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삶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오바마

 “Amazing grace…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I a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가장 사랑받는 찬송가로 통한다. 이 곡은 한때 노예무역상인이었던 존 뉴턴(1725~1807)이 만들었다고 한다. 1748년 노예무역선을 이끌던 뉴턴의 배는 엄청난 폭풍우에 휩쓸려 전복 일보 직전에 놓였다. 뉴턴은 죽음을 맞이할 각오로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배는 기적처럼 폭풍우에서 벗어났다.    

 제2의 삶을 살게 된 뉴턴은 성공회 사제의 길을 택했고, 유명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썼다(1772년). “한때는 길 잃고, 한때는 장님이었던 죄인(노예무역 종사자)조차 살리신 하나님의 은총”을 가사에 담은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사냥당한 흑인들을 쇠사슬로 묶어 마치 짐짝처럼 실어나르던 노예무역상의 참회였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기독교인의 찬송가로만 불리지 않았다.
 뉴턴을 끔찍이 존경했던 영국 국회의원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는 150여차례의 의회 투쟁 끝에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1807년). 1838년 미국에서는 ‘인디언 이주법’에 따라 체로키 인디언들의 강제이주가 집행됐다. 3500㎞가 넘는 이 ‘눈물의 길(Trail of Tears)’에서 희생된 인디언은 5000여명에 이르렀다. 체로키 인디언들이 서로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부른 곡이 바로 ‘어메이징 그레이스’였다.

   이후에도 남북전쟁(1861~1865)이나 흑인운동 및 반전운동(1960년대)에서도 불렸다. 보이지 않는 힘과 일체감, 깨우침, 치유, 화합, 용서 등의 다양한 의미로 사랑받았던 것이다.
 지난 26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탄에 희생된 흑인 목사의 영결식장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예상치 못한 무반주 독창에 뒤늦게 오르간 반주가 따라갔지만 6000여명의 합창에 묻혔다. 희생자 9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국가는 희생자 가족과 고통을 나누겠다”고도 했다.

   누구(백인)를 꾸짖는다기보다 ‘놀라운 은총(어메이징 그레이스)’을 부르면서 용서와 화합을 끌어냈다.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고 한다. “오바마가 대통령이라 다행이다.”  이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