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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길주 지진, 백두산 화산폭발 방아쇠 당기나

거란은 925년 12월 독한 마음을 품고 발해 침공에 나섰지만 싱거운 승리를 거둔다.

보름도 지나지 않은 926년 1월 발해 임금 대인선(재위 906~926)이 무조건 항복했다. <요사>가 전하는 항복의 순간은 치욕적이다.

대인선은 ‘흰옷을 입고 양을 끌고 또 신하 300여 명과 함께’ 항복한다. 발해(698~926년)는 15대 229년 만에 멸망했다.

이상한 일이다. 해동성국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승승장구했던 발해로서는 너무도 허망한 멸망이다.

고구려의 광활한 고토를 거의 대부분 차지했던 발해제국이 보름도 되지 않아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다. <요사>는 “발해의 민심이 멀어진 틈을 무혈입성했다”고 전했다.

10세기 화산폭발로 타버린 나무(탄화목). 이 탄화목 나이테의 중심연대는 933~934년 사이이다.

의문점이 생긴다. 해동성국’ 발해는 왜 변변히 싸워보지도 않고 멸망했을까.

백두산 화산폭발 때문인가.

그러나 화산학자들의 분석결과 백두산 화산폭발은 대략 934~946년 사이에 발생했다. 따라서 백두산 화산폭발과 발해멸망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러나 발해멸망을 전후로 약 50년동안 발해인 60만명이 거란에 의해 강제이주당하거나 스스로 탈출을 감행한다. 이 때문에 백두산 화산 폭발의 전조 탓에 발해가 스스로 무너졌고, 폭발 후유증으로 ‘엑소더스’가 이어졌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당대 백두산 폭발은 인류가 역사시대에 겪은 최악의 화산폭발이었다.

기원후 61년 폼페이를 순식간에 매몰시킨 베수비오 화산이 50개 터진 꼴이었다. 폭발이 뿜어낸 화산쇄설물(83~117㎦)은 25㎞ 이상 솟구쳤다가 곤두박칠 쳤다.

700~800도에 이르는 화산쇄설물(83~117㎦)은 천지의 물과 빙하를 녹인 뒤 거대한 해일로 변해 시속

10세기 백두산화산폭발로 형성된 화산재는 일본 홋카이도까지 퍼졌다. 

150㎞로 계곡과 산등성이를 질주했다. 영국 화산학자 로빈 앤드루스의 표현처럼 당시 사람들에게 ‘세상의 종말’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랬던 백두산에서 2000년대들어 대폭발의 전조증상이 보였다. 화산가스 중 헬륨과 수소의 합량이 10배 이상 급증했고, 천지 주변의 지형이 10㎝ 이상 팽창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핵실험이 가뜩이나 민감한 백두산 마그마방을 자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9월초 북한이 6차 핵실험을 벌인 함경북도 길주군 일대에서 ‘핵실험 유발지진’이 7차례나 일어났다. 백두산과 116㎞ 떨어진 곳이다.

물론 핵실험에 의해 규모 7.0 이상의 인공지진이 일어나야 백두산 마그마방을 직접 자극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은 규모 5.7~6.3의 인공지진을 일으켰다.

따라서 지나친 걱정은 ‘기우(杞憂)’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더 강력한 수소폭탄 실험으로 규모 7.0 이상의 인공지진이 발생한다면 어찌되는가. 백두산 천지엔 지금 20억t의 물이 담겨있다.

만약 백두산 화산이 폭발한다면 ‘세상의 종말’을 겪을 이들은 북한 사람들이다. 핵개발에 성공했다고 박수치고 좋아할 때가 아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