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형(자매)이 노리개를 나눠 가졌는데… 네 몫은 없으니… 악을 쓰더라도 네 몫의 것일랑 부디 찾아가라….”

 

여염집 부모가 주고받은 편지가 아니다.

 

조선조 효종 임금이 셋째딸 효명공주(1649~99)에게 보낸 한글 편지다.

 

외아들(현종)외에 딸 6명을 둔 딸부자였던 효종은 “하필 노리개를 나눠줄 때 너는 왜 없었느냐”고 짐짓 애달파하면서 “악다구니를 써서라도 네 몫을 찾으라”고 은근히 부추긴다.

 

효종이 숙명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

지엄한 군주가 아니라 영락없는 여염집 ‘딸바보’의 모습이다.

 

예전엔 한글을 언문(諺文)라 낮잡아보고 부녀자나 쓰는 ‘암클’이라고도 했다. 한글을 모독하고, 여성까지 폄훼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면서 “(백성을 위해) 언문 28자를 지었다”고 했고, ‘재주있는 자는 하루아침에, 머리가 나빠도 열흘이면 배운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글은 분명 나이·성별·신분의 차이를 이어준 소통의 도구였다. 효종과 같은 임금도 한글을 배워 시집간 딸에게 한글편지를 보냈으니까….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생활사연구소가 1465건의 한글편지를 분석해서 펴낸 <조선시대 한글편지 어휘사전>은 당대 조선의 생활 어휘 보고라 할 수 있다.

예컨대 1660년 효종비인 인선왕후가 숙명공주에 보낸 편지엔 굿브다(허전하고 심란하다) 아마라타 없다(뭐라 이를 바 없다) 탁탁하다(가슴이 답답하다)는 어휘가 등장한다.

 

심심하다(심란하다) 굼겁다(궁금하다) 헤헤하다(허전하다) 사마사마하다(무서워 초조하다) 등도 마찬가지다. 현대 국어와 다른 용법으로 쓰이는 어휘도 있다.

 

‘일처리가 깨끗하다’는 뜻의 ‘간정(乾淨)하다’는 옛 편지에서 ‘병에서 벗어나다’는 의미로 쓰였다. ‘부리다’는 ‘그리움 따위를 내려놓지 못하다’는 의미였다. ‘속다’는 ‘수고하다’의 뜻이었다.

 

요즘의 인터넷 용어처럼 편지에만 등장하는 표현도 더러 있다. 애모솝다(민망하다?) 흐운하다(서운하다) 귓잡다(귀하다·기특하다) 희슴슴하다(창백하다?) 곡각기다(깍지끼다) 등이다.

 

전문가의 도움이 있어야 겨우 해독할 수 있는 옛 편지를 읽으면 당혹감이 든다. 옛 글자 자판도 없으니 옮길 수도 없다. 어휘에도 생로병사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치자.

 

낄끼빠빠(낄때 끼고 빠질 때 빠져), 안궁안물(안 궁금하니 안 물어봄) 같은 요즘 인터넷 용어를 수십 수백년 뒤의 후손들은 얼마나 골치 아플까.  경향신문 논설위원 

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