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 길이 석자 여섯 치 여섯 푼은 366일을 상징하는 것이고, 너비 여섯 치는 천지와 사방을 뜻하며 위가 둥글고 아래가 네모난 것은 하늘과 땅을 본받은 것이다.”

<삼국사기> ‘잡지 악()’편에서 현금(玄琴·거문고)을 설명한 내용이다. 옛 사람들은 악기 하나, 노래 하나에도 심원한 뜻을 새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야금도 마찬가지다.

가야금은 중국 악부의 쟁()을 본떠 만들었는데, 열두 줄은 112달을 의미하며, 기둥의 높이 3촌은 삼재(三才), 즉 천((()을 뜻하는 것이다.”

악기 하나에 112달을 새겨넣었고, 하늘과 땅, 그리고 그것을 이어주는 사람의 마음까지 담아낸 것이다.

 

■신라 연습생과 연예기획자 우륵   

대가야의 유명한 음악가 중에 우륵이 있었다.

우륵은 가실왕의 명에 따라 12곡을 지었다. 괜히 12곡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가실왕은 제국의 방언이 서로 다른데 어찌 음악이 같을 수가 있느냐고 했다. 즉 가실왕은 악성 우륵에게 하나가 아닌 12개 지역에 해당하는 12곡을 짓게 한 것이다. 가실왕은 음악을 통하여 대가야의 정치적인 통합을 이루고자 했다.

하지만 쇠약해지는 나라는 어쩔 수 없었다. 우륵은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신라 진흥왕에게 망명했다.(서기 522)

우륵의 음악에 감명 받은 진흥왕은 계고와 법지, 만덕 등 3명을 우륵에게 보내 음악을 배우도록 했다.

이를테면 연습생 3명을 우륵이라는 기획자에게 보낸 것이다.

우륵은 일종의 오디션을 통해 이들의 재능을 알아본 다음 계고에게는 가야금, 법지에게는 노래,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쳤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얼굴을 담당하는 멤버가 없을 따름이지, 악기(계고), 보컬(법지), 댄스(만덕) 등을 겸비한 아이돌 그룹 같다.

마침내 치열한 연습생 생활을 거쳐 신라 그룹이 탄생했다.

광주 신창동에서 확인된 2000년 전 현악기를 복원한 모습.

 

■가야 노래는 음란합니다

우륵은 진흥왕 앞에서 데뷔 공연을 열었다.

공연을 관람한 진흥왕은 내가 우륵에게 들었던 음악과 다르지 않다고 칭찬했다. 성공적인 데뷔였다.

그러나 우륵을 사사한 계고와 법지, 만덕은 천생 신라 사람들이었다. 세 사람은 우륵이 기왕에 작곡한 12곡을 듣고는 이것은 번잡하고 음란하니, 바르다고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우륵의 12곡을 5곡으로 줄였다. 제자들이 스승의 곡을 멋대로 편곡해버리다니. 우륵은 분기탱천했다. 그러나 우륵이 이 축약된 5곡을 듣고는 곧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다.

즐거우면서도 무절제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으니 바르다고 할 만 하다. 너희는 왕 앞에서 그것을 연주하라.”

아마도 제자 3명은 우륵의 전체 12곡이 신라에서는 통할 수 없음을 알고 5곡으로 줄였을 것이다.

진흥왕이 편곡된 5곡을 감상하고는 매우 잘되었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신하들이 조심해야 한다고 간언했다.

이것은 가야에서 나라를 망친 음악입니다. 신라가 취하면 절대 안됩니다.”

그러나 진흥왕은 가야 가실왕이 음란해서 그런거지 음악이 무슨 죄냐고 두둔해주고는 이것을 신라의 공식 대악으로 삼았다.

우륵의 사례는 음악을 나라의 흥망과 연결시킨 옛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공자는 만능 뮤지션 

공자는 어떤가.

시쳇말로 만능 뮤지션이었다. 거문고를 뜯고, (·돌이나 옥조각으로 만든 타악기)도 치며, 노래도 잘 불렀으니까. .

감정이 소리에 나타나 그 소리가 율려(律呂)를 이루게 되면 그것을 가락이라고 한다. 다스려진 세상의 가락은 편안하고 즐겁고 화평하지만 어지러운 세상의 가락은 슬프고 시름겹고 그 백성은 고달프다.”

공자가 거문고를 배울 때의 일이다.

거문고 선생인 사양자(師襄子)5번을 가르치고, 그 때마다 이제 됐으니 새로운 것을 배우라고 했지만 공자는 아직 때가 아니다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한참 뒤에야 공자가 말했다.

이제 노래를 지은 이의 풍모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오한 사상, 낙관적 성격, 원대한 안목을 가진 사람이니 분명 이 곡을 지은 이는 주()나라 문왕(文王)일 것입니다.”

사양자가 감탄했다.

맞습니다. 우리가 학습한 것이 바로 문왕조(文王操)’입니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은 세태에 괴로워하던 공자가 경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러자 밖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말했다.

깊은 생각에 빠졌구나. 경을 연주하는 이여.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신창동에서 출토된 모습.

■광주 신창동에서 찾아낸 악기

지난 1995년 광주 신창동에서 엄청난 유물들이 확인됐다. 현악기 및 타악기였다. 이것은 당대 마한사람들의 문화상·생활상을 살필 수 있는 고귀한 유물이었다. 당시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사안 조현종의 회고. 

얼마나 황홀했는지 몰라요. 고고학자가 된 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온통 유물 밭이어서 함부로 땅을 밟을 수도 없었어요. 땅에 깔판을 깔고 조심조심 다녔어요. 모든 작업을 인부들에게도 맡기지 않았어요. 연구원들이 모두 달라붙어 차근차근 유물을 꺼내고 수습했습니다.”

먼저 최고(最古)의 현악기인 슬(). 발굴된 현악기는 길이 77.2, 28.2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변진조에는 “~有瑟 其形似筑 彈之亦有音曲”, 악기로 이 있는데 그 모양이 중국의 현악기인 축()과 같다. 이것을 타면 소리와 곡조가 나온다는 내용이 나온다.

악기의 전체적인 구성은 머리부분인 현() 고정부와, 현이 올려져 작음(作音)기능을 발휘하는 탄음부(彈音部), 그리고 현공(絃孔)이 자리 잡은 현미부(絃尾部)로 돼있다. 현을 거는 구멍인 현공은 현미부의 일부를 V자형으로 파낸 뒤 그 내부를 직경 0.3정도의 둥근 원으로 뚫었다.

 

■미완성품인가 완성품인가

이 현악기를 복원한 결과 10()임이 판명됐다. 재질은 벚나무.

내부가 파인 목조상(木槽狀) 위에 현을 걸어 만들었다. 당대 중국의 한나라 및 일본 야요이(彌生)시대 현악기가 모두 공명(共鳴)부를 갖고 있는데 반해 신창동 출토품엔 공명부가 보이지 않았다. 또한 신창동 유적에서 옻 재료와 옻칠그릇도 나오는데 이 현악기에는 옻칠을 한 흔적이 없었다. 경산 임당동 유적에서 나온 칠기에 옻칠이 돼있다.

현악기가 나온 곳은 공방유적이며, 출토 현악기는 이 공방에서 만들다가 그만둔 미완성 악기일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신창동 악기를 복원하는 과정을 그린 그림.

그러나 조현종은 현을 걸기 위해 뚫은 작은 구멍이 뚜렷하게 남아 있고 판 밑바닥 바깥 면에 마찰흔도 있었다면서 이는 이 유물이 제작과정에서 파손되어 폐기된 미완성품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실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각목에 새겨진 거치봉(鋸齒棒)을 마찰해서 소리를 내게 하는 타악기도 확인됐다. 마찰봉의 형태와 마찰의 속도에 따라, 혹은 각목의 깊이와 간격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냈을 것이다. 주술적인 의례를 행하거나 노동요(勞動謠)를 부를 때 박자를 맞추는 몫을 담당했을 것이다.

 

■단순한 악기가 아니다

신창동에서 출토된 악기 역시 단순한 음주가무를 즐기기 위한 도구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선 이 현악기가 경산 임당 목관묘에서 나온 길이 67, 너비 27인 악기와 크기는 다소 다르지만 모양새는 거의 똑같다. 신창동 현악기는 10()으로 복원되며 전체길이 77.2, 너비 28.4이다.

조현종은 이런 형태의 악기가 기원 전 후에 한반도 남부에서만 유행했을 것이 분명하다면서 이 악기의 이름을 우리만의 독특한 한금(韓琴)으로 붙이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옛 기록 등으로 미뤄보아 당대 지역 수장이 단순한 악기 이상의 기능을 담당했을 것이다. 소리와 곡조는 정확해야 하는 데 이는 지배자의 엄격한 영()과 통할 수 있으니까.

악기에는 음률이 있듯, 권력자가 지역을 다스릴 때 규율과 법률을 필요로 할 것이다. 악기와 통치기법은 그만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공자에 따르면 음란하고 말초적인 요즘의 음악은 나라를 어지럽히고 백성을 고단하게 만드는 말세의 음악이 아닐까. 신창동 유적에서 발굴된 악기는 이렇게 또 후손들에게 하나의 가르침을 준다.|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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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