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노(孔奴)…’.

2011년 10월 공주 공산성을 발굴중이던 공주대박물관 조사단은 가죽에 옻칠한 갑옷(칠피갑옷) 미늘편과 함께 이 갑옷의 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을 확인했다.

특히 ‘행정관십(行貞觀十)’과 ‘구년사월이십이일(九年四月二十二日)’ 명문은 결정적이었다. ‘정관’은 당나라 태종의 연호(627~649)이며, 정관 19년이면 645년, 즉 의자왕 5년에 해당된다.

복원과정에서 드러난 공노(孔奴) 명문. 고급스러운 갑옷에 장난스럽게 거친 글씨로 표현했다.  |이현숙 국립공주대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의 발표문에서

이와함께 지금 막 쓴 것 같은 생생한 글자들이 잇달아 보였다. 왕무감(王武監), 대구전(大口典) 등의 문자가 나타났고, 참군사(參軍事), ‘○작배융부’(○作陪戎副), ‘○인이행좌’(○人二行左) ‘근조○’(近趙○)’ 등 20여자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다. 국립공주대가 27~28일 공주대 국제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는 ‘백제 칠피갑옷의 비밀’ 국제학술대회에서 칠피갑옷(옻칠갑옷)의 보존복원을 맡은 송지애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팀 학예사는 “기존에 확인된 명문을 포함해서 총 60여자가 보였다”고 발표했다.

송학예사는 “명문은 한 개의 찰갑편에 주로 6자를 적었으며. 숫자의 경우 7자를 적은 것도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보존처리 과정에서 갑옷의 뒷면에 제작자가 낙서한 것 같은 명문도 나왔다.
이현숙 공주대 학예연구실장은 ‘공산성 출토 옻칠갑옷의 조사 성과와 향후 과제’ 발표에서 “갑옷 소찰의 한쪽 칠을 긁어서 ‘공노(孔奴)’라고 아주 거칠게 긁어 써넣은 글자가 특히 눈에 띈다”고 전했다.

이 실장은 “아주 고급스러운 이 갑옷의 조각에 새긴 백제 기술자(工人)의 글귀에서 백제인의 익살과 여유가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갑옷을 제작하던 기술자가 장난기 서린 낙서를 썼다는 추정이다.
복원처리과정에서 수습된 백제 칠피갑옷의 전체 조각은 2500여편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고, 이중 완형

적외선 촬영에서 나타난 갑옷편의 명문들.

은 10% 선인 230여편이었다. 갑옷 편은 형태에 따라 20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백제가 이런 칠피갑옷을 만들 능력이 되었을까. 이현숙 실장은 “북송시대의 백과사전인 <책부원구>를 보면 의문이 해소된다”고 밝혔다. “당 태종이 정관 19년(645년) 백제에 사신을 보내 산문갑(山文甲·의전용 갑옷)에 입힐 금칠(황칠)을 요청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또 <삼국사기>를 보면 무왕 27년(626년)과 38년(637년), 40년(639년), 그리고 의자왕 5년(645년)에 다양

한 종류의 갑옷을 당나라에 보낸 사실이 적혀있다. 이 가운데 “의자왕 5년, 즉 645년 당나라에 금색칠을 한 갑옷과 검은 쇠로 무늬를 놓은 갑옷을 만들어 바쳤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보장왕조’)는 기록은 의미심장하다. 공산성 출토 칠피갑옷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출토당시의 칠피갑옷. 645년에 제작됐음을 알려주는 ‘정관 19년’ 명문이 새겨져 있다. |공주대박물관 제공

<삼국사기>는 “이 황금칠 갑옷을 당나라 군사들이 입었고, 당태종과 당나라 장수인 이세적이 만났는데 갑옷의 광채가 빛났다”고 했다. 칠피기술을 포함한 백제의 갑옷 제작 기술이 당나라에서도 알아줄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11년에 출토된 이 갑옷을 의자왕이나 의자왕에 준하는 인물이 사용하다가 백제 패망 시점에 묻었을 가능성이 있다. 손환일 대전대 서화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 명문의 글씨체는 당나라 시기에 유행했고, 일반적인 기록문에 쓰여진 글씨체(구양순체)가 아니라, 구양순체가 다소 가미된 사경체(불경의 내용을 필사하는 서법) 위주”라면서 “이 글씨는 백제의 사경승이 쓴 것 같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갑옷의 주인이 당나라 장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백제가 6~7세기에 중국 연호를 사용한 흔적이 없으며, 갑옷에서 확인된 명문 중에는 백제에 없는 관서와 중국성인 이(李)씨가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도학 교수는 또 “‘공노’ 명문도 당나라 장수의 갑옷을 노획한 백제군이 당나라 장수를 조롱하는 의미에서 새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현숙 실장은 “이 갑옷은 실전용으로 썼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향후 추가된 명문내용을 토대로 향후 치열한 학술토론을 벌어야 할 것 같다. 
이현숙 실장은 “이 칠피갑옷은 아직까지는 1차적인 응급보존처리가 되었을 뿐”이라면서 “갑옷의 구체적인 형태를 복원하는 학제간의 융합논의와 함께 속속 드러내는 명문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