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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흥부는 연흥부도 박흥부도 아닌 장흥부였다?

<흥부전>은 판소리 ‘흥부가’에서 비롯된 판소리계 고전소설이다.

 

정·순조 시대의 명창인 권삼득(1771~1841)이 이 판소리 ‘흥부가’를 장기로 삼았다는 것으로 볼 때 18세기 이전부터 존재했음이 분명하다.

 

‘제비를 후리러 나간다. 복희씨 맺은 그물을 에후리쳐 둘러메고 망당산(방장산의 잘못, 지리산)으로 나간다.…후여 떳다 저 제비야…보물 박씨 물어다 천하부자 되어보자. 허허 저 제비.’

 

권삼득의 제비몰이는 ‘흥부가’의 사설과 더늠(판소리 명창이 새롭게 만들거나 다듬은 소리대목)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 ‘흥부가’와 <흥부전>의 발상지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져왔다.

1860년대 간행된 <흥부전> 경판본과 1870~73년작인 신재효(1812~1884)의 개작본은 경상·전라 혹은 충청·전라·경상도의 접도지역이라 표현했다.

 

특히 흥부가 놀부에 의해 쫓겨난 뒤에 떠돈 17개 마을 가운데 13곳이 전라도 지역이었다.

 

그 중에서도 전북이, 전북 중에서도 남원이 지목됐다.

 

흥부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산안(남원 산내면)이고, “고향 근처에서 도로 찾아간 곳을 당도했는데, 이곳이 바로 복덕(福德)”(신재효의 개작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권삼득의 제비몰이에 등장하는 망당산(방장산)이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어서 지리산 자락의 고을이 유력후보지로 꼽였다.

 

특히 남원군 동면과 아영면 주민들은 서로 ‘흥부의 고향’임을 자처해왔다. 남원에서 흥부의 모델로 지목하는 인물은 춘보라는 천석꾼이다.

 

성이 임씨(혹은 박씨)로 알려진 춘보는 흉년이 들면 쌀을 풀어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한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실제로 마을사람들은 인심좋고 덕을 쌓은 춘보를 위해 때마다 제사를 지냈다.

 

이 춘보라는 ‘복덕’의 인물을 모델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흥부전>이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흥부의 성씨(연씨 혹은 박씨)는 제비(연)가 물어준 박씨 때문에 붙은 것이다.

 

그런데 엊그제 공개된 1833년 필사본(<흥보만보록(사진)>)의 내용이 아주 재미있다.

 

주인공인 흥부가 무과에 급제하며, 덕수 장(張)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연흥부도, 박흥부도 아닌 장흥부다. 덕수 장씨의 원 시조는 고려말 귀화한 위그르족 출신인 장순룡이다.

 

흥부의 실제 모델이 위구르 귀화인 장순룡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흥부의 고향도 전북 남원이 아니라 평양 서촌이라 했다. 무미건조한 시대에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