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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지구인 바이러스의 화성 침공

알다시피 화성의 영어이름(Mars)은 로마 신화 속 전쟁의 신인 ‘마르스’에서 따왔다.
화성이 마치 전쟁의 불길처럼 붉은 빛을 띠었기 때문이다. 철이 산소와 결합, 즉 산화해서 녹이 슨 붉은 빛의 산화철이 화성 표면에 가득한 탓인지를 예전 사람들이 알리 만무했다. 기괴스럽기까지 한 붉은 화성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정서는 같았지만, 동양인들의 표현이 좀 더 심오했다. 형혹(熒惑)이라 했으니까….

미항공우주국(NASA) 화성탐사로봇 큐리오시티의 모습. 과학자들 일각에서는 지구의 세균이 오히려 화성을 오염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AP 연합뉴스

형(熒)은 등불이라는 뜻도 있지만 현혹시키다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동양에서 화성(형혹)은 전란의 조짐을 뜻하기도 했지만,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기분 나쁜 별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예컨대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으로 불바다가 된 뒤 폐허가 된 한양 땅을 다시 밟으며 장탄식을 내뱉는다.

“이미 수 년 전에 형혹이 적시(積尸·별자리의 하나)의 기운을 범하더니 마침내 이런 변(임진왜란)이 일어났다.”(<서애집>)

류성룡은 ‘임진왜란으로 백성의 9할이 죽은 책임’을 화성 탓으로 돌리고 있다.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의 경공은 형혹성이 나타나자 ‘임금의 앞날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며 걱정했다. 이때 천문관이 “모든 재앙을 재상이나 백성에게 돌릴 수 있다”고 경공에게 넌지시 권했다. 그러나 경공은 “재상은 임금의 손발이 되는 신하들이며, 백성없는 임금이란 있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재상과 백성을 사랑하는 경공의 마음씨에 감동한 화성(형혹)은 송나라 상공에서 3도를 옮겨갔다.(<사기> ‘송미자세가’) 이들 문헌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화성이 전갈자리의 심성(心星·안타레스)에 접근하는 걸 지극히 꺼렸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불길의 상징이던 화성이 최근에는 신비와 호기심의 대상으로 탈바꿈했다.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과학적 단서가 속출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는 그제 ‘소금 형태’의 액체 물을 확인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생명유지의 원천인 물이 액체상태로 확인됨으로써 화성에서 생명체를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는 획기적이다.
그런데 과학계 일각에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우려의 시선’을 던진다. 화성탐사선 혹은 장비에 달라붙은 지구의 세균이 거꾸로 화성을 오염시키면 어찌 되는가.

우주탐사장비에 붙어도, 혹은 진공상태인 로봇탐사선 내부에서도 끈덕지게 살아남는 게 세균이다. 만약 화성생물체가 '지구인 바이러스'에 오염된다면 어떻게 될까. 화성인에게는 미증유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