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러-때려-비켜우로찔러-비켜우로베고때려-돌려쳐-막고차고돌려차….’

 

총검술 하면 군대훈련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1960~70년대 고등학교를 다녔던 올드보이들에게는 학창시절 지겹도록 배워야 했던 총검술 동작을 먼저 떠올린다.

 

1969년부터 총검술은 고교의 공통필수로 채택된 교련교육의 과목 중 하나였다.

 

교련교사의 명에 따라 우렁찬 구호와 함께 목제 M1 소총을 일사분란하게 휘둘러야 했다.

 

제식, 분열, 사격, 심지어는 수류탄 투척 훈련까지 했으니 학교운동장을 ‘연병장’으로 일컬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총검술은 적병과 1-1로 맞서는 백병전에서 필요한 전투기술이다. 사람을 죽여야 하는 싸움의 기술을 학교 안에서 배웠다는 것 자체가 끔찍한 기억이다.

 

만약 무장한 적병이 아니라 비무장 민간인에게 실제 총검을 휘두른다면 어떨까. 천인공노할 야만행위가 될 것이다.

 

1937년 12월 13일 중국 난징(南京)에 진입한 일본군이 그랬다.

 

6주 동안 최대 30만명의 민간인이 참혹한 죽임을 당했다. 일본군의 민간인 학살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면 몸서리가 처진다.

 

일본인 장교가 살아있는 민간인의 눈을 가린채 막대 두 개에 끼워놓고는 쉴새없이 총검술을 연습했다.

 

그런 뒤 ‘최후의 일격’으로 연습을 마무리했다.

 

일본군이 총검술로 중국인들을 마구 찔러 쓰러뜨린 뒤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고 일으키는 모습.|'아이리스 장의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난징 대학살 그 야만적인 진실의 기록>,  윤지환 옮김, 미다스북스, 2014년'에서

다른 사진을 보면 총검술로 무수하게 찔려 쓰러진 중국인에게 마지막으로 ‘찔러총’하려고 일으켜 세우는 장면도 등장한다.

 

술을 마시고 낄낄대며 총검을 휘둘렀다. 담력을 키운다는 명목이었다.

 

누가 먼저 100명의 목을 자르는지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생매장, 산채로 불태우기, 강간후 처형은 물론이고 혀뽑기에 사지절단까지…

 

그야말로 인간백정의 온갖 망나니짓을 해댄 것이 다름아닌 일본군이었다.

 

그런데도 일본 우익은 ‘난징 학살의 근거가 전혀 없으며, 증거 사진들도 죄다 조작된 것’라고 주장해왔다. 인간백정의 망나니짓을 자행했으면서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것이다.

소름 돋는 소식이 들린다. 일본 정부가 중학교 학습지도요령에 체육의 ‘무도’ 중 선택과목으로 총검술을 포함시켰다. 일본의 전통 무술 중 하나라는 주장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총으로 상대의 목과 몸통을 찌르는 것이 순수한 무도는 아니다. 게다가 군국주의 시대에 암송하던 ‘교육칙어’를 허용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아닌가.

 

새삼 어릴 적부터 교육칙어를 외우고, 총검술을 배우게 될 일본인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갑자기 가슴과 목이 서늘해진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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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