군이 죽거나 다쳤다. 그럼에도 1차 대전은 통제불능의 독가스 전쟁으로 전락했다. ..
돌고래 스트레스와 인간의 탐욕 2013년 1월 하와이 해안에서 가오리떼를 촬영하던 스쿠버다이버에게 돌고래 한마리가 다가왔다. 다이버가 돌고래의 접근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자 돌고래는 다이버에게 몸을 돌려 왼쪽 지느러미를 둘러싼 낚시줄과 입에 걸린 낚시바늘을 보여주었다. ‘치료해달라’는 구조신호 같았다. 2014년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의 수조에 갇힌 돌고래 모습. 서식범위가 300㎞ 정도인 돌고래는 좁은 공간에 들어가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다이버가 조심스레 돌고래의 몸에서 낚시줄과 바늘을 제거했다. 돌고래는 다이버가 작업하기 쉽게 몸을 돌려주었다. 호흡이 필요하면 수면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수중으로 들어와 다이버에게 몸을 맡겼다. 유튜브에 공개된 이 영상은 큰 화제를 뿌렸다. 돌고래가 위험에 빠진 자기 몸을 사람에게 맡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