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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연산군에게 직언한 신하도 있었다

통칭 임금의 눈과 귀를 가리는 신하를 일컬어 ‘간신(姦臣)’이라 한다.
하지만 간신이라고 해서 다 같은 간신이 아니다. 전한의 대학자인 유향(기원전 77~6)은 간신 및 아첨꾼의 특징을 6가지로 일컬었다. 이것이 유향의 육사론(六邪論)이다.
“녹봉만 기다리고 사사로운 이익만 취하며 자리만 채우는 신하는 구신(具臣)이다. 임금의 눈과 귀를 가리고 말과 행동이 다 옳다고 하면서 영합하는 신하는 유신(諛臣)이다. 음흉하지만 겉으로 근면한 척 좋은 말과 표정을 지어 임금의 임용기준을 흐리게 만들고 신상필벌의 명령도 실행되지 않게 하는 자는 간신(姦臣)이다. 지혜와 말재주는 뛰어나지만 안으로는 골육의 정을 이간질하고, 밖으로 조정을 어지럽히는 자는 참신(讒臣)이다. 권세를 갖고 당파를 지어 자기 세력을 더욱 쌓아 위세를 높이려는 자는 적신(賊臣)이다.”
그러면서 유향은 가장 간신·아첨배 가운데서 가장 악질을 ‘망국신(亡國臣)’이라 했다.
“사악한 도로 임금에 아첨해서 나쁜 길로 이끈다. 임금의 눈과 귀를 막아 듣기좋은 소리만 하고 임금의 없으면 말이 변한다. 흑백을 가릴 줄 모르고 시비가 분명치 않다. 국내외 백성들이 임금의 죄악을 모조리 파악하게 만드는 신하가 바로 망국신이다.”

율곡 이이는 <율곡전서>에서 폭군과 용군, 혼군의 차이를 설명했다.

 

■간신과 망국신
굳이 중국의 사례를 찾을 필요도 없겠다. 고려말 학자인 이곡(1298~1351)은 신하를 6가지로 나누었다. 이곡은 일단 “임금노릇 하기 어렵고, 신하노릇도 하기 어렵다(爲君難 爲臣不易)”(논어 자로)를 인용했다.
“신하란 중신(重臣)과 권신(權臣)이 있고, 충신(忠臣)ㆍ직신(直臣)과 간신(姦臣)ㆍ사신(邪臣)이 있다.”
중신이 어떤 신하인가. 임금이 어리고 위태로운데 절조를 유지하고 대의를 주장한다. 자기 몸은 초개와 같이 버린다. 덕분에 나라가 안정을 찾아간다.
그러하면 권신은 누구인가. 세력에 기대 사리사욕을 채운다. 사람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르지만 감히 말을 못한다.
충신은 나랏일만 생각한다. 자기 집안일은 잊으며, 공적인 일만 생각할 뿐 사적인 일은 잊는다. 임금이 우환을 당하면 자신은 오욕을 감수한다. 치욕을 당하면 자신은 목숨을 버린다. 자기 몸은 돌아보지 않은 채 오직 의리만을 따른다.
간신은 누구인가. 번지르르한 말과 알랑거리는 낯빛으로 흉계를 꾸민다. 속임수를 서서 임금을 기만하고 백성을 우롱한다. 이익은 자기가 차지하고 원망은 임금에게 돌린다.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임금을 앞세우고 자기는 뒤로 빠진다. 뒤에서 떠밀어 구덩이에 빠뜨리고는 돌을 또 굴려서 떨어뜨린다. 자기가 직접 칼을 들어 해치지는 않지만 남을 빌려 죽인다. 이런 자는 역사가의 평을 빠져 나오지 못한다.
직신은 어떤 사람인가. 임금의 과오를 극력 간쟁하고, 허물이 있으면 숨김없이 직언한다. 거리낌 없이 과감하게 올곧은 발언을 하다가 죽은 뒤에야 그만둔다.
사신(邪臣)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묘하게 영합하고 불법으로 결탁한다. 종기의 고름을 빨고 치질을 핥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결국 망국의 화란이 일어난다. 아첨하여 총애를 구하고 탐욕을 부리며 부정을 일삼는 자는 모두 간사한 무리다.

 

■폭군과 혼군 사이
마찬가지로 문란한 지도자의 종류도 한가지가 아니다. 폭군, 혼군(昏君 혹은 暗君), 용군(庸君)으로 나눈다.
율곡 이이는 ‘임금의 도리(君道)를 논’하면서 이렇게 구별했다. 즉 폭군이란 “욕심이 지나치고 바깥의 유혹에 빠져 백성의 힘을 다 빼앗아 충언을 물리치면서 자기만 성스러운체 하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혼군(혹은 암군)은 어떤 사람인가.
“정치를 잘하려는 뜻은 있지만 총명하지 못해 현명한 자 대신 간사 무능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자들을 기용해서 패망하는 군주”라는 것이다. 용군은 “나약하고 과단성이 없어 구태만 되풀이 하다가 나라를 망치는 지도자다.”(<율곡전서> ‘잡저·동호문답’)
대입해 보자. 재능은 탁월했으나 여인(말희·달기)의 유혹에 빠져 충신(종고·기자 등)의 말을 듣지 않고 폭정을 휘두른 하 걸왕과 상 주왕이 폭군의 대명사이다.
혼군은 누구일까. 진(秦) 2세 호해(재위 기원전 210~207)가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아방궁 공사를 만류하는 대신들에게 “내 맘대로 하고 싶어서 황제가 됐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일축했다. 사마천은 이를 두고 ‘인두축명(人頭畜鳴),’ 즉 ‘사람의 머리를 하고 짐승의 소리를 내뱉는다’고 혀를 찼다. 진(晋)혜제(290~307)는 어떤가. 큰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죽자 “왜 고기죽을 먹지 않는거냐(何不食肉미)”고 고개를 갸웃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조선의 연산군은 어떨까. 하필이면 호해를 롤모델로 삼아 ‘임금 마음대로 살겠다’고 했고, 간신 유자광과 임사홍을 믿었으니 굳이 분류하자면 혼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백성의 힘을 다 빼앗았다는 점에서는 폭군의 오명을 써도 되겠다.
이이의 분류법에 따르면 3자 간 경계는 모호하지만 미묘한 차이도 감지할 수 있다. 혼군과 용군의 경우 지도자의 무능에 강조점을 둔다면, 폭군은 독선과 불통에 따른 폭정의 뉘앙스가 물씬 풍긴다.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다는 점에서는 셋다 도긴개긴이지만….
 
■“황제는 야위지만 백성은 살찐다”
좋은 신하의 쓴소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려주는 당나라 현종의 일화도 있다.
즉 당나라 현종은 처음엔 명군이었다가, 훗날 혼군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호화잔치가 열리면 현종은 늘 안절부절 못해 ‘이 일은 한휴(韓休·673~740)가 아느냐’고 물었다.
한휴의 사나운 간언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현종이 ‘이 일을 한휴가 아느냐’고 묻는 그 순간, 이미 한휴의 매서운 상소문이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현종의 좌우 신하들이 한휴를 겨냥해서 현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휴가 정승이 된 이후에 폐하께서 전보다 사뭇 여위셨습니다.”
그러나 현종은 한탄하면서 이렇게 대꾸했단다.
“나는 비록 여위었지만 천하 백성은 살쪘구나.’

 

■연산군 시대에도 직언은 있었다 
이 한휴의 일화는 연산군 시절인 1495년(연산군 1년) 손순효가 다름아닌 연산군에게 감히 전해올린 상소문에 나와있다. 당시 판중추부사 손순효는 바른 말을 했던 대간들이 잡혀가는 불상사가 발생하자 ‘다른 사람들은 입을 모두 닫고 있는 상황에서 분연히 일어난 것’이다.
<연산군일기>는 “다른 재상들이 입을 닫고 있는 가운데 손순효의 상소가 올라오자 모두들 시원하게 여겼다”고 기록했다.
손순효는 언로(言路)를 막으면 안된다고 감히 아뢰면서 “전하께서는 요순 같은 성군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그 이하의 임금이 되겠습니까”라고 다그쳤다. 그러고보면 연산군에게는 그나마 이런 ‘목숨을 내놓고 바른 말을 했던’ 신하들이 있기는 했다. 그 말을 임금이 잘 들었다면 혼군이니 폭군이니 하는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하기야 <주역>의 64괘 중에는 이런 괘가 있다. 명이(明夷)라는 괘인데, 이것은 암군(暗君)이 위에 있으면 밝은 신하가 해침을 당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신하라도 임금을 잘못 만나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불현듯 이런 구절이 떠오른다. <한비자> ‘관행(觀行)’이다. 명군과 암군의 차이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남는 것으로 부족분을 채우고, 짧은 것은 긴 것으로 이어나가는 사람을 현명한 임금이라 한다.(以有餘補不足 以長續短之謂明君)”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