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미국의 고고학자 윌리엄 랏제가 애리조나주 투손의 쓰레기 매립지를 발굴했다.

 

랏제는 출토된 기저귀·신문·플라스틱 등을 분석해서 이 지역의 생활상을 복원했다.

 

‘쓰레기 고고학’이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잡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6년 전 한국에서 이미 ‘쓰레기 고고학’의 개념을 활용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1965년 김원룡 교수가 이끈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졸업반 학생들의 ‘신앙촌’ 발굴이었다.

1957년 박태선 장로 일파가 설립한 신앙촌에는 65년 당시 1만 6000여명이 집단거주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신앙촌의 쓰레기 더미에서 ‘신앙촌 8년사(1957~65)’를 복원했다. 이들은 발굴결과를 토대로 ‘주개총(廚芥塚) 발굴을 통한 신앙촌의 문화복원’이라는 공동졸업논문을 발표했다.

 

‘주개’는 부엌(廚)에서 나오는 쓰레기(芥)를 일컫는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랏제나 서울대 고고학과 학생들도 쓰레기 고고학의 원조는 아니다.

서울대고고학과 졸업생들이 1965년 신앙촌 쓰레기장을 발굴하고 있다.

 

패총(貝塚·조개무지)은 옛 사람들이 먹고버린 음식물 쓰레기장이다. 원래 쓰레기는 썩어야 한다. 그러나 석회질로 된 조개 껍데기는 토양을 알칼리성으로 바꾼다. 때문에 패총 안에 들어있는 유물은 잘 썩지 않고 오래도록 남는다. 1960년대 말 대거 발굴된 동삼동 패총이 대표적이다.

 

기원전 6000년부터 기원전 2000년까지 무려 4000년의 신석기 시대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조개가면과 곰(熊) 모양의 흙인형, 그리고 최고급 조개팔찌까지 다양한 유물이 쏟아졌다.

 

국립민속박물관이 10월31일까지 열고 있는 특별전의 제목은 ‘쓰레기×사용설명서’이다.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낸 옛 사람들의 흔적이다.

 

그 중에는 뜻밖의 보물도 있다. 2004년 폐지 줍는 할머니의 손수레에 실려있던 다산 정약용의 서첩(하피첩)은 보물로 지정됐다.

 

어느 집 다락방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발견된 책(영조대왕 태실 석난간 조배의궤) 역시 보물로 신분이 급상승됐다.

 

윤선도 집안에서 못쓰던 물건을 정리하다가 쓰레기 더미에 내동댕이쳐진 종이에서 그림 한 점이 발견됐다. 공재 윤두서의 손자인 윤용(1704~1740)의 미인도(시진)였다.

 

‘버린 쓰레기도 다시 보자’는 격언이 생길 법하고, ‘이 쓰레기 같은…’이라는 욕설이 무색해질 법하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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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