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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내 탓이오'를 외친 임금

  팝가수 엘튼 존의 노래 중에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가 있다. 1976년 발표된 이후 40년 가까이 사랑 받고 있는 ‘사과송(謝過頌)’이다. 말 그대로 ‘미안해’라고 한마디만 하면 될 일인데 무엇이 그렇게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라는 건가. 하지만 노래처럼 ‘사과’란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성명은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날 것이며…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다 하니 다시 치르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죄는커녕 ‘국민이 원한다면…’, ‘많은 부정이 있다 하니…’라는 가정법에서 유체이탈 화법의 원조격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조운선. 충청도 태안 앞바다에서 특히 배사고가 많았다. 조선조 태종 때도 조운선 34척이 침몰, 1000여명이 수장됐다. 그러자 태종 임금은 "모든 게 백성을 사지로 보낸 내 탓"이라고 자책했다.

1988년 백담사로 유배형을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과문 역시 다르지 않다. ‘침묵을 지키는 것이…사죄를 통할 것으로 알았지만 분노와 질책이 높아갔기에 이 자리에 섰고…1980년 광주의 비극적인 사태는 민족사의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했다.

   침묵을 사죄로 알았다는 것도, 남의 일처럼 ‘5·18을 민족사의 불행한 사건’이라고 평가한 것도 기가 찰 노릇이다. 말 한마디에 천근만근의 정치적인 무게가 실리는 지도자에게 ‘사과한다’는 쉽지않다. 사과에 따른 엄청난 책임과 부담까지 지도자가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같은 지도자는 “실수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실수를 깨끗이 인정하고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했다. 일찍이 고려의 대학자 이색도 “죄를 알아 사과를 하면 누가 지난 일을 다시 책하겠느냐”고 했다.(<목은시고>) 1403년(태종 3년) 조운선 34척이 침몰돼 1000여 명이 수장된 ‘조선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자 태종은 “과인이 백성을 사지(死地)로 내몰았다”면서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責乃在予)”(<태종실록>)고 깨끗히 인정했다. 요즘 각각 다른 색깔의 ‘사과’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90도 사과’와, 표절의혹 소설가 신경숙씨의 ‘사실상의 사과’….

  아직 남아있는 사과가 있다. 메르스 사태의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사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대통령의 사과를 구걸하고 있는 괴상쩍은 처지에 놓였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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