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치명적인 커피의 유혹

교황 클레멘트 8세(재위 1592~1605)는 “이슬람의 음료인 커피를 엄금해달라”는 사제들의 아우성에 시달렸다. 견디다못한 교황은 “그럼 한번 맛이나 보자”고 커피를 마셔봤다. 교황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아니. 이렇게 맛좋은 사탄의 음료를 이교도(이슬람교도)만 마시게 한단 말입니까. 여기에 세례를 베풀어 정식 기독교 음료로 만듭시다. 그렇게 해서 사탄을 우롱합시다.”

교황마저 커피의 짜릿한 맛에 반해 아예 커피에 세례를 베푼 것이다.
여러 커피의 기원설 가운데 염소치기 소년 이야기가 재미있다. 즉 고대 아비시니아(에피오피아)의 염소치기 소년인 칼디는 어느 날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한다.

어떤 나무에서 맨질맨질한 녹색 잎과 빨간 열매를 뜯어먹은 염소들이 서로 머리를 부딪치며 흥분한채 춤을 추고 있지 않은가. 호기심에 빠진 칼디 역시 잎과 열매를 먹었는데, 피곤함도 잊었고 노래가 줄줄 입 밖으로 나왔다. 칼디가 맛본 커피는 훗날 에피오피아~

커피나무.

홍해를 넘어 아랍인들의 기운을 돋워주는 마법의 음료가 됐다.

아랍 곳곳에 세워진 커피하우스는 지배자를 겨냥한 풍자시들의 근거지가 됐다. 아랍의 지도자들은 커피를 마시는 자들을 몽둥이형으로 다스리고, 심한 경우엔 자루에 넣어 바다에 던지는 극형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물리적인 탄압으로 인간의 커피중독을 통제할 수는 없었다. 오스만제국에서는 아내의 커피 하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규정까지 생겼다. 클레멘트 교황의 ‘커피 세례’ 이후 유럽 역시 커피에 중독됐다.

프랑스 작가인 오노레 발자크는 물을 거의 타지않은 커피가루를 빈속에 털어넣고는 “정신이 확 깨어난다. 아이디어가 즉각 행군한다”고 외쳤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커피콩 60개로 추출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커피홍보음악(‘커피 칸타타’)까지 작곡했다. 딸이 아버지에게 커피를 마시게 해달라고 조르는 곡이다.

‘아버지 그러지 마세요…커피는 천 번의 키스보다 더 감미롭고…커피 없인 못살아요. 누구든 커피로 유혹하면 전 넘어갈 거에요.’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2007년 2300여개에 불과하던 국내 커피전문점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5만개에 이르렀다는 통계가 있다.

한 집 건너 생긴 커피점마다 긴 줄을 서는 낯익은 모습에서 커피공화국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하루 석잔씩 마시지 않으면 구운 염소고기 마냥 바싹 마른다’는 ‘커피 칸타타’ 가사가 절로 떠오른다.

여기에 세계보건기구(WTO)마저 커피를 발암물질 리스트에서 제외시켰으니 마지막 남은 족쇄마저 푼 격이다. 아니 커피가 자궁암·전립선암을 줄이는데 좋다는 발표까지 했으니 오히려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지독한 커피의 유혹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