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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1991년 남북탁구단일팀 첫 해후

ㆍ46일간의 ‘작은통일’

어언 18년 전의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1991년 3월25일 오후,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할 남북단일팀 ‘코리아’가 한 달간의 합동전지훈련을 위해 일본에서 해후했다. 취재차 남측선수단과 같은 비행기를 탔던 기자가 입국수속을 마치자마자 역시 막 도착한 북측선수단을 만나러 무거운 짐을 끈 채 마구 뛰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분단 46년 만의 첫 만남. 한반도를 그린 ‘파란 단기’의 기치 아래 남북의 젊은이들은 전지훈련 도중 금방 ‘작은 통일’을 이뤘다. 

남은 북을, 북은 남을 모방했다. 북한 리분희는 저도 모르게 ‘앗싸’ 대신 ‘파이팅’을 외쳤고, 현정화는 ‘기랬지. 이 동무들’하면서 북측 말을 흉내냈다. 4월24일 개막된 대회에서 현정화·홍차옥(이상 남측)·리분희·유순복(이상 북측)으로 구성된 여자팀은 10전승으로 결승에 올랐다. 결승진출까지는 남측의 현정화가 팀을 이끌었다. 특히 난적 헝가리와의 준결승에서 리분희·유순복의 부진 속에 현정화가 2단1복을 따냈다. 코리아의 결승상대는 중국. 누구도 중국의 우승을 의심치 않았다. 

이번에는 북측의 유순복이 나섰다. 유순복은 첫 단식에서 ‘핑퐁마녀’ 덩야핑을 2-1로 침몰시킨 뒤, 종합스코어 2-2로 맞선 마지막 단식경기에서 가오쥔을 2-0으로 꺾었다. 덩야핑·차오훙·가오쥔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지금도 떠오른다. 전문가들은 “북측 유순복의 우직한 스카이 서브와 백핸드 푸시에, 남측의 전진속공과 강한 회전 드라이브를 접목시킨 게 주효했다”고 입을 모았다. 1973년 사라예보대회 우승 이후 18년 만의 여자단체전 우승. 약 한 달간의 ‘통일연습’만으로도 코리아 단일팀은 ‘세계최강’이 된 것이다. 남북통일의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확인시켜준 ‘46일간의 통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만. 5월7일 눈물 속에 헤어진 남북탁구 ‘코리아’는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대결 속에 더는 구성되지 못했다. 기자와 스스럼없이 농을 나눴던 북한선수들이 떠오른다. 대회 이후 연인사이였던 김성희와 리분희는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건강이 좋지 않단다. 우승의 주역 유순복과 남자 에이스였던 리근상은 지금 주니어 선수들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되었다. 이후에도 단일팀 선수들은 해외 대회에 출전해서는 ‘이산가족의 상봉’을 즐겼다. 요즘도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