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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검은개 증후군'과 청와대 퍼스트도그

 [여적] ‘검은개 증후군’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1874~1965)은 평생 우울증과 싸웠다.

 

1965년 9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도 “정말 지루했다”는 말을 남겼다.

 

그런 처칠이 자신을 괴롭힌 우울증을 표현한 말이 있다.

 

“평생 나를 따라다닌 검은개(블랙독)가 있다.”

 

1911년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도 “내 블랙독(우울증)이 다시 날 찾아오면…”이라고 했다.

인류가 ‘검은개’를 터부시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검은개와 그 새끼들을 불길한 징조로 여기는 신화를 소개했다.

 

켈트족 속담에도 “검은 개나 검은 안개가 나타나면 겁에 질린다”고 했다.

 

개를 정결하지 못한 동물로 여긴 이슬람에서 검은개는 반드시 죽여야 할 악마로 간주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6일 청와대 관저앞 인수문에서 동물권단체 ‘케어‘ 로 부터  검정색 털의 유기견 ‘토리’를 건네 받았다. |청와대 제공

 

그런 검은개를 우울증과 연결시킨 이는 영국의 작가 새뮤얼 존슨(1709~1784)이었다.

 

그러나 ‘검은개=우울증’의 비유를 대중화한 이는 뭐니뭐니해도 처칠이었다.

 

국내에도 번역출간된 우울증 치료책의 이름도 처칠의 표현을 딴 <굿바이 블랙독>이었다.

 

저자인 매튜 존스톤은 아예 검은개를 우울증의 상징 삽화로 썼다. 저자는 검은개는 어려운 시기에 다가오는 악마와 같은 존재라 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의 ‘내 안에는 검은개, 즉 블랙독이 산다’고 표현했다. 영어사전도 ‘블랙독(black dog)’을 ‘우울증, 낙담’으로 풀이한다.

이런 좋지않은 이미지는 자연 ‘검은개(블랙독) 증후군’으로 비화했다.

 

아무래도 검은 털의 개 입양을 기피한다는 속설에서 나온 말이다.

 

검은색을 죽음이나 혹은 마녀를 상징했고, 검은개 하면 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곳에서 공격적인 이미지로 그렸기에 그런 편견이 생겼을 것이다. 물론 근거는 전혀 없다.

 

미국 로스앤젤리스의 경우 입양된 개의 28%가 검은개였다는 통계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입양한 토리 역시 이 ‘블랙독 신드롬’ 때문에 희생될 뻔했다.

 

식용견으로 팔려가기 직전 극적으로 구조됐지만 1년 반이나 입양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검은털’ 때문이었다. 대선 유세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눈에 들지 않았다면 운명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토리는 그나마 행운을 잡았지만 아직도 ‘검다’는 이유로 입양되지 않은 개가 많다. 영국에서는 동물보호단체들이 지정한 ‘검은고양이의 날(10월27일)’이 있다고 한다.

 

털색깔 때문에 천대받아온 검은 고양이를 위한 기념일이란다. 역시 차별과 편견의 상징동물인 토리의 청와대 입양일을 기념해 ‘검은개의 날’로 지정할 수도 있겠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