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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

공시생이 읽어야 할 '지×같은' 필독서?

“대학 교수도 풀 수 없는 지×같은 문제를 출제하다니….”

온라인 한국사 강사인 전한길씨가 비속어를 섞어가며 지난달 24일의 서울시 지방공무원 7급 필기시험 한국사 문제를 비판한 동영상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고려 후기의 역사서를 시간 순으로 옳게 배열한 것’을 찾는 7번 문항의 보기는 ‘ㄱ)민지의 본조편년강목, ㄴ)이제현의 사략, ㄷ)원부·허공의 고금록, ㄹ)이승휴의 제왕운기’였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틈틈이 역사 공부를 하고 있다고 여기는 필자에게도 ‘멘붕’의 문제였다.

<본조편년강목>(1317년)과 <사략>(1357년)도 그렇지만 불과 3년 차이인 <고금록>(1284년)과 <제왕운기>(1287년)를 구별해내라니….

무엇보다 <고금록>이라는 역사책이 생소해서 <고려사>를 검색해보았다.

모두 3종류의 <고금록>이 검색됐다. 먼저 “(고려 전기 문종대의) 박인량(?~1096)이 10권짜리 역사책인 <고금록>을 편찬해서 비서성에 보관했다”(<고려사> ‘열전·박인량전’)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어 1284년(충렬왕 10년) 원부·허공·한강 등이 8~10월 사이 <고금록>을 편찬했고, 1357년(공민왕 6년) 이인복이 또 <고금록>을 편수했다(<고려사> ‘세가·충렬왕 및 공민왕조’)는 내용이 등장한다.

박인량의 10권짜리 <고금록>은 아마도 고구려·백제·신라 등 전 왕조의 역사까지 정리한 역사책일 가능성이 짙다. 원보·허공·한강 등의 1287년 <고금록>과, 이인복의 1357년 <고금록>은 박인량의 역사서를 중수 편찬한 것인지, 아니면 고려 왕조의 역사만 다룬 것인지 알 수 없다.

워낙 기록이 없으니 그저 추정할 따름이다. 이런 판국이니 <고금록> 관련 논문이나 연구자료를 좀체 찾을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이렇게 세가지 버전으로. 그것도 단편적인 내용만 전해지는 이런 역사까지 알아야 한다는 말인가.

백번 양보해도 그렇지 <고금록>과 <제왕운기>가 3년 차이로 편찬된 것이 그렇게 공시생들의 운명을 좌우할만큼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적인 사건인가.

그러니 공무원 합격에 목을 멘 수험생을 골탕 먹이려는 출제자의 갑질이라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말이 나온 김에 나머지 문항을 살펴보았더니 ‘가까운 순, 이른 순, 늦은 순, 시간 순’ 등 순서를 구별하는 문제가 상당수였다.

물론 ‘태정태세문단세…’처럼 역사공부를 위해서라면 되도록 외워야 할 ‘암기사항’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역사가 암기과목를 면치 못한다면 기피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고려시대의 전적 자료를 검토해온 곽승훈 박사는 “3종의 <고금록> 중 하나만 골라 시험문제를 냈다는 것이 잘못”이라면서 “변별력을 확보하려고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를 내려는 풍토가 빚은 결과”라고 비판했다. 역사교육학자인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의 글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기 전에는 아이들이 역사책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상급년이 되면 역사를 본격 배운다. 그때부터 점차 흥미를 잃게 된다. 고등학생이 되면 절정이 이른다. 졸업하면 역사를 의무적으로 배우는 시기가 지난다. 그 때부터 오히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역사를 배울수록 역사를 싫어하고 배우지 않게 되면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기현상인 것이다.”

필자는 말이 나온 김에 공무원 시험문제를 풀어보았다. 열패감이 들 정도로 헷갈렸다. 잠시 짬을 내어 2018년 서울시공무원 시험 한국사 문제를 풀어보면 어떨까.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