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까지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불베이팅(bull baiting)’이라는 오락이 있었다.

이름하여 ‘소 골리기’인데, 경기내용은 자못 잔인하다.

먼저 기운 센 황소를 반경 30피트(9.14m) 정도만 움직일 수 있도록 말뚝에 묶어두고 소의 코에 잔뜩 고춧가루를 묻힌다.

날뛰기 시작한 황소는 달려드는 개들을 뿔로 치받거나 마구 흔들어 내동댕이친다.

이 오락은 개가 소의 코를 꽉 물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계속된다.

왜 불베이팅에 ‘참전한’ 영국산 개에 ‘불도그(블독·bulldog)’란 이름이 붙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단순한 오락은 아니었다.

1908년 오스트리아 자허 호텔을 운영했던 안나 자허 (1859~1930)가 두 마리 프렌치 불독을 애완견으로 키우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당대 영국에서는 소를 자극해야 고기의 육질이 좋아진다는 도축 규정까지 생겼을 정도로 ‘불베이팅’ 광풍이 불었다.

때려잡아야 개고기의 육질이 좋다는 예전의 속설이 통용되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런던의 서더크에서 벌어진 이벤트에서는 몰려든 관람객 때문에 관중석이 무너져 수십명의 사상자까지 기록했다.

1835년 ‘불베이팅’이 불법화하면서 불도그의 ‘파이터’ 효용가치는 사라진다.
대신 테리어와 퍼그 등과의 교접을 통해 몸집이 작아지고 성격 또한 온순해진 ‘애완견’의 모습으로 환골탈태했다.

1850년대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영국 노동자들이 프랑스로 이주하면서 이 ‘작은 불도그’를 데려왔다.

곧 ‘프렌치 불도그’의 이름을 얻은 이 개는 프랑스에서 ‘패션 도그’의 반열에 올랐다.

프랑스 상류사회 여성들은 물론 예술가와 작가, 패션 디자이너들도 ‘프렌치 불도그’를 다투어 찾았다.

프렌치 불도그를 다룬 세간의 ‘견평(犬評)’은 자못 우호적이다.

단단한 체격의 활력 넘치는 기질은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안겨준다. 장난을 좋아하지만 짖는 일이 거의 없다. 공동주택에 적합한 견종으로 사랑받은 이유다.

그러나 아무리 개량되었다지만 이 개에게는 투견의 피가 엄연히 흐른다. 절대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 말할 수 없다.
흔히 인간과 동반자 관계임을 강조하면서 반려견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사악한 인간이 워낙 많다보니 개는 최소한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도 일견 일리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개와 주인의 관계에서만 통용될 뿐이다.

개에게 ‘성선설’을 바랄 수 없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개는 다른 이들에게는 본능에 충실한 마리의 동물일 뿐이다.

개를 싫어하는 이들은 깜짝깜짝 놀란다.

제발 산책 때 똥 좀 바로 치우고, 목줄 좀 바투 채웠으면 한다. 반려견을 키우는 ‘페티켓’은 ‘우리 개는 다 물어요’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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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