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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사무사(思無邪)'와 아베 정권

 “시 300편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논어> ‘위정편’)
 유명한 공자의 ‘사무사(思無邪)’ 발언이다. 공자는 민간에서 전승됐던 시 300여편을 모은 <시경(詩經)>을 가리켜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주옥같은 시 모음집’이라고 칭송했다. ‘사무사’는 공자의 창작 용어가 아니다. <시경>의 한 편인 ‘노송(魯頌) 경편(경篇)’에 등장하는 ‘사무사’ 구절을 인용했을 뿐이다.

무라야마 전 일본총리는 9일 열린 고노 전 관방장관과의 대담에 앞서' 방명록에 사무사(思無邪)를 적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왜곡을 꾸짖는 것이었다.|연합뉴스 

  “~생각에 사특함이 없으니 말(馬)을 생각함에 이에 미치는구나(思無邪 思馬斯조)”라는 대목이다. 이 시는 춘추시대 노나라 희공이 백성들의 밭을 피해 머나먼 목장(경)에서 말을 길렀음을 칭송한 노래였다. 키우던 말이 혹여 백성들의 곡식을 짓밟을까봐 목장을 먼 곳으로 조성했다는 시는 ‘덕정(德政)’의 상징으로 일컬어졌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공자는 왜 <시경> 300편 전체를 ‘사무사’라는 시의 한 구절만 인용하면서 정리했을까. 적확한 인용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과연 공자님이 ‘사무사’라는 화두를 던지자 후세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해석을 쏟아냈다. ‘공자가 마음에 드는 구절(사무사)만 잘라 인용한 것일 뿐(斷章取義)’(소동파)이라는 등, ‘사특함이 없는 생각을 통해 인간 인심의 실리를 얻고자 한 것’(정자)이라는 등….
 이렇듯 ‘공자왈’의 의미는 워낙 은미해서 그 해석이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공자가 남긴 알쏭달쏭한 ‘사무사’ 화두를 후세 사람들은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퇴계 이황은 사무사의 ‘무(無)’자를 ‘없게 하다’는 사역형으로도 읽을 수 있다고 했다(<논어석의>). ‘생각에 사특함이 없게 한다’는 해석을 통해 수양으로 ‘사무사’를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율곡 이이는 “사무사와 무불경(毋不敬·마음과 몸이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은 벽에 걸어두고 늘 잊지 말아야 한다”(<격몽요결>)고 강조했다.
 1452년(단종 즉위년) 어린 임금 단종이 ‘사무사’의 뜻을 물었을 때 박팽년이 깔끔하게 정리해준다(<단종실록>).
 “생각에 사사로움이 없는 바른 마음을 일컫는 것입니다. 임금의 마음이 바르면 모든 사물에서 바름을 얻을 것입니다.”
 박중손은 “임금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서 만백성을 교화시키려 한다면 백성이 불복종한다”고 덧붙였다.
 그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과의 기자회견에 앞서 방명록에 ‘사무사’ 구절을 썼다. 고노 전 장관은 ‘진실’이라 적었다고 한다. 역사를 왜곡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사특한 생각을 꾸짖는 뜻이리라.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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