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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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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원에서 1억원까지'…당신이 만약 길가에서 국보유물을 발견했다면? “응? 이게 웬 불상이지?” 1963년 7월 16일 경남 의령 대의면 하촌리 마을밖 도로공사에 품팔이를 나온 마을주민 강갑순씨(당시 40세)와 큰아들 전병철군(17)이 야산 비탈의 돌무더기를 파헤치고 있었다. 얼마쯤 파내려 갔을까. 두사람은 깜짝 놀랐다. 걸리적 거리던 잡석 하나를 곡괭이 끝으로 제치자 폭 30㎝ 길이 40㎝, 깊이 30㎝ 가량의 네모반듯한 공간이 있었고, 그 안에 누워있던 금빛 찬란한 불상을 보았다. 강씨는 발견사실을 대의면 지서에 알렸고, 불상을 친견한 전문가들은 경악했다. ‘금동연가 7년명 7년명 여럐입상’. 이 불상은 제작연대(기미년·539년)가 있는 가장 오래된 금동불이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시어머니에게 고기 한근 사드려야죠” 금동불상은 둥근 연꽃 대좌 위에 중생의 고통을 ..
한성·웅진·사비 잇는 '익산 백제'…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 여전히 지난 10일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을 찾는 이들은 헷갈리기 쉽다. 미륵사지 서탑 옆에 서있는 큰 건물이 박물관인줄 알지만 그게 아니다. 신설된 박물관은 요즘 서울시내 대학 건물처럼 지하를 파고 들어가 조성돼있다. 최흥선 국립익산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미륵사지 전체가 사적(제150호)구역이어서 층고 12m 이상의 건물을 세울 수 없는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에 주변 경관을 해칠 수 없어 지하에 조성한 것”이라 설명했다. 지난 10일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 상설전시실 전경. 상설전시실에는 국보·보물 3건 11점을 포함한 3000여점의 전시품을 선보이고 있다. ■무왕의 나무관 첫 복원공개상설전시실에 들어서면 맨먼저 보이는 유물은 2009년 미륵사지 서석탑 사리공에서 출토된 금제사리내함이다. 높이 5.9㎝, 최..
세종도 불만 터뜨린 조선의 인사검증시스템…'서경' '역사'를 아시나요 하직이물래(下直吏勿來·관리들의 하직인사 사절), 물래(勿來·인사를 사양), 입직(入直·직무실로 가서 인사), 미견(未見·만나지 못함), 입직미견(入直未見·직무실로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함)….고문서를 다수 소장하고 있는 교지연구가 김문웅씨(80)가 얼마전 아주 희귀한 자료를 기자에게 공개했다. 이름하여 ‘역사기(歷辭記)’라는 아주 생소한 문서이다. ‘역사’는 새로 임명된 신임관리(당하관·정 3품 이하)가 의정부 소속 정승들과 인사 관련 부서인 이조 및 병조 등을 돌아다니며 부임인사 하는 절차를 가리킨다. ‘역(歷)’자에 ‘다니다’ ‘두루’라는 뜻이 있으며, ‘사(辭)’자에는 ‘알리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고전DB에서 검색해봤더니 ‘역사’라는 용어는 숙종 시대인 1700년 이후의 실록에 등장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왜 오타니의 '약탈품'을 소장하게 됐을까 18만2080점 vs 1500여점(360여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홈페이지를 보면 첫장에 노출되는 숫자가 보인다. 그때그때 업데이트되는 숫자는 나라 밖에 흩어진 한국 문화재의 숫자를 가리킨다. 아마도 문화유산을 빼앗긴 그런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의미와 함께 반드시 찾아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다짐도 담았을 것이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의미의 숫자가 있으니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의 ‘360여건 1500여점’의 유물이다. 이번에 복원을 끝내고 처음 진본전시되는 ‘창조신 복희와 여와도’. 투르판 아스타나에서 출토된 7세기 유물이며, 삼베에 채색한 그림이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수집품인가 약탈품인가국립중앙박물관은 최근 상설전시관 3층을 ‘세계문화관’으로 개편하면서 이 가운데 ‘창조신 복희와 여와’ 등 81건 1..
설총보다 100년 앞선 '이두의 시작' 무술오작비…여승이 지휘한 공사기록이었다 ‘이두(吏讀)의 공식적인 시작은 578년 세운 무술오작비다.’ 지난 18일 열린 한국기술교육대 정재영·최강선 교수팀이 주도한 ‘무술오작비’의 3D스캔 판독회에서는 연대(무술년·578년·진지왕 3년)가 확실한 무술오작비를 사실상 완전히 판독하는 성과를 얻었다. 무술오작비의 글 중 붉은 원 안이 이두를 쓴 부분이다. 1행의 ‘차성재(此成在)’와 2행의 ‘인자(人者)’, 3행과 6행에 나타나는 ‘곰’과 ‘등’, 1행과 8행에 등장하는 ‘지(之)’와 8행의 ‘여(如) 등이 이두 표기이다. |정재영·최강선 교수 제공■첨단기법으로 완전 판독된 무술오작비인문·공학의 학제간 융합으로 3D스캔 판독을 진행해온 정재영·최강선 교수팀은 “몇 자는 아직 판정하지는 못했지만 문맥상으로는 뜻이 완벽하게 통한다”고 밝혔다. 모두 ..
"한반도엔 없는 돌"…가락국 허황후 '파사석탑의 정체' ‘한반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돌이라면….’ ‘가야본성’ 특별전이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는 아주 괴이하게 생긴 돌을 6층으로 쌓아놓은 탑이 하나 서있다. 이름하여 파사석탑(경남 문화재자료 제227호)이다. 원래 경남 김해의 허황후릉 한편에 서있었던 것을 전시와 보존처리 등을 위해 이번에 옮겨왔다.‘가야본성 특별전’과 보존·복원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온 파사석탑. 고려대 산학협력단의 비파괴분석결과 한반도에서는 나지 않는 엽랍석 성분의 사암으로 밝혀졌다. ■신비로운 돌탑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이 고려대 산학협력단에 이 탑의 산지와 특성을 분석 의뢰했더니 흥미로운 결과보고서()가 나왔다. 대자율(암석이 지니는 자성)과 X-선 형광, 적외선 분광 등 비파괴분석으로 들여다보니 1~6층의 재질은 상당..
둑 쌓고 이익금 분담한 1500년전 신라 토지문서 94자 출현 결(結)과 부(負), 곡(谷)과 답(畓), 제(堤) 등 확인가능한 글자만 무려 94자…. 1500년전 신라인들이 마을에 둑을 쌓고 그 쌓은 둑 덕분에 받은 혜택에 따라 일종의 이익분담금을 냈고 그 이익분담금을 ‘결’과 ‘부’라는 토지단위로 계산했음을 시사해주는 일종의 토지 관련 문서가 경산 소월리에서 확인됐다. 이 자료는 신라의 토지제도인 결부제가 기존 문헌자료보다 100~150년 정도 앞선 시기인 6세기 중엽에 시작되었다는 추정도 가능케 한다. 또한 이 문서에는 신라판 ‘인터넷 축약글자’인 ‘답(畓)’자도 포함돼 있었다. 목간에 쓰여진 글자. ‘감말곡’이라는 마을의 논답 7결과 ‘둑(堤) 위의 1결’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윤선태 교수는 이것을 지역할당이라고 해석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둑(堤) ..
1500년전 신라인의 인터넷 줄임말?…'수전(水田)' 대신 '답(畓)'자를 쓴 이유 “어 이거 ‘답(畓)’자네.” 지난 6일 경북 경산 소월리에서 사람 얼굴 모양 토기와 함께 출토된 목간을 판독하던 전문가들의 눈이 빛났다. 이 목간은 마을(谷)에 쌓은 제방(둑·堤) 덕분에 혜택을 본 주민들에게 이른바 이익분담금을 할당하면서 토지 단위인 ‘결(結)과 부(負)’를 기준으로 삼은 내용으로 얼개가 읽혔다.통일신라 시대의 공문서인 촌락문서에 보이는 답(畓)자. 촌락문서에는 ‘전답’이라는 표현이 많다.그런데 94자에 달하는 글자를 한자한자 읽으면서 특히 눈에 밟힌 것이 있었으니 바로 논을 뜻하는 ‘답(畓)’자였다. 김재홍 국민대 교수 말마따나 이 ‘답’자는 중국에도 없고, 심지어 인근 백제에서도 쓰이지 않던 신라 고유의 글자이기 때문이다. 답(畓)은 글자 형태가 보여주듯 물 수(水)자와 밭 전(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