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ㅈㅇㅎㄱㄷ ㄱㅈㅅㅇㅇㅇ ㅈㄱㅇㅌㅎㄹ

‘ㅇㄷㅇ ㅈㅎㄱ’ ‘ㅇㄷㅇ ㅂㅅㄱㄷㄹㄱㅇㅇ’ ‘ㅃㄹㅇ!!’

한 2년 전 딸과 재미삼아 나눈 카톡의 초성문자 대화다. ‘어디야 집? 학교?’ ‘연대 앞, 버스 기다리고 있어!’ ‘빨리와!!’까지는 그래도 소통이 가능했다. 그러나 딸이 보낸 다음의 카톡은 해득불능이었다.

‘ㅇㅇㅂㅅㅈㅉㅇㅇㄴ!!’

도저히 해득할 수 없던 필자가 ‘ㅁㄹ(뭐래)’라 핀잔을 주었더니 ‘응응, 버스진짜안오네!!라는 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딸과의 소통은 거기서 한계를 드러냈다. 그저 시도를 해봤다는 데 만족했을 뿐이다.
그나마 츤데레(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사람)나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 안궁안물(안 궁금해서 안 물어봄) 같은 신조어는 인터넷 사전을 찾아 해득할 수 있다.

하지만 초성문자의 나열은 차원을 달리한다. 기본적으로는 편리한 소통을 추구하는 신세대의 어법이다. 그러나 자신의 속마음을 초성의 나열로 알듯 모를듯 전하고 싶은 심리도 깔려있다.

1801년 경상도 일원에 붙은 대자보의 밑부분에 ‘十爭一口’라는 네글자가 쓰여져 있었다. 설왕설래 끝에 이 글자는 ‘10월21일 갑자일에 변란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지금의 네티즌 수사대를 연상할 수 있는 기상천외한 해석 솜씨다.   

그러니 나열된 초성문자를 받는 이는 상대방의 속뜻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부끄러운 나머지 좋은 감정을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욕설을 에둘러 언급한 것은 아닐까. 오죽하면 초성을 배열한 상대방의 문자가 무슨 뜻인지 해석해달라는 질문이 포털사이트에 쇄도한다. 필자는 찾지못했지만 초성해석기 앱까지 존재한단다.
왕조시대에는 ‘파자(破字)’가 있었다. 1126년(고려 인종) 권신 이자겸은 이(李)자의 파자인 ‘十八子’가 왕이 된다는 요설을 퍼뜨렸다.

1388년(고려 우왕) 무렵엔 역시 이성계를 지칭하는 ‘木子(李)’가 왕이 된다는 목자득국(木子得國)의 동요가 퍼졌다.

 그러나 1801년(조선 순조) 경상도 하동·의령·창원에서 붙은 민란 선동 대자보에 적힌 ‘파자’ 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다.

이때 붙은 대자보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여 봉기하라”는 내용을 담았고, 그 밑에는 ‘十爭一口(십쟁일구)’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수수께끼 같은 ‘십쟁일구’의 뜻이 무엇인지 설왕설래했다. 수사 과정에서 실마리가 잡혔다. 즉 ‘십쟁일구(十爭一口)’에서 ‘爭’의 윗부분에 있는 ‘爪(조)’는 글씨를 보면 ‘月(월)’자와 비슷하고, 밑의 ‘尹(윤)’은 ‘甲(갑)’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또 ‘一’은 ‘口’와 합치면 ‘日(일)’이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십쟁일구는 ‘시월갑일(十月甲日)‘, 즉 10월 갑자일인 21일에 변란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요즘의 네티즌수사대 뺨치는 귀신같은 해석능력이다.
지난 주말 인터넷 공간에서 초성문자 퀴즈대회가 열렸다.

자유한국당 김종석 의원이 지난해말 전기생활안전법 통과를 촉구하며 본회의 참석을 제촉한 시민에게 날린 ‘ㅁㅊㅅㄲ ㅅㄱㅂㅊ’를 해석하는 열기가 뜨거웠다.

‘ㅁㅊㅅㄲ’는 알 것 같은 욕설이다. 그러나 천하의 네티즌수사대도 ‘ㅅㄱㅂㅊ’ 대목는 아직까지 해석불가다. ‘세금바쳐’ ‘시건방춤’ 등 온갖 추론을 하고 있지만 역불급이다.

‘시건방진(친)’의 오타가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다. 물론 김의원 본인은 아무 의미가 없는 문자열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주 친한 사이에도 오해를 빚을 수 있는, 그것도 욕설로 해석되는 초성문자를 시민에게 보냈다니….

그 어려운 ‘십쟁일구’ 글씨를 귀신같이 해석한 조선조 순조시대의 수사팀을 불러와야 하는 것인가. 때마침 정의당의 성명이 재치넘친다. 그 성명에 보태 초성문자를 만들어볼까.

"ㅈㅇㅎㄱㄷ ㄱㅈㅅㅇㅇㅇ ㅈㄱㅇㅌㅎㄹ(자유한국당 김종석 의원은 정계은퇴하라)"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