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벌대기단, 굴도리, 겹처마, 팔작지붕, 오량가구…도종환 (문화부)장관님, 뜻을 한번 설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5월29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 자리에서 청와대 안의 누각(침류각·시유형문화재 103호) 안내판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하여 필자가 ‘오량가구’를 포털사이트에서 찾아보았더니 ‘종단면상에 도리가 5줄로 걸리는 가구형식’이라 했다.
갑자기 멘붕에 빠졌다. 종단면은 무엇이고, 도리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도리’를 찾아봤다.

청와대 안에 조성된 침류각의 안내판, 어려운 전문용어들로 가득차 있다. 

‘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그 위에 서까래를 놓는 나무’라 했다. ‘오량가구’를 설명하는 그림을 아무리 쳐다봐도 이해불능이었다.
이번에는 ‘세벌대기단’을 찾았다. ‘장대석을 세켜로 쌓아 만든 지반’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굴도리집은 또 무엇인가. ‘둥근 모양의 도리로 꾸민 집’이라 했다. 겹처마는 ‘처마 끝의 서까래 위에 짧은 서까래를 잇대어 달아낸 처마’라 했다.
팔작지붕은 필자가 소개할 능력을 벗어난다. 무슨 우진각지붕이 어떻고, 합각이 어떻고, 맞배지붕이 어떻고 하는 알 수 없는 전문용어의 향연이니까….

이밖에도 침류각 안내판에서 써있는 불발기, 띠살, 교살, 딱지소, 굴도리 밑 장혀…. 필자는 찾다찾다 인내심을 잃고 포기하고 말았다.

국보 309호 달항아리. 원래는 백자대호라는 명칭이었지만 2011년 정감있고 서민적인 이름인 달항아리로 바뀌었다.

문대통령도 이 안내판을 보고 필시 ‘멘붕’에 빠졌으리라. 전문건축용어를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대통령의 언급대로 전통가옥 전공자들에게는 이런 안내판이 관심사일 수 있다. 그러나 시민들이 전문용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문 대통령도 “시민이 진짜 원하는 정보 대신, 어려운 건축용어만 잔뜩 담았다”고 꼬집은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필자는 새삼 ‘국보’의 명칭을 되돌아봤다. 예컨대 ‘백자 달항아리’(국보 262·309·310호)의 원래 명칭은 ‘백자대호’(白瓷大壺)였다.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화가 김환기(1913~1974)와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 등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밤하늘에 둥실 떠있는 보름달 같은 백자라 해서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미술상이었던 홍기대는 “김환기 화백은 찌그러진 백자 항아리를 좋아했는데, 특히 일제때 마루츠보(圓壺)라 일컬어졌던 항아리를 좋아해서 특별히 ‘달항아리’라 했다”고 전했다.

김환기 화백의 ‘달항아리’(1957년). 김환기 화백과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이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보급시켰다.

김화백은 1949년 <신천지>에 실린 시 ‘이조 항아리’에서 “지평선 위에 항아리가 둥그렇게 앉아있다. 굽이 좁다못해 둥실 떠있다. 둥근 하늘과 둥근 항아리와…”라고 읊었다.

김화백과 평생 교유했던 최순우 선생도 1963년 4월 17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달항아리 예찬론’을 펼친다.
“나는 신변에 놓여있는 이조백자 항아리들을 늘 다정한 애인 같거니 하고 생각해왔더니 오늘 백발이 성성한 어느 노 감상가 한 분이 찾아와서 시원하고 부드럽게 생긴 큰 유백색 달항아리를 어루만져 보고는 혼자 말처럼 ‘잘생긴 며느리 같구나’하고 자못 즐거운 눈치였다.”
달항아리를 일컬어 ‘잘 생긴 며느리’라 표현한 것이 ‘이때부터’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순우 역시 “흔히들 백자호니 백자대호니 하지만 우리야 어떻든간에 그냥 달항아리로 부르면 어떠냐”고 했다.
그러나 달항아리 이름은 2000년대 초까지는 학술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터부시되었다.
그저 문화인들끼리 흥취를 나누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달항아리처럼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정서를 담은 이름이 어디있을까.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의 개관 첫 전시제목이 ‘백자 달항아리전’일만큼 인식이 바뀌었다. 결국 2011년 국보 명칭이 종전의 ‘백자대호’에서 ‘백자 달항아리’로 바뀌었다.
이름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가장 친근하고 서민적인 이미지의 국보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백자항아리 정도는 아니지만 ‘과형병’을 ‘참외모양병’(국보 94호), ‘기린형개향로’를 ‘기린형뚜껑 향로’(국보 65호), ‘표형주자’를 ‘표주박모양 주전자’(국보 116호)로 쉽게 붙인 국보 이름도 있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분황사 모전석탑(30호·벽돌 모양으로 쌓은 돌탑), 철화양류문 통형병(113호·긴 통모양의 병 앞뒤에 붉은 흙으로 버드나무를 그린 청자), 토우장식장경호(195호·흙인형을 붙인 목 긴 항아리) 등의 이름도 알쏭달쏭하다. 혜심고신제서(43호),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 정병(92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106호), 십칠사고금통요(148-1호) 등은 이름만으로도 숨막힌다.
물론 문화재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고도 쉽게 이름을 붙이기는 쉽지않다.
그러나 말 나온 김에 ‘문화재 명칭은 중학생의 귀에도 쏙쏙 들어와야 한다’는 윤용이 명지대 석좌교수의 언급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겠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