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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아녀자 정치'를 욕보이지 마라

중국 역사를 쥐락펴락한 여인 둘을 꼽자면 바로 여태후(한나라)와 무측천(당나라·대주)이다.


여태후는 한고조 유방의 정부인이다. 한나라 창업의 공신인 한신과 경포, 팽월을 제거하고 통치의 초석을 마련한 여걸이다.

 

여태후의 계책에 말린 한신은 죽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내 아녀자(여후)에게 속았구나. 이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랴.(乃爲兒女子所詐 豈非天哉)”

 

당나라 고종과 무측천의 무덤인 건릉

■사람돼지와 토사구팽
그러면서 한신은 그 유명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고사를 남겼다.

 

물론 한고조는 한신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었다. 하지만 창업 이후, 한신처럼 빼어난 인물은 걸림돌일 뿐이었다. 여태후는 한나라를 위협할 수 있는 한신을 도모한 것이다. 창업공신인 경포와 팽월도 여태후의 계책에 목을 내놓고 말았다.

 

남편 고조가 죽자 여후의 아들인 효혜제(재위 기원전 195~188년)가 등극했다.

 

아들 대신 정권을 틀어쥔 여태후는 남편의 총애를 독차지했던 척부인과 그의 아들 여의(如意)를 무참하게 죽였다.

 

여의에게는 독주를 먹였다. 이어 척부인의 손발을 자르고, 눈을 뽑고, 귀를 태우고 벙어리 약을 먹여 돼지우리에서 살도록 했다. 그러면서 ‘사람돼지’라 불렀다.

 

여태후는 어린 아들 효혜제를 불러 ‘사람돼지’를 보도록 했다. 효혜제는 그 참상을 보고는 피눈물을 흘렸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저는 다시는 천하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사기> ‘여태후 본기’)

 

그 후 1년 간이나 병석에 누운 효혜제는 다시는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효혜제는 시름시름 앓다가 7년 만에 죽었다. 여후는 이후 여씨 일족을 제후로 봉하고, 황제를 수시로 갈아치웠다.

 

한나라는 기원전 180년, 여후가 죽을 때까지 15년동안 ‘여후의 나라’였다. 여후가 죽자 여씨 일족은 모두 주살됐다. 고조의 넷째아들인 대왕 유항(劉恒)이 황제에 오른다. ‘여후의 나라’는 다시 ‘유씨의 나라’로 바뀐다.

 

■고문과 도륙의 여황제
당나라 고종의 첩이던 무측천 역시 궁궐을 피바람으로 몰고 갔다. 태자를 독살한 뒤 자신이 세운 황제(중종)까지 강제 폐위시켰다.

 

당시 당나라에서는 “천하의 대권이 무측천의 한마디로 결정됐다”는 말이 퍼졌다.

 

“황제의 집무 때 황후는 발 뒤에서 모든 정사를 들었다. 천하의 대권이 모두 무측천에 귀속됐다. 관직의 승진과 강등, 생사여탈이 그녀의 말 한마디로 결정됐다. 천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외에서 그들을 이성(二聖)이라 했다.”(<자치통감>)

 

무측천의 무기는 무자비한 고문과 도륙이었다. 내준신, 주홍 등 혹리(酷吏)를 기용, 형용할 수 없는 갖가지 고문으로 고관대작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거꾸로 매달거나 목에 무거운 돌을 달거나, 콧구멍에 식초를 붓거나 철띠를 목에 둘러 옥죄는 등 고문방법도 다양했다.

 

“비밀 감옥에서 칼·몽둥이가 난무하고 모진 고문을 자행, 없는 죄도 자백”(<자치통감>)했으며, “고관대작들이 목이 잘린채 도륙당해 길바닥에 너저분하게” 널렸다.(<문원영화>)

 

종실 및 원로대신들은 조정에 출근하면서 가족들에게 “다시 만날까 모르겠다”고 두려워했다.

 

690년 급기야 무측천은 ‘대주’ 왕조를 세우고 스스로 황제가 됐다. 무측천은 황후로 28년, 태후로 6년, 황제로 15년을 살았다. 무려 49년간이나 중국대륙을 쥐락펴락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김부식의 여혐 발언
그러나 여태후와 무측천의 악행을 낱낱이 고발한 사마천(<사기>)과 사마광(<자치통감>)의 평가는 의미심장하다.

 

사마천은 “(여태후의) 안방 정치로 천하는 태평했다. 형벌도, 죄인도 드물었고 백성의 의식이 나날이 풍족해졌다”고 했다.

 

사마광은 “(무측천은) 상벌을 병행하면서 천하를 다스렸기에 유능한 인재가 잘 쓰였다”고 했다. 명나라 사상가 이지는 “무측천이 사랑한 이들은 모두 현인군자였다”고까지 했다.

 

여인의 정치를 ‘새벽에 암탉이 운다(牝鷄之晨)’고 폄훼했던 왕조시대 역사가들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들의 정치를 평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의 ‘선덕여왕’ 평은 ‘여혐의 극치’다.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하다. 어찌 늙은 아녀자(선덕여왕)가 안방을 나와 정사를 처리할 수 있는가. 나라가 망하지 않은게 다행이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두고 ‘국정을 농단한 아녀자 두 명’ ‘저잣거리 강남 아줌마’ 등의 위험한 여혐발언이 서슴없이 퍼져나온다.

 

사마천과 사마광의 의식에도 한참 못미치는 김부식류의 시대착오적인 인식이다. 작금의 사태는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는 대통령과 측근의 농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어찌 ‘홀로 살아온 여자 대통령이기 때문’이겠는가. 큰일 날 말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