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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

1500년전 아라가야에도 수도방위사령부가 있었다

가야연맹 6개국 중 주요국이었던 경남 함안의 아라가야 왕성터에서 지금의 수도방위사령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부대시설이 확인됐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18일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의 하나로 아라가야 왕궁터를 발굴조사한 결과 망루와 창고, 고상건물, 수혈건물, 집수지 등 특수목적 건물터 14개동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추정왕궁터에서 확인된 부대시설.   공지(연병장)와 내무반(부뚜막 있는 건물지), 망루, 강당(1호 고상건물지)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지금의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부대일 가능성이 짙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이 건물군은 가운데 빈터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것은 왕성 내부의 공간구조와 관련 의도된 기획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대형인 8m×6m의 7호 건물터의 내부에서는 다량의 쇠화살촉과 작은칼, 말발걸이 등 주로 무기류가 발견됐다. 건물터에서 부뚜막 등 조리시설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무기창고로 추정된다.

10호 건물지 등은 판석을 세워 긴 네모꼴의 정교한 건물터를 조성하고 길이 약 5m의 부뚜막을 설치했다. 다른 수혈건물터에서도 부뚜막과 함께 쇠화살촉과 쇠도끼, 비늘갑옷편, 토기받침, 기호가 새겨진 손잡이잔 등이 쏟아져 나왔다. 요즘으로 치면 군대의 내무반이라는 얘기다. 

2호 건물지. 부뚜막과 석촉 등으로 볼 때 군인들이 상주한 내무반 유구일 가능성이 짙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이곳에서는 또 왕성을 지키는 망루와 대형건물지가 확인됐다. 망루는 기둥구멍의 직경과 깊이가 1m가 넘는 것으로 보아 엄청난 높이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망루의 평면규모는 4m×4m로 추정된다. 왕성을 지키기 위해 외부의 적군 동태를 감지했던 시설일 것이다. 

규모 30m×6m의 대형건물지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야지역 고상건물지 중에서는 상당히 큰 편에 속한다. 고상건물은 바닥을 땅 위나 물 위에 높게 띄운 건물이다. 보통은 습기 등을 막기 위한 창고용으로 쓰였고, 더러는 종교건물이나 궁전·귀족의 저택·누각으로 조성되었다. 강동석 실장은 “54평에 달하는 이 큰 규모의 건물터 안에는 다른 시설이나 유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건물의 용도는 아직 추정할 수는 없지만 부대원들이 모일 수 있는 강당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출토 토기는 5세기 중반~6세기 중반으로 편년된다. 

적군을 감시한 것으로 보이는 망루(2호 고상건물지) 유구. 깊이 1m, 폭 1m의 기둥 구멍으로 보아 상당히 높은 망루가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강동석 실장은 “일반적인 집자리나 건물지에서는 보이지 않는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면서 “이것은 철제무기로 무장한 군사집단이 왕성을 방어하기 위해 상시 거주했던 시설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금으로 치면 아라가야 왕성을 지키던 수방사 부대터일 가능성이 짙다. 부대라 가정한다면 연병장(공지)을 중심으로 무기고(7호건물)와 내무반(부뚜막있는 수혈건물터들), 망루(2호 건물지), 강당(고상건물) 등으로 추정해볼 수 있겠다.  

아라가야는 가야연맹체의 중심국으로서 위상을 떨쳤다. 4세기 말까지는 구야국(금관가야)와 함께 전기 가야연맹의 양대세력으로, 5세기 후반부터는 대가야를 중심으로 재편된 후기 가야연맹체에서는 남서부 중심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추정 내무반 건물에서 출토된 각종 생활용기들

특히 529년 대가야가 신라와 결혼동맹을 맺는 등 굴욕외교를 펼치고 신라가 529년 탁기탄(啄己呑·경남 밀양)을 멸망시키는 등 국제정세가 급변했다. 이때 대가야를 불신한 남부의 여러 세력은 아라가야를 중심으로 자구책을 모색한다. 아라가야는 이때 백제·신라·왜(倭)의 사신을 초빙하여 새롭게 조성한 고당(高堂)에서 국제회의를 열었다.(<일본서기>) 

그러나 이 고당회의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아라가야는 부침을 거듭한 뒤 백제의 부용국으로 전락했다가 550년대 신라가 백제를 물리치고 한강유역을 차지한 뒤 여세를 몰아 가야지역의 병합을 추진하자 신라에 투항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이번 정부의 국정과제인 가야문화권 조사·정비사업의 성과가 가시화했다는데 의미가 있다”면서 “최종목표인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기반 조성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