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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태릉선수촌도 문화재다

 중종의 둘째 계비인 문정왕후는 아들(명종) 대신 8년이나 수렴청정하며 권세를 휘둘렀다. ‘여주(女主·여왕) 때문에 나라가 망할 지경’이라는 대자보까지 시중에 나붙었다.

   왕후의 소원은 남편(중종) 곁에 묻히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첫째 계비(장경왕후)와 합장한 남편(서삼릉 소재)을 정릉(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기는 무리수를 뒀다. 하지만 1565년 승하한 왕후는 끝내 남편 곁에 가지 못한 채 태릉(노원구 공릉동)에 안장됐다. 중종 능의 지대가 너무 낮아 물이 스몄기 때문이다. 문정왕후로서는 아들(명종)과 며느리(인순왕후)가 태릉과 이웃한 강릉에 나란히 묻힌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을까.

태릉선수촌의 로프클라이밍 훈련은 대표선수들의 지옥훈련의 상징이었다. 2004년 선수촌을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로프클라이밍 훈련을 시도해보고 있다.|경향신문 사진자료

 그 후 400년이 지난 1965년 어느 날 화장실에서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의 뇌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태·강릉’ 지역이었다. 체육관을 이리저리 전전해야 했던 대표선수들에게 불암산 아래 공기 좋은 그곳은 훈련장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결국 “나무 한 그루도 상하지 않게 건설하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조건부 허락 아래 태릉선수촌이 건설됐다.

   태릉선수촌은 한국엘리트 스포츠의 요람이 됐다. 개촌 이후 대표선수들이 따낸 하계올림픽 메달만도 234개다. 메달뿐이랴.

   어려웠던 때, 별로 내세울 게 없었던 시대에 축 처진 국민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 이들이 바로 선수촌에서 피와 땀, 혼을 쏟아낸 그 시대 젊은이들이었다.

   지옥훈련의 대명사인 로프클라이밍 훈련과 단내 풀풀 풍기며 불암산 눈물고개를 오르내린 10㎞ 산악훈련 등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됐다. 선수촌의 건물 하나, 나무 한 그루, 흙 한 줌도 태릉의 새 역사가 됐다.
 태릉선수촌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의 복원 계획에 따라 완전 철거될 운명이었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문화재청에 태릉선수촌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신청했다. 조선왕릉처럼 태릉선수촌도 역시 문화재이니 철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일리있는 말이다. 기억과 기록은 있는데 정작 해당 시설이 사라져버린다면 어찌 되는가. 반쪽의 역사만 남을 뿐이다. 최근 유네스코 역시 문화유산의 무조건적인 철거와 복원보다는 현대도시가 겪는 변화를 인정하는 추세다. 다름 아닌 공존의 방법을 찾으라는 뜻이다. 이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