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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모기박멸? 패배가 뻔한 싸움이다

다산 정약용도 모기 때문에 어지간히 괴로웠나보다. ‘얄미운 모기(憎蚊)’이라는 시까지 남겼다.

다산은 “호랑이와 뱀이 다가와도 코를 골 수 있지만 모기 한마리가 왱 하면 기가 질려 간담이 서늘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리를 박아 피를 빨면 족하지(揷자전血斯足矣) 어찌하여 뼈속까지 독기를 불어넣느냐(吹毒次骨又胡然)”고 책망했다.

조선 후기 문신인 윤기(1741~1826) 역시 ‘모기에 시달리며(苦蚊)’라는 시에서 “하느님이 어찌 너를 살려두겠느냐(天帝胡寧忍汝生)”고 저주를 퍼부었다. 모기가 얼마나 귀찮고 무서운 존재였으면 ‘견문발검(見蚊拔劍)’이란 고사성어까지 생겼겠는가.
모기는 사람의 피부를 찌르면서 혈액의 응고를 막으려고 히루딘이란 타액을 주입한다. 이 타액 성분 때문에 가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이때 각종 병원균까지 함께 주입하니 ‘뼈속까지 독을 넣는’ 해충이라는 악명을 얻은 것이다.

요즘 지카바이러스를 옮기는 원흉으로 지목된 이집트숲모기(사진)가 아메리카 대륙에 전해진 것은 1650년 무렵이었다.

황열병균을 머금었던 이 모기들은 노예선을 타고 유유히 대륙을 건넜다. 생전 처음 이 모기에 물린 선원들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떼죽음을 당했다. 가까스로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에 닿은 생존자들은 뿔뿔이 도망쳤다. 황열병은 삽시간에 신대륙의 모든 항구도시를 초토화시켰다.

1802년 프랑스가 아이티에 3만 가까운 병력을 보냈지만 생환한 이는 6000명 뿐이었다. 역시 황열병·말라리아 때문이었다. 아이티인을 15만명 이상 죽인 프랑스를 이집트숲모기가 굴복시킨 것이다.
파나마 운하 건설의 운명을 바꾼 것도 역시 이집트숲모기였다. 파마나 운하는 1881년 프랑스의 페르디난드 드 레셉스가 30억 달러의 투자금을 모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사인부들이 설치한 오두막과, 그들이 정원용으로 꾸며놓은 물그릇이 끔찍한 화를 불렀다. 물그릇에서 잘 번식한 모기들이 방충망조차 설치하지 않았던 인부들을 마음껏 흡혈한 것이다.

총 3만명이 죽어나갔고, 공사는 결국 중단됐다. 레셉스의 아들·딸·사위는 물론 아내와 그 자신까지 황열병으로 죽었다. 파나마 운하공사의 마무리는 결국 미국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모기방재 비용이 너무 많았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그러니 인간의 역사는 ‘모기와의 전쟁’으로 점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싸우는 족족 일패도지(一敗塗地)다. 예컨대 1940년대말 유럽 전역에 엄청난 양의 살충제(DDT)를 뿌려댔다.

사람들은 드디어 모기박멸의 날이 다가왔다고 환호했다. 하지만 얼마후 독한 살충제를 이겨내고 더욱 강해진 모기들은 다시 사람을 맹렬히 공격했다. 지금도 해마다 100만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죽어가고 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지카바이러스가 창궐하자 너도나도 그 원흉인 이집트숲모기를 박멸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무려 1억7000만년을 살아왔던 모기에게 감히 도전장을 내미는 꼴이 우습지 않은가.

무려 1억7000만년을 살아왔던 모기에게 감히 도전장을 내미는 꼴이 우습다. 패배가 뻔한 싸움이다. 원래 모기가 살았던 숲과 나무, 습지를 복원해주고 그리 가라고 유도하면 될 일이다. 마구잡이 벌채와 도시화가 모기의 확산을 부추겼다고 하지 않은가.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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