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래자 思來者

농구광 김정은과 남북농구경기

남북 체육교류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종목이 바로 축구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부터 서울·평양을 오가며 벌였던 이른바 경평축구전의 역사 덕분이다. 게다가 남북한을 통틀어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이고 선수들의 기량마저 엇비슷하기에 교류의 상징종목으로 꼽혀왔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도 당연히 경평축구전 재개를 염두에 두고 체육교류문제를 꺼냈다.

그런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뜻밖에 “축구보다 농구부터 교류하자”고 수정제의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른국제학교 재학시절 사진.

김위원장은 “(세계 최장신이던) 리명훈 선수(2m35)가 있을 때만 해도 강했는데 은퇴하자 마자 약해졌다”고 부연설명했다. 이어 “이제 남한에 상대가 안될 것 같은데 남한에는 2m 넘는 선수들이 많죠”라고 묻기까지 했다. 미국 NBA 스타인 데니스 로드먼(시카고 불스)이 5번이나 평양을 방문한 절친이라지만 김위원장이 이 정도의 농구 광팬일 줄이야.
아닌게 아니라 김 위원장의 소개글 중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대목이 바로 ‘지독한 농구광’이라는 것이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요리사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의 회고록(<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을 보면 김정은은 12~13살 무렵 형(김정철)과 함께 농구에 빠져 매일 초대소 직원 및 군인 등과 함께 경기를 펼쳤다.

모친인 고영희가 밥을 먹자마자 코트로 뛰어나가는 김정은에게 “조금만 더 앉아있거라”고 꾸짖었지만 5분을 참지못하고 “가자”면서 형을 끌고 나갔다.

어린 김정은은 30번을 단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스위스 유학 시절(베른 국제학교) 담임이었던 미헬 리젠은 “김정은은 NBA 유니폼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친구들과 농구경기를 즐겼다”고 전했다.

이에 리젠이 “넌 이미 프로 흉내를 내고 있는데, 프로처럼 경기하려면 아직 멀었어. 겉모습만 프로 같아서는 부족해”라는 짓궂은 농담을 던졌지만 김정은은 개의치 않았다.

유학생 김정은의 방에는 시카고 불스의 기념품들로 가득차 있었다. 농구 뿐 아니라 스노보드를 타러 스위스 스키장을 자주 찾았다.

후지모토의 회고록을 보면 “김정은의 스노보드 실력도 대단하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러고보면 김정은 위원장은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14~16살(1998~2000년)을 스위스에서 보냈다. 길지는 않았지만 스위스 유학경험이 김정은 위원장에서 서구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18일 열린 남북체육회담에서 가장 먼저 합의한 사항이 바로 남북통일농구경기이다. 농구광팬이라는 김위원장의 비위를 맞춰주려는 이벤트가 아니다. 남북간 화해무드 속에서 남북이 함께 즐기는 첫번째 축제의 무대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스포츠란 원래 화해의 평화의 매개체가 아닌가.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