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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원숭이 돌도끼와 사람의 돌도끼는 같다?


땅속에서 출토된 돌도끼는 예부터 하늘의 신물(神物)로 여겨졌다.

번개와 벼락신인 뇌공이 내려준 뇌부(雷斧)라 해서 신성시했다.

갈아 먹으면 말끔히 낫는다는 믿음 때문인지 임질(요로결석?)을 앓던 조선 세종 임금을 위해 돌도끼를 찾아 바쳤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카푸친 원숭이가 돌도끼를 만드는 모습

"임질을 앓은 사람들은 ‘이 병은 비록 나았다가도 발작한다’고 한다.” “찌르고 아픈 증세가 즉시 발작하곤 한다.”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이 더욱 심하다.”(<세종실록)

세종이 스스로 밝힌 임질의 증세다. 그런데 당대의 의관은 임질에는 돌도끼를 갈아먹ㅇ면 즉효라고 고한다.

"<대전본초>에 이르길 ‘벽력침(뇌부)은 독이 없고, 대경실심(大驚失心)하고 황홀하여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증세와 아울러 하림(下淋·이질과 임질을 아울러 일컫는 말)을 관장하는데, 갈아서 복용하거나 또는 이를 달여서 복용합니다.”(<세종실록>)

벽력침, 혹은 뇌부(雷斧)는 지금으로 치면 우연히 발견되는 선사시대의 석기를 일컫는다. 돌칼이나 돌도끼, 돌화살촉 등이다.

세종 시대의 의관은 <대전본초>를 인용하면서 “임질 치료제로 돌칼과 돌도끼, 혹은 돌화살촉 등을 쓴다”면서 “이를 널리 구하라는 명을 내려달라”고 아뢴 것이다. 실제로 <세종실록>을 보면 전국 각지에서 발견된 돌칼과 돌화살촉을 바친 이들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돌도끼는 하늘의 작품이 아니다. 330만년~170만년 전 케냐와 탄자니아 등에서 터전을 잡았던 인류의 조상이 발명한 ‘문명의 도구’이다.

자연돌을 쓰는 데 만족했던 고인류는 어느 순간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돌과 돌을 부딪쳐 떨어져나간 날카로운 조각으로 음식을 다루는 법을 발명한 것이다.

1930년대 탄자니아 올드바이 협곡에서 돌도끼를 확인한 부부 고고학자 루이스 리키와 매리 리키는 ‘인류의 첫번째 혁명’이라 규정했다.

원숭이가 만든 돌도끼(왼쪽)과 고인류가 제작한 돌도끼.

그런데 제아무리 전문가인들 인공적으로 만든건지, 자연적으로 깨진건지 어찌 구분할 수 있다는 건가.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은 “하나의 돌에 3개 이상의 타격흔이 보이는 등 사람의 손길이 역력한 경우 석기라 할 수 있다”고 전한다.

어떻든 돌도끼야말로 인류와 다른 동물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지표였다. 그러나 최근 희한한 현상이 목격됐다.

브라질의 한 국립공원에서 사는 카푸친 원숭이는 돌(석영)을 깨서 가루를 핥아먹는 습관을 갖고 있다. 몇몇 고고학자가 원숭이가 깬 돌을 관찰하다가 새삼스레 중요한 착안점을 발견했다.

원숭이가 깬 돌들이 200만~300만 년 전 고인류가 제작한 돌도끼들과 흡사했다. 카푸친 원숭이들이 왜 돌(석영)을 깨서 그 가루를 핥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석영에 포함된 미네랄 성분을 보충하려는 건지, 소화기 건강을 위해서인지 알 수 없다. 문제는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카푸친 원숭이가 ‘아무런 의도없이’ 돌도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직 원숭이가 자기가 만든 도구를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원숭이가 습관적으로 만든 물건을 과연 ‘도구’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결정적인 시사점이다.

앞으로 고고학자들의 세삼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석기가 출현했다고 해서, 무조건 ‘고인류의 작품’으로 호들갑 떨며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원숭이가 아무 생각없이 만든 물건일 수 있으니까…. 구석기학자들, 더 힘들게 생겼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