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마다 재연되는 논쟁이 있습니다. 국보 1호 논쟁입니다.

1995·2005년 광복 50·60주년을 맞아 10년 주기로 불거졌지요. 광복 70주년을 맞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도 해묵은 논쟁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 우리문화지킴이, 국어문화실천협의회가 5월31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과 함께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1호 지정에 관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답니다.
문화재청은 이미 올 2월 문화재에 부여되는 관리번호지정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습니다. ‘국보 1호(숭례문)’의 지위를 둘러싼 가열찬 논쟁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1934년 조선총독부 관보에 고시된 보물지정목록. 남대문과 동대문이 1,2호로 등재돼있다.

사실 논쟁의 레퍼토리는 뻔합니다. 국보 1호 변경을 주장하는 쪽은 일제의 지정제도를 답습한 국보 1호(숭례문)가 대표문화재로서 상징성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이나 석굴암(24호)이 훨씬 가치가 크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반대하는 쪽은 ‘소모적인 논쟁은 의미없다’고 주장합니다. ‘국보 1호 숭례문’은 일제가 붙일 때부터 우열의 순번이 아니라 말 그대로 관리번호였다는 것입니다. 또 ‘국보 1호를 훈민정음으로 바꿨다 치자. 그런데 이후에 더 좋은 문화재가 나오면 국보 1호를 재지정해야 하는 것이냐.’ 뭐 그런 주장입니다.

사실 반대파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일제가 중요도에 따른 등급이 아니라 ‘관리 측면’에서 번호를 매겼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조선의 지정문화재를 처음으로 공포한 1934년 8월27일자 조선총독부 관보(제2290호)를 봅시다.

보물 1·2호는 남대문과 동대문, 4·5호는 원각사 다층석탑과 원각사비, 6·7호는 중초사 당간지주와 중초사 삼층석탑입니다. 9·10·11호는 개성 첨성대·개성 남대문·개성 연복사입니다. 비슷한 장소에 있는 문화재들을 묶어 ‘편의상’ 관리번호를 붙였다는 인상이 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심화학습에 들어갑니다. 원래 남대문(숭례문)을 비롯한 서울의 관문은 모두 철거대상이었습니다. 예컨대 한성순보 사장을 지낸 야다치 겐조(安達謙藏)는 1910년 “조선인을 동화시키려면 반일 기념물들을 제거해야 한다”(‘조선’ 32호)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일제는 40만~50만명을 수용할 용산 신도시 건설을 포함한 대대적인 도시개조 계획을 세웠습니다.

도시계획 속에는 서대문~수구문을 직통으로 뚫고 종로를 대십자로로 만든다는 청사진이 들어있었습니다. 또 남산의 북쪽 산록을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남·동·서대문 등 조선의 상징물은 모두 파괴 대상이 됐습니다. 심지어 대포로 포격해서 파괴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답니다. 하지만 일본거류민 단장이던 나카이 기타로(中井喜太郞) 등은 명쾌한 반대논리를 폈답니다.

“남대문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입성한 문입니다. 파괴하는 것은 아깝습니다.”

결국 남대문은 극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동대문 역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입성했다”는 사연 때문에 보전됐습니다. 1927년 일제가 펴낸 조선여행안내서(<趣味の朝鮮の旅>) 역시 “가토 기요마사가 남대문에서, 고니시 유키나가가 동대문에서 경성으로 쳐들어갔다고 한다”고 소개했습니다. 반면 일본의 임진왜란 전승기념물이 아닌 서대문(돈의문) 등은 속절없이 철거됐습니다(1915년).

경주 포석정을 ‘고적(사적) 1호’로 정한 까닭도 심상찮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927년 경애왕이 견훤이 쳐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포석정에서 술판을 벌이다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제는 포석정을 신라 망국의 상징으로 삼았던 겁니다. 그것이 일제가 포석정을 굳이 정비하고, 고적 1호로 세운 이유가 아닐까요.

일제가 국보 없이 보물로만 조선의 문화재를 지정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내선일체라는 거지요. 국권을 잃은 조선에는 국보가 없으며, 따라서 일본의 국보가 바로 조선의 국보라는 것이지요. 문제는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를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때 아무런 검토 없이 국보와 보물로 나누어 그대로 답습했다는 겁니다. 또 하나, 북한의 국보 1호는 평양성이라는데 문화재에 일련번호가 남아있는 것은 남북한이 거의 유일하다고 하네요. 필자는 이른바 ‘국보 1호’ 논쟁에서 교체파도, 유지파도 아닙니다.

다만 ‘국보·보물·사적 1호’ 속에 묻힌 속사정을 풀어본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리 ‘1·2·3호…’의 차례가 문화유산의 가치를 가르는 등급 표시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사람들이 ‘숭례문=국보 1호, 흥인지문=보물 1호, 포석정=사적 1호’로 떠받드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교체’ 혹은 ‘유지’가 아니라 관리번호 제도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는 방안도 함께 논의해볼 때입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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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