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똥이, 혜문 스님, 성광 스님….’ 

2007~2015년 사이 남북공동조사단이 7차에 걸쳐 개성 만월대에서 발굴한 명문자료는 240점 정도이다. 그중 수키와(86점)와 암키와(133점), 수막새(11점), 암막새(1점) 등 제작지와 제작자를 나타내는 명문기와가 대부분이다.

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명문은 기와제작자 중 한사람인 듯한 ‘동똥(冬 叱밑에 同)’의 존재이다. 

2015년 남북공동 조사단의 개성 만월대 제 7차발굴에서 찾아낸 명문기와. 월개요에서 ‘동똥’이라는 기와장인이 제작한 기와라는 의미이다. 사진은 글자를 도드라지게 처리한 모습.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은 지난 10일 경주에서 열리는 ‘신라왕경과 고려 개경’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신라 월성과 고려궁성 출토유물의 명문비교’)에서 “이 두 글자를 신분이 낮은 ‘동똥’이라는 인물의 이름으로 읽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전경효 주무관은 2015년 제7차 조사에서 출토된 두 글자에 대해 “꾸짖을 질(叱)자와 한가지 동(同)자가 합쳐진 이 글자는 음역자 ‘똥’으로 읽을 수 있다”면서 “이처럼 ‘동’자 위에 꾸짖을 질(叱)자가 있으면 다음에 등장하는 첫소리는 된소리로 변한다”고 말했다. 

홍영의 국민대 교수(역사학과)는 이와 관련, “어음상 이두로 보면 된다”고 전했다. 

음역자는 우리말의 발음을 한글로 나타낸 것이며, 예를 들자면 돌(乭)자와 놈(老자 밑에 口자) 등이 있다. 전경효 주무관은 “이름이 ‘동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와의 제작자 신분은 높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고려 개성 만월대에서 찾아낸 명문 기와들. 적항, 월개, 덕수 등 제작지와 문창, 혜문, 문경, 성광이라는 제작자 이름이 보인다.|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동똥’ 글자 앞에는 ‘월개(月盖)’라는 기와요(기와생산지) 이름이 있었다. ‘월개요’에서 장인 ‘동똥’이 제작한 기와라는 뜻이다.  

기와에 새겨진 다른 명문으로는 ‘적항(赤項) 혜문(惠文)’과 ‘월개(月盖) 성광(成光)’도 눈에 띈다. 전경효 주무관은 혜문과 성광이라는 이름이 주로 승려의 법명으로 사용되는 것에 주목한다. 승려가 기와제작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삼국유사> ‘의해·양지’조에 보인다. 

“재주가 신묘한 양지 스님이 영묘사 장륙존상, 천왕상과 전탑의 기와…등을 제작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또 “1277년(고려 충렬왕 3년) 강화도에 파견된 육연 스님이 구운 유리기와의 품질이 남쪽상인들이 파눈 기와(중국제) 보다 우수했다”는 <고려사> ‘세가·충렬왕’조도 있다. 전경효 주무관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항요 소속 기와 장인인 혜문과 월개요 소속의 기와 장인인 성광은 아마도 스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신분이 낮은 ‘동똥’과 스님인 혜문·성광 등의 이름은 기와제작자의 신분이 다양했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기와명문에 등장하는 ‘월개’, ‘판적’, ‘적항’ 등은 고려시대에 기와를 구웠던 와요의 이름들이다.

'적항 혜문'이라고 쓴 명문 기와. 적항요에서 혜문이라는 장인(혹은 스님)이 제작한 기와라는 뜻이다.

홍영의 교수는 “고려시대 와요는 수도인 개경 부근에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궁성이나 관청, 성곽, 사찰, 그리고 문벌귀족의 저택 건축에 필요한 기와의 수요를 제대로 맞추려면 가까운 곳에 있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홍 교수는 “태조 왕건 때부터 조영된 궁궐은 공민왕 때까지 4차례의 전란을 겪어 소실됐고, 개경인근의 10대 사찰 등 127개 이상의 사찰이 창건되거나 중수됐으며 상류지배층의 저택이 계속 조성됐다”면서 “건축에 필요한 기와의 수요가 엄청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중 장인 ‘동똥’이 기와를 제작한 ‘월개요’가 어디 있었는지 추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고려사>를 보면 “1114년(예종 9년) 큰 우박이 내려 남산·패강과 함께 월개요의 수목이 흔들렸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와요 가운데 ‘판적요’의 존재는 <고려사>에 자주 등장한다. “1165년(의종 19년) 왕이 판적 요지에 배를 띄우고…술자리를 베풀고 풍악을 벌였다”와 “1167년(의종 21년) 임금이 판적요 안에 있는 만춘정에서 놀이를 행하다가 배를 띄우고 물결을 따라 오르내리며 시를 부르고 화답하다가 밤에 파했다”는 <고려사> 기록이 있다. 

홍 교수는 “판적요는 개경 동쪽 21리에 있는 판적천 인근의 판문교에 위치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홍교수는 명문 중 ‘혜문’과 ‘성광’을 스님의 법명으로 추정한 전경효 주무관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한편 전경효 주무관은 “명문 자기에 등장하는 상(尙)이란 표현을 상식국(尙食局), 상약국(尙藥局) 등과 연관시키는 견해가 있다”면서 “아마도 임금의 수라와 약품을 담당하는 관청인 상식국과 상약국의 업무수행과정에서 사용한 물품이 아니겠느냐”고 추정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