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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무인(巫人), 혹은 무당

한 무제(재위 기원전 141~87)는 점(占)을 끔찍이 사랑했다.

어느 날 무제가 며느리를 들일 날짜를 잡고 역술인 7명을 불렀다. 한데 7인7색이었다. 오행가는 “좋다(可)”고 했고, 풍수가는 “안된다(不可)”고 했다. 12진과 오행을 연결시켜 점친 자는 “아주 흉하다(大凶)”고 했다. 지루한 논쟁이 벌어졌다. 골머리를 앓던 무제는 “사람은 오행(五行)에 따라 살지 않느냐”며 오행가의 손을 들어줬다. 한 문제(기원전 180~157) 때의 일이다. 송충(宋忠)과 가의(賈誼)가 ‘용하다’는 점쟁이(사마계주)를 찾았다. 사마계주(司馬季主)는 과연 길흉의 징험을 꿰뚫고 있었다. 감탄사가 절로 터졌다.

“선생님같이 어진 분이 왜 이런 천한 일을 하십니까. 점쟁이는 과장된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거나 상하게 하고…. 게다가 귀신을 빙자해서 남의 재산을 빼앗지 않습….”

사마계주가 정색하며 말꼬리를 잘랐다.

“무슨 소리. 그래도 점쟁이는 천지와 인의를 따릅니다. 한데 당신들이 어질다는 자들이 누굽니까. 무능하고 부패하고도 나라의 봉록을 탐하는 자. 사익만 추구하는 자. 무거운 세금을 거두는 자. 이들 말입니까? 과연 누가 어질다는 말입니까?”

최근 어느 기업총수가 무속인의 예지를 믿고 선물(先物)에 수천억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사원 면접 때 역술인을 동석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기업총수 곁에 있던 무속인들은 과연 어떤 부류일까. ‘혹세무민’의 무당인가. 아니면 사마계주의 말처럼 ‘천지와 인의를 따르는(必法天地 順於仁義)’ 무인(巫人)인가. 어떤 경우든 통하는 금과옥조가 있다. ‘사람의 도리를 거스르고, 미신만 맹신하는 자는 귀신도 옳게 알려주지 않는다(背人道 信禎祥者 鬼神不得其正)’(<사기> ‘일자·귀책열전’).

이미 2000년 전에 인덕 없이, 노력 없이 점복에만 의존하는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1989년, 기원전 4500~3000년 유적인 중국 뉴허량(牛河梁)에서 무인(巫人)의 흔적이 발견됐다. 무인 형상의 옥(玉)인형(사진)이었다. 적석총에서 나왔다. 곰(熊)형 옥기도 있었다. 여신상을 모신 여신묘와 제단도 발견됐다. 제정일치 시대의 수장인 무(巫)가 하늘과 조상을 위한 제사를 지낸 흔적이었다. 중국학계는 ‘중화민족의 공동조상’이라 했다. 반면 한국학계는 수근댔다. ‘혹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熊女)를 모신 성소(聖所)가 아닐까’ 하고. 대체 어떤 속사정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