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든 뭐든 자기 골문에 공을 넣는 행위를 영어로 ‘Own Goal’이라 한다.

약자로는 ‘O.G’라고 줄이는데, 가만 보면 ‘Oh! God!’의 축약일 수도 있으니 적절한 표현이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자살골(한국)이나 자살점(일본)이라 번역했다.

최악의 자살골은 1994년 미국 월드컵 축구대회 때 나왔다. 미국전에서 콜롬비아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상대방의 크로스에 발을 갖다댄게 그만 자기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다른 선수들은 고국팬들의 질책이 무서워 귀국을 꺼렸지만 에스코바르는 ‘쿨’하게 돌아왔다. 하지만 비극이 터졌다.

후반 추가시간에 자책골을 넣고 동료들의 위로를 받고 있는 모로코의 부핫도즈(가운데)

나이트클럽에서 시비가 붙은 끝에 에스코바르는 총격을 받아 사망한다. 총을 쏜 범인이 에스코바르를 향해 ‘골 골 골…’을 외쳤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에스코바르 사건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에서 ‘자살골’ 대신 ‘자책골’이나 그냥 ‘Own Goal’이라는 부드러운 표현이 등장했다.
물론 희한한 자책골도 있다. 1955년 아스널의 수비스 데니스 에반스는 블랙풀과의 경기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 경기가 끝난 줄 알고 자기 편 골문안에 공을 차넣었다.

관중의 호루라기 소리를 착각한 것이다. 4-0으로 리드한 상태였으니 망정이지 큰일 날 뻔 했다.

2012년 잉글랜드 리그 2(4부 리그) 옥스포드 수비수 마이클 듀베르는 헤어포드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지만 그 중 두 골은 자책골이었다. 듀베리는 종료 직전 만회골을 터뜨렸다. 해트트릭을 기록했는 데도 스코어는 2-2였다.
자살골이든 자책골이든 보통의 경우라면 일부러 자기 골대에 공을 넣은 선수는 없을 것이다. 골대 밖으로 향하는 상대의 슈팅이 재수없게 자기 몸에 맞아 골문 안으로 들어가던가, 혹은 문전으로 날아오는 공을 밖으로 쳐내려다가 골대로 빨려 들어가던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는 콜롬비아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에스코바르는 귀국후 총에 맞아 숨졌다.

자책골을 넣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선수는 스스로를 향한 수치심과 동료 및 팬들에 대한 죄책감에 휩싸일 것이다.

그 때문일까. 농구의 경우 실수로 자기편 림에 공을 넣었다 해도 자책골로 기록되지 않는다. 얼마전까지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상대방 선수의 득점으로 인정됐지만 요즘엔 바뀌었다. 상대팀 주장의 득점으로 인정된다. 아이스하키 자책골의 경우 가장 마지막으로 퍽을 맞춘 상대방 선수의 득점으로 기록된다.

자책골 만으로도 응분의 대가를 치렀을 터인데 굳이 이름까지 기록해서 선수를 두 번 죽일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반면 축구는 역사에 길이 남을 통계에 자책골의 장본인 이름을 또박또박 기록해놓고 있다. 고작 1~2골로 승패가 나뉘는 축구의 특성상 어느 종목보다 책임감이 강조되니 그럴수밖에 없다는 건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자책골이 세 골(17일 현재)이나 나왔다. 특히 모로코는 이란과의 예선전에서 아지즈 부핫두즈의 추가시간(95분) 자책골로 0-1로 패했다.

이란은 후반들어 슈팅하나 없이 고전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시간대에 상대 자책골로 승리를 거머쥔 셈이다. 이란 선수가 “그것도 축구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보냈다지만 수치심과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못하는 부핫두즈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없다.
설상가상으로 부핫데즈는 오욕의 장본인으로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게 생겼다. 국제축구연맹의 이란-모로코전의 월드컵 통계에 ‘이란 1-0 모로코, 득점자 부핫두즈 90+5분(OG)’이라고 기록해두었으니 말이다. 축구는 그런 면에서 너무도 가혹하다.

굳이 이름까지 기록해서 확인 사살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모로코 자책골(OG)’이라 하면 어디가 덧나나. 그뿐이 아니다.

지난 16일 호주전에서 넣은 프랑스 포그바의 결승골이 호주 수비수 베이치의 자책골로 정정됐다. 원래 골대 밖으로 나갔을 포그바의 슛이 베이치의 몸에 맞고 골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당초의 판정대로 포그바의 골로 인정하든가, 아니면 호주의 자책골로 기록하면 될 것을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쫓아다니며 "포그바 네 골이 아니냐, 베이치 자책골이야'라고 낙인찍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전 통계에도 ‘조광래(한국) 82분 자책골(Own goal)’이라 돼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르헨티나전 경기기록에도 ‘박주영 17분 자책골(OG)’이라 돼있다. 지울 수 없는 전과 같다.

반역죄나 강상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런 주홍글씨가 어디 있는가. 아무래도 국제축구연맹은 ‘자책골 전과자’를 대상으로 대사면령을 내려야 할 것 같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