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택의 가곡집 <청구영언> 하면 어떤 노래가 생각나십니까.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와 고려 충신 정몽주의 '단심가' 같은 고고한 노래가 떠올리겠지요. 뭐 국어책에서 배웠으니 당연히 그럴 겁니다. 옛 성현들의 노래를 한글로 소개했다는 점에서 <청구영언>의 가치는 필설로 다할 수 없지요. 그런데 이 <청구영언>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노래들이 보입니다. 이른바 '만횡청류' 노래인데요. 시쳇말로 '남녀상열지사' 노래, 아니 지금으로 치면 19금 노래들입니다. 한 두 곡이 아닙니다. 뭐 '들입다 바드득 안으니… 빨간 치마 걷어 올리니…' 뭐 이런 노래가 나오지 않나 '마흔살에 계집질하니… 이 재미 알았던들 기어 다닐 때부터 했겠네' 하는 노래까지 있습니다. 심지어는 바람피우는 유부녀에게 '니 남편한테 이른다. 니가 김서방하고 삼밭에서 쓰러진 행태를…' 하는 적나라하게 노랫말까지 모아두었습니다. 당대 조선사회에서 '음란하기 짝이 없는 난세지음'의 딱지가 붙은 노래들이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김천택도 그걸 모를 리 없었습니다. 고심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김천택은 왜 이 음란하기 짝이 없는 '19금' 노래에 푹 빠졌을까요. 요즘 국립한글박물관은 김천택의 <청구영언>과 관련된 특별전을 열고 있습니다. 특별전이 열리는 김에 당대 '아양지계'라는 밴드까지 결성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김천택의 삶을 돌아보고, 특히나 그가 19금 노래에 빠진 이유를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133회는 '들입다 바드득 안으니…김천택이 19금 노래에 빠진 이유'입니다.       

“사람 기다리기 참 어렵군. 사람 기다리기가 참말 어려워…. 닭이 세번 우니 벌써 밤은 5경…문밖에 나가 바라보아도 문밖에 나가 바라보아도…. 이윽고 개짓는 소리에 백마탄 님이 넌지시 돌아드니…오늘밤 두 사람의 즐거움이야 끝이 없겠지?”

김천택의 <청구영언> ‘만횡청류’에 등장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여성은 ‘백마 탄 남자’를 밤새도록 기다린다.

얼마나 애를 태웠으면 ‘사람 기다리기가 참 어렵고(待人難)’ ‘문밖을 나가 바라본다(出門望)’는 말을 반복했을까. ‘백마 탄 남자’라는 말은 바람둥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애타게 애타게 기다렸는데, 5경(새벽 3~5시 사이)가 되어서야 남자가 나타난다. 애간장이 녹은 여심은 뜨거운 관계를 기대한다. “그 즐거움이 끝이 없겠지?”하는 바람을 노래에 한가득 담았다.

<청구영언> ‘만횡청류’ 의 노골적인 노래. ‘들입다 바드득 안으니’하는 농도짙은 성묘사가 눈에 띈다.

■“깊적삼 안섶이 되어 쫀득쫀득 대보고 싶어라”
그렇다면 이 노래는 어떨까. 상사병의 괴로움을 구구절절 표현하고 있다. 

“님 그리워 깊이 든 병 어이하면 고쳐낼까. 의원 청하여 약 짓게 하고 소경에게 푸닥거리 시키며 무당 불러 당줄긁기 한들 이 모진 병이 나올소냐. 진실로 님과 함께 있으면 바로 나을 듯 하구나.”  

사랑하는 님이 보고 싶어 얻은 병은 그 누가 와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치유책이 딱 하나 있다. 그 누구도 고칠 수 없는 이 병은 사랑하는 사람만 있다면 씻은 듯이 낫는다는 것이다. 견딜 수 없는 짝사랑의 아픔을 19금을 넘나들며 부른 노래도 있다.

“각시네 옥 같은 가슴팍을 어떻게 좀 대어볼 수 없을까. 명주 자줏빛 화장저고리 속에 깁적삼 안섶이 되어 쫀득쫀득 대어보고 싶어라. 이따끔 땀나서 붙기만 하면 떨어질 줄을 모르더라.”

노래의 주인공은 남성이다. 좋아하는 여인의 옥 같은 가슴을 직접 만져볼 수 없지 않은가. 남성은 ‘차라리 그 여인의 깁 적삼 안섶이 되고 싶다’고 애를 태운다. 그래야 여인이 땀을 흘릴 때면 그 여인의 가슴과 닿을 게 아니냐는 것이다.

■‘당신은 나만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남자는 죽도록 어떤 여인을 사랑하는데, 여인은 그 사랑을 몰라준다는 것을 한탄한 노래는 또 어떤가.

“나는 님 생각하길 엄동설한에 맹상군의 호백구 같이 하는데…. 님은 나를 삼각산 중흥산의 이빨 빠진 늙은 중놈이 살 성긴 얼레빗 보듯 하는구나.”

‘맹상군의 호백구(狐白구)’란 무엇인가. 전국시대 제나라 재상인 맹상군이 진나라 임금에게 바친 옷이다.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가죽을 여러 장 모아 만드는 옷이다. 왕·귀족들만 입을 수 있는 명품이다.

남자는 짝사랑하는 여인을 ‘맹상군의 호백구’처럼 끔찍하게 사랑하는데, 여인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여자가 남자를 “머리깎은 늙은 중이 성긴 얼레빗처럼 대한다”는 것이니 얼마나 절묘한 하소연인가.

복음성가로 만들었으나 폭넓은 사랑을 받은 노래 가운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다.

그런데 <청구영언> 중에는 완전 반대의 노래가 있다. 요컨대 ‘당신은 나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눈썹은 수나비 앉은 듯 이빨은 박씨 까 세운듯/날보고 방긋 웃는 모양은 채 피지 못한 삼색 복사꽃이/하룻밤 비 기운에 반만 절로 핀 형상일세그려./네 부모가 너 만들어 낼 적에 나만 사랑하라 하신 거야.”

‘너희 부모가 너를 낳은 이유는 딱 한가지, 평생 나만 사랑하라는 것’이었단다.

유부녀가 외간남자와 바람 피우는 모습을 묘사하며 “네 남편한테 이른다”고 협박하는 노래가사

‘들입다 바드득 안으니…물방아 찧는 소리로구나’

그러나 지금까지 인용한 노래들은 양념에 불과하다. ‘19금’ 딱지를 붙여야 할 노래가 한 둘이 아니다.

“들입다 바드득 안으니/ 가는 허리 자늑자늑 빨간 치마 걷어올리니/ 눈같은 살결이 풍만하고 다리를 들고 걸터 앉으니/ 반쯤 핀 홍모란이 봄바람에 활짝 피었구나/ 나아가고 물러가길 반복하니/ 숲이 우거진 산 속에 물방아 찧는 소리로구나.”

그야말로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이다. ‘들입다 바드득 안았다’는 건 무슨 뜻인가. ‘껴앉아 주세요. 갈비뼈가 똑 부러지도록…’이라는 우스갯 가사가 절로 떠오른다. 다음 노래는 포복절도 자체다.

“반여든(마흔살)에 처음으로 계집질하니/ 여럿두렷 우벅주벅 죽을 뻔 살뻔 하다가/ 와당탕 들이달아 이리저리 하니/ 노도령의 마음 흥글항글 진실로 이 재미 일았던들/ 기어 다닐 때부터 했겠네.”

두 작품 모두 의성어와 의태어를 모두 동원해서 성행위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뿌리깊은 인습과 윤리의 벽을 깬 과감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또 어떤가.

“얽고 검고 키 큰 구렛나룻 물건조차 길고 넓다. 작지않은 놈 밤마다 배에 올라 조그만 구멍에 큰 연장 넣어두고 흘근할적 할 때는 애정은 커니와 태산이 덮어누르는 듯 잔 방귀 소리에 젖먹던 힘까지 다 쓰이는구나. 아무나 이 놈을 데려다가 백년 함께 살고 영영 아니 온다해도 어느 개딸년이 시앗샘을 하겠나.”

‘각시네 옥같은 가슴팍…’하며  깁적삼 안섶이 되어 사랑하는 여인의 가슴에 닿고 싶은 심정을 표현한 노래.

■‘네 남편한테 이른다. 김서방하고 삼밭에 들어간 거….’
심지어는 유부녀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제3자가 “당신 남편한테 모든 사실을 고하겠다”고 협박하는 노래도 있다.

“일러나 보자 일러나 보자. 내 아니 이르리 네 남편한테…. 거짓으로 물긷는 첫 물통은 내려 우물전에 놓고/똬리는 벗어 통꼭지에 걸고/건넌집 작은 김서방 불러내/두 손목 마주 덥석 쥐고 수근수근 말하다가/삼밭으로 들어가서 무슨 일 하는지/잔삼은 쓰러지고 굵은 삼대 끝만 남아 우줄우줄 하드라고/내 꼭 이를거야. 네 남편한테….”

협박은 물론이고 두 불륜남녀의 행각을 마치 생중계하듯 묘사하고 있다.

물을 길러 우물가에 간다고 해놓고는 다른 남자(김서방)을 불러내 삼밭에 들어가 못된 짓을 했다는 것이다. 삼밭이 쓰러지고 굵은 삼대 끝만 남아 마구 흔들거렸다는 것이니 얼마나 노골적인 표현인가. 그걸 또 “네 남편 한테 고자질하겠다”는 것이니….

■“사라진 노래가 분하고 아까워…”
<청구영언>이 무엇인가.

1728년(영조 4년) 김천택이 고려말부터 편찬 당시까지 개인문집이나 구전으로 전하던 가곡 노랫말 580수를 한데 모아 시대별·인물별로 엮은 책이다.

이 노랫말들을 한글로 실었다는 것이 중요한 착안점이다.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와 고려말 충신 정몽주의 ‘단심가’, 기생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까지 임금, 사대부, 기녀, 중인, 무명씨의 작품을 모두 모았다.

김천택이 <청구영언>을 지은 속마음은 ‘발문’에 잘 나와있다.

“무릇 (사대부가 즐기는) 문장(중국글)과 시율(중국시)은 책으로 편찬돼 오래도록 전해진다. 그러나 (일반 백성이 즐기는) 노래(영언·永言)는 한때 입으로만 불려지고 저절로 사그러든다. 이것이 어찌 분하고 아깝지 않은가. 고려 때부터 조선까지 이름난 분이거나 큰 선비거나, 혹은 여느 백성이나 아낙네들의 노래까지 하나하나 주워모아 틀린 것은 고치고, 깨끗이 적어 책 한 권을 만들어 <청구영언>이라 한다. 입으로 외우면서 마음으로 생각하고 손으로 만지면서 눈으로 바라보아 널리 퍼뜨리기를 바란다.”

사대부가 짓고 읊은 글이나 시도 가치가 있지만, 민간에서 사랑받는 노래, 즉 대중가요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 그러나 사대부의 글과 시는 전해지지만, 정작 백성들의 애창곡은 한때 유행하고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김천택은 그것이 ‘분하고 아까워(慨惜)’ <청구영언>을 편찬했다는 것이다.

백마탄 남성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심을 표현한 노래.

■노래는 말을 길게 빼는 것(영언)이다
이 대목에서 한가지 궁금증을 풀어본다. 왜 <청구영언>이라 했을까.

‘청구(靑丘)’는 예부터 동방세계를 의미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은 ‘청구’를 종종 ‘우리나라’의 별칭으로 표현했다.

단적인 예로 신라 문무왕이 고구려 왕손인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책봉하면서 “공의 조상은 그 덕과 공이 크고 높아서 위세가 청구에 떨쳤다”고 했다.

그렇다면 ‘영언(永言)’은 무엇인가. <서경>의 ‘시(詩)’에서 인용한 말이다. 

“시란 말에 뜻이 담긴 것이다. 가(歌)는 말을 길게 빼는 것이다.(詩言志 歌永言)”

무릎을 치게 된다. ‘시는 말에 뜻을 담은 것’이라는 표현도 그렇지만, 노래(歌)란 ‘말을 길게 빼는 것(永言)’이라는 정의도 절묘하다. 그러니까 ‘노래(歌)’란 ‘영언’이라는 것이다.

<청구영언>은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노래’를 모은 노래책이다. 김천택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양반의 노래나 백성의 노래나 다를 수 없다. 그 모두가 조선인이 예부터 사랑해았던 노래일 뿐이다.’ 

■‘노래 덕후’ 김천택
김천택이 <청구영언>을 기획하고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김천택은 김성기의 작품 발문에서 “나는 노래에 벽(癖)이 있어서 국조 이래 이름있는 사대부와 여항인의 노래를 뽑아 모았다”고 밝혔다.

‘벽’이라는 것은 요즘으로 치면 ‘마니아’ 혹은 ‘덕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김천택은 김성기의 악보를 구하기 위해 온 군데를 다 수소문하고 돌아다녔다. 마침내 문욱재의 처소에서 김중려(1675~1716)에게 어렵게 김성기의 작품을 구했다.

그런데 수소문해서 작품을 구할 때까지 10년 넘게 걸렸다. 과연 ‘노래수집 덕후’임이 틀림없다.

김천택은 20대 후반부터 가곡 노랫말을 수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히 노랫말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 수집한 노랫말을 일일이 교정해서 오류를 바로잡는 일을 병행했다.

결국 1727년 6월 하순 <청구영언> 초고본을 완성했다.

이미 밝혔듯이 김천택은 여말선초 이후 명공(名公)과 석사(碩士), 여항인(대중가수)은 물론 규수(기녀)의 작품까지 수록했다. 이름값에 현혹되지 않았다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세상에 전하는 노래는 모두 채록했다. 그 사이에 비록 뛰어난 작품으로 이름 나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진 경우라면 모두 기록했다.”(<청구영언> ‘이삭대엽 발문’)

즉 “비록 그 사람의 이름을 취하기는 어렵다는 판정을 내려도 노래만 좋다면 그대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됨됨이나 명성이 아니라 노랫말만 좋다면 수록했다는 얘기다. 이에따라 개인문집이나 별도 가집에 수록된 유명작가 뿐 아니라 1~2수씩 구전되던 작품도 상당수 수습됐다.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19금 노래.

■19금 노래까지 다 모은 까닭
여기서 핵심 궁금증이 생긴다. 이렇듯 의미있는 <청구영언>에 왜 노골적인 성행위와 음담패설이 담긴 퇴폐적인 노래를 떡하니 실었을까.

앞서 몇 작품을 살펴보았지만 지금의 기준으로도 인용한 곡 대부분은 ‘19금’ 딱지를 받았을 것이다.

<청구영언>의 ‘만횡청류’은 보편적인 상식을 초월하는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미혼남녀의 사랑과 이별, 그리움 등을 노래한 작품도 있지만,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노래도 많다.

심지어는 유부녀와 외간남자, 유부녀와 승려 등 당시로서는 비정상적인 일탈 행위가 노랫말에 그대로 담겨있다.

당연히 18세기에도 이른바 ‘만행청류’는 나라를 어지럽게 할 음란한 음악이라고 비판받았다. 여기서 ‘만횡청류(蔓橫淸流)’란 무엇인가.

‘만(蔓)’은 아마도 <시경> ‘국풍·정풍’에 있는 노래(‘야유만초·野有蔓草’)에서 따온 말일 것이다.

“들에는 엉클어진 덩굴풀이 이슬에 푹 젖어있네.(野有蔓草 零露溥兮) 아리따운 한 아가씨(有美一人) 눈매가 예쁘기도 하여라(淸揚婉兮)…”

원래 중국 춘추시대 정나라의 노래를 가리키는 ‘정풍’은 ‘음란한 노래, 망국의 노래’라는 낙인이 찍혀있다.
남녀가 이슬젖은 덩굴풀(만초)에서 만났다는 것은 질탕한 남녀관계를 은유한다.

결국 덩굴을 의미하는 ‘만(蔓)’은 헝클어지고 휘감는 남녀 사이를 가리킨다. 횡(橫)의 의미도 비슷하다. 옛 문헌을 보면 가로를 의미하는 횡은 세로를 뜻하는 종(縱)과 어우러진다.

‘종횡으로 거리낌없이 행동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니까 ‘만횡’은 성적 일탈을 방종, 방탕의 의미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淸)’이란 무엇인가. 조선 중기의 문인인 주세붕의 <무릉잡고>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지금의 노래는 대부분 쌍화점·청가(淸歌)와 같은 부류들이며 모두 사람을 꾀어서 악하게 만듭니다. 풍속을 해이하게 하고 날로 타락시키니 그 음탕하고 외설스러우며 타락한 이치는 차마 듣지 못할 정도까지 이르렀습니다.”

주세붕은 ‘청가’를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남녀상열지사’로 낙인찍힌 ‘쌍화점’과 동격으로 보고 있다. 음탕하고 외설스러운 타락한 음악이라는 것이다.

■난세지음과 망국지음
소리에서 청성(淸聲)은 한 옥타브 높은 음역으로 지칭된다.

그런데 옛 사람들은 음악만 감상하면 그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늠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예기> ‘악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소리엔 치세지음과 난세지음, 망국지음이 있다. 치세지음은 태평하고 안락한 소리다. 난세지음은 원망하고 노여워 하는 소리다. 망국지음은 애상과 회고에 젖은 소리다.”

그러면서 난세지음(亂世之音)은 이른바 청철장려(淸澈壯勵)해서 음의 높낮이가 평탄하고 낮은 치세지음(治世之音)이나 망국지음(亡國之音)보다 아주 높고 빠르다.

높고 빠른 소리, 즉 청철장려한 소리는 격앙되고 불안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한다.

주세붕과 <예기>의 언급을 정리하면 청(淸) 혹은 청가(淸歌)는 난세를 반영하는 남녀간의 연정과 향락을 노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만횡청가’는 흥청흥청거리는 곡조와 남녀간의 자유연애를 담은 노래의 장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방탕한 내용의 가사를 치렁치렁 늘어지는 곡조로 부르는 것이 만횡청가였던 것이다.  

마흔살에 첫경험한 사내의 소감을 노걸적으로 표현한 노래.

■“선한 음악이 있으면 악한 음악도 있는 것이다”
사실 꼬장꼬장한 성리학자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조선사회에서 이런 장르의 음악을 감히 활자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김천택은 고심 끝에 과감히 ‘남녀상열지사’인 이 만횡청류를 <청구영언>에 포함시켰다. <청구영언> 서문을 보면 그 이유가 분명하다.

“만횡청류는 노랫말이 음탕하고 뜻과 자취가 보잘 것 없어 본보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어 한꺼번에 폐기할 수 없는 까닭에 특별히 아래쪽에 적어둔다.”

비록 사회적인 지탄을 받은 노래라 할 지라도 오래도록 사랑을 받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김천택이 주목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무리 지탄을 받은 곡이라도 한꺼번에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김천택은 뿌리깊은 유교사회의 분위기에서도 그 어떤 자체 검열의 메커니즘을 가동하지 않고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온갖 장르의 음악을 소개했던 것이다. 

사실 천하의 김천택이라도 논란많은 만횡청류를 <청구영언>에 포함시키면서 좀 켕겼던 것 같다.

김천택은 종실(선조의 맏아들인 임해군의 후손)인 이정섭(1688~1744)에게 이 ‘만횡청류’ 116수를 보여주고 ‘감수’를 부탁했다. 이정섭이 쓴 발문에 저간의 사정이 잘 나와있다.

“김천택이 하루는 청구영언 한 책을 가져와 보여주면서 ‘이 책엔…민간의 음란한 이야기와 상스럽고 외설스러운 가사도 있습니다. …군자가 이를 보고 병이라 여기지 않겠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어떠신지요.’라 했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했다.”

이정섭이 “괜찮다”고 한 까닭은 뭘까. “공자도 <시경>을 편찬하면서 음란하기로 악명높은 노래인 ‘정풍’이나 ‘위풍’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善)한 음악이 있다면 악(惡)한 음악도 있는 것이 아닌다. 이정섭은 “음악을 감상함으로 선과 악을 구별짓는 것도 나름 가치있는 것”이라 좋게 해석해주었다.

이정섭은 창작의 자유와 감상의 자유를 설파한 것이다. 전김천택은 종실인 이정섭의 ‘괜찮다’는 한마디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김천택은 <청구영언>에 19금 노래인 ‘만횡청류’를 포함시켰다. 비록 음란하고 저속하지만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노래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국립한글박물관 제공

■경찰 겸 싱어송라이터였던 김천택
사실 김천택을 <청구영언> 편찬 하나만으로도 소개하기는 너무도 아까운 인물이다. 당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였기 때문이다.

동시대 인물인 김수장(1690~?)이 쓴 <해동가요>에 따르면 김천택은 숙종 때 포교를 지냈다.

포교는 포도청의 부장이다. 포도부장도 그리 간단한 직함이 아니었다. 휘하에 70명 가까운 부하들을 거느리고 서울과 수도권의 치안을 담당하는 직책이었다.

김수장이 가객 56명의 명단을 기록한 <고금창가제씨>에도 김천택의 이름 석자가 올라있다. 포교를 지내면서 ‘여항가객’으로 활동할만큼 예술적 재능이 남달랐다 할 수 있다.

‘여향(閭巷)’은 일반적으로는 벼슬하지 않은 민간을 지칭한다. 그러나 18세기들어 여항인이라 하면 의관이나 역관 등의 중인과 퇴임한 하급관료, 평민 등을 통칭했다.

여항문화는 상업도시로 변모한 서울에서 일정한 지식과 부를 갖춘 중인 및 하급관리가 사대부와 같은 여유를 부리며 향유했던 문화를 뜻한다. 신분 자체가 그다지 높지 않은 김천택이었지만 당대 유명한 싱어송라이터였기에 사대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꽃미남 뇌섹남 톱가수
“김천택은 노래로 당세에 이름이 났다. 그러나 속되지 않았다. 얼굴빛이 희고 수염은 창처럼 뾰족했으며, 어릴 때 <시경> 300편을 암송하고 나이 60이 되도록 조금도 잊지 않았다. 다른 사람보다 총명하지 않으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을축(1745년) 2월에 화사자가 욕음재에서 쓰다.”(<해동가요>)

화사자라는 인물이 김천택을 평한 내용이다. 하얀 얼굴에 뾰족한 수염, 그리고 시경 300편을 모두 외울 정도의 총명함, 나름 저속하지 않은 노래….

18세기 꽃미남이자 ‘뇌섹남’ 톱가수였다는 얘기다. 중인 출신이지만 학식이 뛰어나 사대부 자제를 가르쳤던 정래교(1681~1759)가 <청구영언>의 김천택 작품에 쓴 발문을 보자.

“남파 김백함(김천택)은 노래를 잘하는 것으로 나라 안에 이름이 났다. 성률(리듬)에 정통하고 문예도 닦아 스스로 신번(시조)을 지어 여항인에게 주어 익히게 했다.…백함은 노래를 잘 불렀고 신성(새로운 가곡)도 능히 지었다. 거문고를 잘 타는 전악사(全樂士·전만제로 알려져 있다)와 서로 의지해서 아양지계(峨洋之契)를 이루었다. 전악사가 거문고를 타고 백함이 노래를 부르면 그 소리가 맑고 깨끗하여 귀신을 감동시키고 화기(和氣)를 일으킬 수 있다. 두사람의 기예는 더할 수 없는 교묘한 재주라 할 만하다.”(<청구영언>)

이 기록을 보면 김천택은 타고난 싱어송라이터였음을 알 수 있다. 노래 잘부르는 가수였고, 작곡가로서의 위치도 확고했다.

■‘아양지계’인가 ‘아양밴드’인가
당대 거문고의 달인인 전만제와 ‘아양지계’를 이뤘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아양지계란 무엇인가. <열자> ‘탕문’에 나오는 춘추시대 그 유명한 백아와 종자기의 일화를 알아야 한다. 즉 거문고의 달인인 백아에게는 자신의 음악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절친 종자기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로 높은 산을 표현하면 종자기는 이렇게 찬양했다.

“아름답구나!(善哉) 높고 높기가 태산과도 같구나!(峨峨兮若泰山)

백아가 흐르는 물을 표현해도 종자기는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아름답구나! 넓고 넓기가 황하 같구나!(洋洋兮若江河)”

백아와 종자기는 이처럼 거문고 연주를 통해 음악적 교유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내 음악을 알아주는 이가 사라졌으니 무슨 희망이 있느냐”며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백아절현(伯牙絶弦)의 고사다.

그런데 정래교는 김천택과 전만제의 관계는 ‘아양지계(峨洋之契)’라 했다. 종자기가 백아의 음악을 듣고 ‘높고(峨) 넓은(洋) 산과 강 같다’고 한데서 착안하여 ‘아양의 관계’라 한 것이다.

약간 우스갯소리를 가미하면 ‘보컬’ 김천택과 ‘거문고리스트’ 전만제가 결성한 밴드 이름을 지어보면 어떨까. ‘아양지계’가 아니었을까. 요즘말로 하면 ‘아양 밴드?’라 이름 붙이면 어떨까.

'나는 그 여인을 끔찍하게 여기는데 그 여인은 나를 '이빨 빠진 늙은 중놈이 살 성긴 얼레빗 보듯 한다'고 한탄한 노래.

■당대 최고의 힐링가수
김천택과 전만제가 이룬 ‘아양지계’의 음악을 들으면 절로 ‘힐링’이 됐다고 한다. 정래교의 평가다.

“내가 일찍이 남모르게 깊이 간직한 병이 있었다. 그 때문에 가슴에 맺힌 것을 풀 수 없었다. 그런데 김천택이 전악사와 함께 찾아와 노래를 불러주니 마음 속에 맺힌 응어리를 모두 씻을 수 있었다.”

특히 김천택을 평가하는 단어를 보면 ‘신성(新聲)’ ‘신번(新번)’ ‘신곡(新曲)’ 등 모두 새로울 ‘신(新)’자가 들어간다. 김천택이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개척하고 그 노래를 스스로 불렀다는 의미다.

김천택은 여항가객, 즉 대중가수들 사이에서 구심점 역할을 했다. 새로운 가곡을 작곡한 뒤 노랫말까지 지어 당대 가수들에게 주었다.

김천택이 지은 노래 중 72~79수가 <청구영언>과 <해동가요>에 실려 있다.

<청구영언> ‘여항육인’에 등장하는 김유기는 1716년 집으로 찾아온 김천택에게 “내가 쓴 노랫말을 고쳐달라”고 부탁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시경> 300편을 다 외울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김천택이었기 때문이다.

■19금 전시회
국립한글박물관은 지금 ‘순간의 풍경들, 청구영언 한글 노랫말 이야기’ 특별전을 열고 있다.

<청구영언>과 함께 조선의 3대 가집이라는 김수장의 <해동가요>와 박효관·안민영의 <가곡원류>도 전시된다. 특히 <청구영언>의 ‘만횡청류’ 노래를 모은 ‘19금’ 전시실이 눈에 띈다. <청구영언>에 실린 고고한 작품들도 물론 관심이 가지만, 왠지 ‘19금 노래’에 시선이 더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필자가 ‘만횡청유’에서 찾아낸 노래 한편을 소개할까 한다. 라임(Rhyme·가사에서 마지막 문장의 운율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넘치는 노래다.

“오늘도 날 저물었네. 저물면 샐 것이고, 밤이 새면 이 님 갈 것이고, 님이 가면 못볼 것이고, 못 보면 그리워할 것이고, 그리워하면 병들 것이고, 병이 들면 못살 것이니, 병들어 못살줄 알면 자고 가는 게 어때?”
(이 기사는 조규익의 <만횡청류의 미학> 단행본과, 권순회의 ‘김천택 편 청구영언의 문헌특성’ 논문을 중심으로 작성했습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노랫말은 조규익의 단행본에서 발췌했습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참고자료>
조규익, <만횡청류의 미학>, 박이정, 2009
권순회, ‘김천택 편 청구영언의 문헌특성’, <청구영언>(주해편), 국립한글박물관, 2017
이상원, ‘김천택 편 청구영언과 후대 가집의 관계’, <청구영언>(주해편), 국립한글박물관, 2017
신경숙, ‘근대학문 100년 속에서 김천택 편 청구영언이 걸어온 길’, <청구영언>(주해편), 2017
김용찬, ‘김천택의 삶과 작품세계’, <어문논집> 39, 민족어문학회, 1999
김수업, ‘김천택에 대하여’, <배달말> 18, 배달말학회, 1993
김복영, ‘만횡청류 연구’, 서울대 석사논문, 2001
강혜정, ‘만횡청류의 형성 기반과 여항가요와의 친연성에 대한 고찰’, <어문논집> 62, 민족어문학회,  2010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