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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5개의 태양과 동이족 신화

 영화 <스타워즈>에는 태양이 두 개, 즉 쌍성이 뜨는 타투인이라는 행성이 등장한다.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가 자랐던 곳이다. 그러나 ‘2개의 태양’은 첨단 시대의 상상력 치고는 좀 박약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려 10개의 태양이 뜨는 드라마 같은 신화가 이미 4500년 전 동양에서 탄생했으니 말이다.

  즉 <산해경>, <회남자>, <초사> 등 중국문헌에 나온 이야기를 종합한 재미있는 전설이야기가 하나 나온다. 

 각저총 주실 천정에 그려진 일중삼족오. 삼족오의 전형적인 모양이다. 오회분 삼족오와 함께 대표 문양으로 평가된다. 태양 가운데 삼족오가 있다. 이것은 동양신화에 등장하는 예와 '10개의 태양'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태평성대의 시절이라는 요임금 때의 일이다. 산동지방으로부터 바다 동쪽, 태양이 솟는 곳에 양곡(暘谷)이 있었다. 이곳을 지배한 이는 동방의 천제 제준(帝俊)이었다. 부인은 태양의 여신 희화(羲和)였다, 둘은 모두 10명의 아들, 즉 10개의 태양을 낳았다
  이들은 열흘을 주기로 하루에 하나씩 번갈아가며 떠올랐다. 태양엔 모두 세발 달린 까마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매일매일 반복되는 운행주기에 10개의 태양들은 싫증을 느꼈다. 어느 날 장난기가 발동한 태양들이 부모 몰래 일제히 떠올랐다. ‘우리는 재밌게 한번 놀아보고…. 인간들에게는 또 열배의 이익을 안겨주면 되고…. 그러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세상은 정반대로 돌아갔다. 10개의 태양이 쏟아내는 땡볕에 만물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요임금의 호소를 듣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부모가 말렸지만 아들(태양)들은 듣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명궁 ‘예’를 파견했다.

  예는 태양을 차례차례 쏘아 맞추기 시작했다. 빛을 잃고 떨어지는 태양을 보니 그것은 심장에 화살이 박힌 삼족오였다. 예가 10개 중 9개의 태양을 떨어뜨리자 요 임금의 걱정이 하늘을 찔렀다. 10개 모두가 떨어지면 암흑천지가 되어 종말이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요 임금은 화살 하나를 감추었다. 이로써 한 개의 태양만이 남게 됐다.   

  그러나 예는 고국(천제의 나라)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귀한 아들 9명이나 잃은 천제(제준)가 예의 지나친 징벌에 화를 낸 것이다. 할 수 없이 지상을 떠돌던 예는 물의 신인 하백의 아내와 불륜에 빠졌다. 예의 본부인인 항아(姮娥)는 남편의 일탈에 분노했다. 항아는 남편이 얻어온 불사약을 혼자 마시고는 달로 올라가 버렸다. 뒤늦게 남편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빠진 항아는 두꺼비로 변신했다.

  한편 지상에 남아야 했던 예는 제자들에게 활을 가르치면서 시름을 달랬다. 그런데 제자 가운데 봉몽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아무리 활을 잘 쏜다해도 스승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여겼다. 질투에 사로잡힌 봉몽은 스승을 죽이려 마음 먹었다.  

영국 과학자들이 250억광년 떨어진 곳에서 관측한 5개의 태양. 지구와 비슷한 환경의 행성에서 보면 5개의 태양이 지평선 위에 떠오르는 모습을 볼 것이다. 

봉몽은 길목에 숨어 있다가 복숭아 방망이로 사냥을 바치고 돌아오는 스승(예)을 때려 죽였다. 10개의 태양으로부터 세상을 지킨 예는 이렇게 허무한 종말을 맞는다.
  지금 이 순간도 동이족의 제삿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귀신의 우두머리인 예도 싫어하는 복숭아를 조상귀신들이 더더군다나 좋아할 리 없기 때문이다. 복숭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예’의 전설은 동이의 전설이 분명하다. 중국의 신화학자들도 ‘예’를 동이계 종족의 신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이야기가 신화라고는 하지만 동이족이 태양 10개가 내리 쬐는 불지옥에서 세상을 구해냈다는 얘기가 된다.
  태양은 수소(92.1%)와 헬륨(7.8%)으로 구성돼있다. 수소가 헬륨으로 핵융합되면서 에너지가 발산해서 빛이 나고, 온도도 높아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1㎏의 수소가 헬륨으로 융합되더라도 거대한 핵발전소의 5일 생산량(1억800만㎾)의 에너지가 나온다.

  태양은 매초 6억t의 수소를 헬륨으로 변환한다. 그 과정에서 뿜어져나오는 에너지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섭씨 30도를 웃돌아도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판에 표면온도만 섭씨 5700도에 이르는 태양이 두 개 이상 뜬다면 어찌 되겠는가.

  최근 영국천문학자들이 지구에서 250억광년 떨어진 곳에서 다섯쌍둥이 항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곳에 지구와 같은 행성이 있다면 5개의 태양이 떠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4500년 전에 9개도 해치웠는데 5개 밖에 안된다니 동이족의 후예로서 출동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객적은 생각이 든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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