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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대도무문의 참뜻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징어는 뭐니뭐니 해도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1979년 5월 신민당 총재직에 복귀한 김 전 대통령은 “대도무문, 정직하게 나가면 문이 열린다”고 밝혔다. “신의와 지조를 가진 사람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혹독했던 독재정권 시절 선명 야당의 기치를 걸고 죽음을 무릅쓰고 싸운 김 전 대통령은 당시엔 나름 ‘대도무문’의 길을 걸었다고 자부할 수 있겠다.

그러나 1990년의 ‘3당 합당’을 야합으로 규정한 야권으로부터 ‘대권무문(大權無門)’이라는 욕을 먹기도 했다.

1993년 방한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앞에서 대도무문 휘호를 써보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

또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도무문’ 글자를 새긴 시계가 대량 제작됐을 때는 ‘대도무문(大盜無門)’이라고도 손가락질 당했다.

1989년 ‘대도무문’의 휘호를 받은 당시 소련 대표단이 그 뜻을 묻자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개방)라는 뜻’이라고 했다는 촌극도 있다. 또

 1993년 방한한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고속도로에는 톨게이트가 없다(A high street has no main gate)로 번역했다는 웃지못할 이야기도 등장한다. 하지만 불가의 성어인 ‘대도무문’의 뜻은 이렇게 희화화될 수 없는 매우 심오한 뜻을 갖고 있다.
“큰 길에 들어가는 문은 없으나(大道無門) 그 문은 어떤 길로도 통한다.(千差有路) 이 길을 잘 지나면(透得此關) 홀로 천하를 걸으리라(乾坤獨步).”

1228년 송나라의 선승이었던 무문 혜개 스님(1183~1260)은 수행의 이치를 담은 화두 48가지를 모은 책(<무문관(無門關)>)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즉 큰 길, 즉 큰 도에 들어가는 문이란 원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은 허공에 만들어놓은 개념의 틀일 뿐이다.

하나의 고정된 문이나 길이 없이 삼라만상 일체가 모두 문이어서 ‘대도’라 일컫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모든 삶은 이렇게 문없는 문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선불교 전문가인 미산 스님(백운암 상도선원장)은 불교의 대도무문은 ‘중도(中道)의 실천’이라고 설명한다.

즉 진리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은 내 것이 옳다는 자기 만의 문, 즉 자기 만의 주의·주장을 깨뜨리고 중도의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이 옳다는 이분법으로 파벌과 갈등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뜻이니 현 국면에 어쩌면 그렇게 꼭 들어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