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을 남겨주세요!

  1. 황태하 2016.09.20 02:07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황금보검" 글 2편,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많은 문헌과 자료로 아주 쉽게, 흥미진진하게 쓰신 글 감사합니다. 특히 흉노족 관련 대목은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만, 말씀하신 주장을 학계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요? 많이 궁금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2. 이예슬 2016.09.20 01:03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제가 며칠 전 북한산성에 금괴가 숨겨져 있다는 기사를 이곳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기사에서는 고종이 헤이그 밀사로 임명된 이지용에게 매장된 지도를 주었다고 하는데 찾아보니까 이지용은 고종의 사촌이고, 이완용과 함께 을사조약을 체결한 이며, 현재 친일파로 알려져 있는 인물인데 기사에 나와있는 이지용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습니다. 동명이인이었는지 아니면 지금 현재 친일파로 알려진 이지용인지 궁금해서 이렇게 방명록을 남깁니다.

  3. 지나가다 2016.09.19 23:52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
    이기환 기자님의 쿠쉬나메 관련 기사를 읽고 거기에 댓글을 몇자 휘갈겨 남겼는데.. 역사학자들이 쿠쉬나메를
    우습게(?)보는것에 대해 반박할 자료가 될겁니다.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4. 김상용피겨코치님 2016.07.13 16:34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상용님컴퓨터본다김상용님휴대폰본다

  5. 김상용피겨코치님 2016.07.13 16:34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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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김상용피겨코치님 2016.07.13 16:34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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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이춘영 2016.06.08 20:16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최근에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를 알게되어 팟캐스트로 재미있게 잘 듣고 있습니다.
    듣는 중에 "35회 낙타를 굶어 죽인 태조 왕건의 숨은 뜻"에서
    발해가 멸망한 것도 오래전이고 굳이 거란과 갈등을 빚어 전쟁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는 이기환님의
    생각에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되는 바가 있어 몇자 적어 봅니다.
    당시 고려는 한반도를 통일한지 몇년 되지 않았고(936) 거란은 후진으로부터 연운 16주를 얻은지(937)
    얼마 안되는 시점(942)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란이 고려에 사신과 낙타를 보낸 것은 염탐의 성격이 짙다고 생각합니다.
    즉 고려가 낙타를 받든 안 받든 거란의 입장에서는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고려가 힘이 약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침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란의 주요 상대는 중원의 송나라였기 때문에 고려의 군사력과 입장등을 확인해 본 것 뿐인 것입니다.
    반면 고려의 입장에서는 순순히 낙타를 받기 보다는 신생강국인 거란을 송나라와 함께 견제하는 것이
    긴 안목에서는 나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여러차례 거란과 전쟁을 벌이지만 고려가 방심하지 않고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협상에 따라서는 강동 6주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고려판 등거리외교)
    한편으로는 송나라로부터는 군사적 정치적 문화적 협력관계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송나라는 서긍을 사신으로 보내는 등 어떻게든 고려로부터 협력을 얻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의 가설은
    태조 왕건이 본래 중국 회하강 출신(중국학자 주장)이기 때문에 중원을 위협하는 거란에 대해
    천성적으로 거부반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암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가지 가정과 망상을 해 보았습니다..^^
    역사이야기를 너무 재밌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Favicon of http://leekihwan.khan.kr 이기환기자 2016.06.09 09:48 신고  수정/삭제

      좋은 지적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역사란 정답이 없어서 어떻게 공부해서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8. 오전후 2016.04.17 07:45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신천지성도입니다.

    현재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cbs방송의 진실을 알리고자 글을 올립니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법이 있는 나라에서 자기 교단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면제를 먹이고 손에 수갑을 채우고, 한달을 감금하고 구타하고 먹을것과 마실것도 주지않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하는 등 강제로 개종을 강요시키는 일을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라 생각하시는지요?


    대한민국 헌법 제 20조에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이에 대해 신천지 성도는 물론 모든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신앙의 자유를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있다할지라도 이 법을 준수하지 않는 단체가 있다면 이는 헌법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면, 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수년동안 한국교회의 연합회인 한기총과 기독교 방송cbs은 교단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권력과 언론의 힘을 이용해 거짓말을 지어내고 퍼뜨려 제가 신앙하고 있는 신천지 교회 성도들을 핍박해왔으며, 이단 상담가라는 목사는대한민국의 법을 무시하고 가족들을 시켜 강제로 손과 발에 수갑을 채우고, 수면제를 먹이고 구타를 하여 강압적으로 강제개종교육이라는 것을 하며 교묘히 법망을 피해가면서 수입을 벌어들여왔습니다.
     (법원에서 밝혀진 것만 무려 14억원)


    그들과 손을 잡은 cbs 기독교 방송은 신천지를 음해하기 위해 보도의 기본을 무시하고, 악마적 편집을 자행하여 언론들의 비판을 피하지 못했던 강제개종교육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거짓방송임을 증거했습니다.


    그들이 방영한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에서 강제개종교육에 끌려간 사람들을 보세요. 하나같이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자기의사를 표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두 발로 집에 걸어들어간 사람이 조금후에 여러명에 둘러싸여 휠체어에 이불을 덮혀진채 나옵니다. 하루고 이틀이고 삼일이고 개종교육을 받는 청년의 옷이 같은 옷입니다.
     (감금증거)


    한기총과 cbs는 이런 불법적이고 파렴치한 짓을 감행하고도 신천지가 지역사회를 위해 전국각지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세계평화를 위한 일을 하며 각 지역에서 감사패를 받고 해외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국위선양의 일에 대해 훼방하며 반사회, 반국가적 단체라고 하니, 국가를 위한 일은 반사회, 반국가적인 일이고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 저지른 파렴치한 강제개종교육은 국위선양하는 일이란 말입니까?

    이에 대한 옳고 그름은 초등학생도 알만한 것 아닌가요?

    신천지에 대한 거짓이미지를 만들어 내보낸 피디수첩 이후 지난 2007년 검찰에서 신천지에 대한 세밀한 조사가 있었습니다

     폭행, 감금, 납치, 가출, 이혼 조장등 모든 것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습니다.

    "가출의 원인이 신천지교회가 아닌 강제개종교육 때문이란 사실은 지난해 7월 검찰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내용입니다."


     대한민국의 법을 어기면서 강제로 강제개종교육을 하고, 방송법도 어기며 거짓방송을 내보내 전 국민을 속인 한기총과 cbs가 반사회, 반국가 단체 아닌가요?

     저는 어려서부터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고 바른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을 받았으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부모가 바른 사람이 되라 가르치겠지요.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악을 선이라 하고 선을 악하다 하며 살아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물론이거니와 신천지 성도님들도 모두 한 때는 한기총 안에서 각자의 직책을 맡아 일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 대해 모를 것이 없습니다.

    한기총이 부패하고 횡령하고 또 거듭 부패하니, 그 안에서 신앙하는 것이 성경에 맞지 않다고 판단하여 고린도후서 6장 14-18절과 같이 그 곳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따르는 것은 성경 말씀이지, 그들의 거짓된 교리와 부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부패하듯, 종교인도 돈을 사랑하게 되면 부패합니다.

     또한 돈을 가진 자가 권력을 가지는 자가 되는 세상이니 그들은 권력도 있습니다. 허나, 돈과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그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다 옳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cbs등 기독언론들이 옹호하고 있는 기성교단의 내부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봐주십시오

    이들 일부 기독교 언론들은 신천지교회가 폭행을 일삼는다는 식의 거짓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신천지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지난 2007년 아내를 때려죽이도록 부추긴 세력은 어디 소속입니까?

    현재까지 살인을 저지른 남편을 옹호하고 있는 자들은 기성 교단 소속 목회자들 아닌가요?

     신천지교회가 가출을 조장한다고 거짓 보도를 하지만 폭행과 감금을 동반한 강제개종교육을 강요해 정작 가족을 집 밖으로 내몬 사람들이 바로 기성 교단 소속의 이단상담사들 아닙니까?

    신천지교회가 금품갈취를 하고 있다고 거짓 주장하지만 십일조를 강요하며 긁어모은 교인들의 돈을 갈취하는 쪽은 과연 어디입니까?


    CBS는 ‘신천지 OUT’ 운동이 아니라 800억 원 대 횡령 혐의를 받는 목사가 소속된 교단에 대해 OUT을 외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이 물질을 내놓으라 하는 부분이 있다. 교회에 그걸 내야 한다’는 설교를 하며 이단 의혹을 받는 목사에게 월 800만 원의 후원금을 받고 설교 방송을 해주는 쪽이 바로 cbs입니다.

    온갖 거짓으로 국민을 속이며, 대한민국의 법을 무시하고 있는 반사회, 반국가적인 한기총과 cbs는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신천지가 아니라, 성추행 유죄 판결을 받은 목사가 버젓이 설교를 하는 대형교회의 ‘OUT’운동을 먼저 실시해야 합니다.


    또한 부패와 부도덕으로 물들어 교인들이 스스로 등을 돌리고 있는 지금의 한국교회 부패를 out시켜야 합니다.

    부패와 죄를 범하는 한기총과 cbs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까요?


    종교편향적 시각을 거두시고 감춰진 진실에 눈을 뜨시길 바랍니다.    
       

  9. Favicon of http://www.uclid.co.kr 이산천 2016.03.27 19:21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의 고전 송도부기에 미친 사람입니다.
    송도부기는 서양부기의 원본입니다.
    송도부기가 인도 아랍을 거쳐 베니스로 그리고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 온거죠...
    금속활자처럼...
    그 송도부기 논리를 컴퓨터화 하여 농업 회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보급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현재 세무사 사무실의 99%가 쓰고 있는 회계 프로그램 회사의 공동창업자였기도 합니다.
    한 번 보시고, 그 다음을 생각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10. 이재우 2016.01.17 02:15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기환 기자님. 제가 예전의 오래전에 기자님에게 조선왕조의 역대 27명의 임금들 재위기간중 각 임금별로
    몇 건의 반란,민란들이 일어났는지 제가 질문을 드렸을때 기자님께서는 저의 이 질문에 대해서 기사로 쓰는 것을
    고려해 보시겠다고 말씀하신지가 오래인데 아직도 아무 답변이 없으시네요. 정말 죄송하지만 이 부분은
    너무하시는 것이 아닌지요?
    도대체 언제 저의 이 질문에 대한 답변 기사를 쓰실 것인지요?
    그리고 다음으로 제가 예전에 이야기를 드린대로 기자님께서는 조선왕조세종실록을 많이 검색을 하셔서
    그런지 몰라도 세종대왕의 잘못된 행동들에 대해서 많이 쓰셨습니다.
    세종의 불합리한 소위 '똥고집.' 인사나 세종의 잔혹성의 대표적인 사건인 세종때 도적이 많다고 해서
    도적의 발목 힘줄을 끊어서 제대로 뛰지 못하게 하는 단근형을 만들어 시행한 것이나 또 세종의 잔혹성의
    극치인 '元非.'(원비.)라는 여성의 재판 사건(조선왕조세종실록의 세종실록 12년{1430년.} 10월 19일의
    4번째 기사임.)에서 원비는 남편 살해의 누명을 쓰고 곤장을 무려 510대를 맞고 그것도 모잘라서 압슬형을
    65번(조선에서는 압슬형과 단근질의 경우 13번을 하는 것을 한 차례로 치지요. 이 세종실록의 기사에서
    원비는 압슬형을 5차례 당했다고 하니 13곱하기 5를 하면 65번이 되어서 원비는 이때 압슬형을 65번을 당한 것이죠.
    아마도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가장 많이 압슬형을 당한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잘못 아는 몰라도 말이죠.
    원비라는 이 여성이 말이죠.)을 당해서 결국 고문에 견디지 못하고 허위자백을 해서 능지처참까지 당하는
    참혹한 일을 소개하셨고(기자님은 안 쓰셨지만 또 세종때 원비와 더불어 가장 혹독한 고문을 당한 사람이
    바로 어머니를 구타한 누명을 쓴 '閔敍.'{민서.}의 경우도 이때 곤장을 무려 670대를 맞고, 압슬형을
    39번을 당하고 귀양을 가고 여연부{閭延府.}의 군사로 영구히 편입하게 되는 혹독한 형벌을 당했지요.
    조선왕조실록홈페지에서 한자로 '閔敍.'로 검색해서 세종실록의 기사들을 보시면 나옵니다.)여담이지만
    고려왕조는 이점에서 조선왕조에 비교가 안 되게 훌륭한 인권왕조였지요. 그래서 철저하게 조선의
    입장에서 쓰여진 고려사 형법지의 서문에서는 고려는 500년 동안 '형벌이 느슨하고 사면이 잦았다.'라고
    고려에 대해서 비하하는 발언을 썼지만 고려사 혹리열전의 서문을 보면 '고려는 나라를 관대하게 통치해
    참혹한 형벌이 없었지만 변란이 잦아진 중엽부터 잔혹한 풍조가 비로소 일어났다'라고 솔직히 고려의 장점을
    부분적으로 인정했고, 또 결정적으로 조선왕조중종실록의 중종 13년(1518년) 10월 23일 5번째기사를 보면
    고려는 '죄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았으니 이는 취할 만하다.'고 고려의 너그러운 형벌 제도를 전면적으로
    솔직히 인정하고 찬사를 보내는 면을 보입니다.
    또 고려사 형법지의 '형장(刑杖)의 규격.' 편을 보면 고려의 죄인에 대한 고문방법은 등에 때리는 곤장형과
    엉덩이에 때리는 곤장형과 매우 얇은 몽둥이로 때리는 태형. 이 3가지밖에 없었고, 고려 중기 인종때 고려를 1달간 방문하고
    돌아간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의 제16권 관부(官府) 영어(囹圄) 편을 보면 고려는 곤장형을 10대~100대밖에
    안 때린다고 했고, 또 여기서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서 대놓고 '오랑캐.'라고 비하를 했지만 고려 사람들이
    성격이 본디 인자해서 죽을 죄를 지은 사람들도 거의 용서해서 귀양을 보내는데 그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서긍은 고려도 가혹한 고문을 한 것을 하나 소개를 했는데 그것은 죄인을 앉힌 다음에
    등을 세게 눌러서 가슴과 다리가 서로 닿게 만들어서 피부가 터진 다음에야 그만두는 형벌을 쓴다고
    하긴 했지만 이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이 서긍은 자신의 이 책에서 고려 사람들이 성격이
    인자해서 죽을 죄를 지은 사람도 거의 용서해서 귀양보내는 것으로 그친다고 해놓고 이런 혹형을
    실시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고, 또 여기서 고려는 지방에서는 일체 죄인에 대한 고문과
    사형집행을 할 수 없고 수도인 개성에서만 할 수 있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고(세계 봉건왕조
    역사상 어느 왕조가 죄인에 대한 고문과 처형은 오직 수도에서만 하도록 했다는 말이겠습니까?),
    또 여기서 우리나라 사람을 '오랑캐.'라고 대놓고 비하를 해서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고,
    또 철저하게 조선의 입장에서 쓰여진 고려시대 역사서인 고려사 형법지에서 고려의 죄인에 대한 고문방법으로
    서긍이 말한 고문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을 볼때 서긍의 이 고문 방법은 논리적으로 허구라고 할 수 있겠지요.
    또 고려사의 형법지의 '사형(死刑)1) 두 종류.' 를 보면 고려의 사형방법은 교수형과 참형밖에 없어서
    조선왕조 500년 동안 능지처참을 밥먹듯이 시행한 조선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지요.
    원비와 민서가 고려시대에 태어났으면 비록 남편살해와 어머니 구타의 누명을 써서 고문을 당했어도
    원비와 민서는 곤장 100대를 맞고 참형에 처해지는 것에 그쳤겠지요.
    그리고 조선왕조태종실록의 태종 4년(1404년) 10월 28일(병신) 3번째기사를 보면 조선의 정승들의 기관인
    의정부에서 태종에게 말하기를 '고려 왕조는 서울에는 율학을 두고 지방에는 수령을 도와서 재판의 일만 전담하는
    '법조.'라는 관리를 두어서 죄인을 판결하는데 착오가 없었는데 조선에서는 '법조.'직을 폐지하고 형구를 제멋대로 만들어서
    고문 때문에 죽는 사람이 자못 많습니다.'라고 했고 이것을 개선해야 한다는 말을 했고, 여기에 대해서
    태종은 한 마디도 논리적으로 반론하지 못하고 의정부의 건의를 모두 받아들였다고 나옵니다.
    그러니 원비와 민서, 이 두 사람이 고려때 태어났으면 어쩌면 혹독한 고문을 당하지 않고 석방되어서 잘 살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죠.
    이것이 고려왕조가 조선왕조에 비해서 훨씬 훌륭한 왕조라는 증거중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말이 길어져서 죄송한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기자님께서는 이번에는 역대 고려황제,왕들 34명과 그들의 황후,왕비들의
    초상화들을 세종이 모조리 불태운 만행을 소개하셨는데요.
    기자님도 쓰셨듯이 세종이 역대 고려 황제,왕들 34명과 그들의 황후,왕비들의 초상화들을 모조리
    불태운 만행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법으로 치면 가히 무기징역감입니다.
    2008년에 어떤 한 사람이 국보 1호인 숭례문 하나를 불태웠어도 그 사람은 장기간 감옥에 가고 국민들로부터
    소위 온갖 '죽일 놈.' 식의 욕들을 먹었습니다.
    세종의 지금 이 만행은 2008년에 어떤 한 사람이 국보 1호인 숭례문 하나를 불태운 것보다 비교도 안 되는
    훨씬 더한 만행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역대 고려의 34명의 고려 황제와 왕들, 그리고 황후와 왕후 초상화들은 중요한 인물들의 경우, 예를 들어서
    태조 왕건이나 광종,성종,현종,문종,공민왕,노국공주의 초상화 같은 것들은 당연히 국보로 지정이 되었을
    것이고, 또 그밖의 초상화들도 거의 대부분 최소한 보물로 지정이 되겠지요.
    안 그렇겠습니까?
    그리고 만약에 다음에 세종대왕의 만행들에 대해서 또 쓰실거면 제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두 개를
    드리겠습니다.
    우선 조선왕조실록홈페이지에서 한글로 '사냥.'으로 검색을 하면 세종대왕은 역대 조선의 27명의
    임금들중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636건으로 1위로 검색이 되고 이것은 조선왕조 역사상, 아니 단군~조선
    순종때까지의 역대 우리나라의 봉건왕조사회에서 최고의 폭군으로 꼽히는 연산군의 3배에 해당되는
    건수이고, 한글 검색 '사냥.' 기록으로 역대 2위인 성종의 411건에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많은 건수입니다.
    더군다나 세종은 재위 2년 차인 1419년 4월 한 달 동안에 무려 7번의 사냥을 나가는 정신나간 짓을
    했고, 또 이렇게 사냥에 미쳐서 사냥을 계속 나간 결과 결국 대형사고를 친 사건도 있었습니다.
    구판 조선왕조실록홈페이지의 조선왕조세종실록의 세종 51권, 13년(1431 신해 / 명 선덕(宣德) 6년)
    2월 20일(을묘) 1번째기사 포천 매장원에서 추위에 얼고 굶주린 인마를 구호하다 라는 기사를 보면
    세종이 추운 겨울에 무리하게 사냥을 나갔다가 대형참사가 터져서 세종의 수행원 26명이 얼어죽는
    참사가 터졌습니다.
    이것을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비유를 하면 만약에 어떤 우리나라 대통령이 여름 휴가때 사냥을
    나갔는데 대통령이 사냥을 나간 그 곳의 지형이 험하고 위험한 지대로 소문이 났는데 대통령이 이것을 알면서도
    그곳으로 사냥을 무리하게 나갔다가 대형사고가 터져서 그 대통령의 수행원 26명이 죽는 참사가 터진 것에
    비유를 할 수 있겠지요.
    만약에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 중에서 재임기간중에 이런 사고를 냈다면 과연 그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절대 불가능하겠죠. 당장 탄핵을 당해서 쫓겨날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윤리로 보면 세종은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절대 성군도 아니고 위인도 아니고 소위
    그저 '죽일 놈.'밖에 안 되겠지요. 안 그렇겠습니까?
    그리고 다음으로 세종의 또 하나 최악의 썩어빠진 면으로 세종이 조선 태조 이성계~세종 자신때까지
    역대 최고의 부정부패 사건을 저지른 조말생을 사형에 처하지 않고(당시 조선의 법으로는 뇌물을 무게로
    환산해서 80관 이상이면 교수형에 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말생은 이때 밝혀진 액수로만 780관의
    뇌물을 받아서 조선의 법의 뇌물의 사형기준의 거의 10배에 해당되는 부정부패를 저질렀고 또 밝혀지지 않은
    뇌물무게들은 당시 밝혀진 뇌물무게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수준이어서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조말생을
    사형에 처하라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세종은 끝내 무시하고 조말생을 겨우 2년도 안 되는 귀양살이를 시켜놓고
    다시 조정 대신으로 복귀를 시키는 파렴치한 행각을 저질렀습니다.
    이러니 세종때 부정부패가 매우 심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조선 태조~세종때까지 역대 최고의 부정부패를 저지른 조말생도 용서를 했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부정부패를
    제대로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형평성 면에서 말이죠.
    기자님이 나중에 세종대왕에 대해서 안 좋은 기사를 쓰실때 세종대왕의 최대의 썩어빠진 면인 '사냥.'에 대한
    기록들과 무리한 사냥으로 인한 참사 기사와 세종이 조선 태조 이성계~세종때까지 역대 최대의 부정부패를 저질러서
    당시 조선의 법으로 치면 사형도 모자란 조말생을 너그럽게 용서한 파렴치한 면들도 꼭 써 주십시오.
    그래야 국민들이 세종대왕의 썩어빠진 면을 제대로 알 수 있으니 말이죠.
    그리고 제가 이미 전에 이야기를 드렸지만 근본적으로 조선왕조실록홈페이지에서 안 좋은 사건들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성군이라고 하는 세종과 세종과 더불어 조선전기 최고의 성군이라고 하는 성종은
    거의 대개의 사건들에서 역대 조선의 27명의 임금들중 베스트 5위안에 들어갔습니다.
    조선왕조실록홈페이지에서 한글로 '흉년.'으로 검색하면 세종과 성종은 각각 역대 2위:(세종.686건.)
    역대 3위:(성종. 608건.)을 기록했고, 한자로 '餓死.'(굶어죽음.)로 검색하면 조선왕조실록홈페이지의
    한문 원본판(국역판 말고 말이죠.)기준으로 세종과 성종은 각각 역대 3위:(세종. 31건. 대표적으로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 말기인 1440년대에 황해도에서 몇년을 연속해서 흉년이 들어서 황해도 해주의 경우 주민의 20%가 굶어죽는
    참혹한 면이 있었고 이로 인해서 황해도에서 여러 인육사태가 벌어졌다고 세종실록에 나오지요.)와 역대 1위(성종. 49건.)를
    기록했고, 한글로 '뇌물.'을 제목으로 검색하면 세종과 성종은 각각 역대 8위:(세종. 175건.)와 역대 2위:(성종. 367건.)을
    기록했고, 이미 방금 위의 글에서 제가 이야기를 드렸지만 세종은 세종이 조선 태조 이성계~세종때까지
    역대 최대의 부정부패를 저질러서 당시 조선의 법으로 치면 사형도 모자란 조말생을 너그럽게 용서한 파렴치한 면을
    보였고, 흔히 동양의 봉건왕조사회에서 임금이 정치는 하지 않고 놀러만 나가는 대표적인 행위인 '사냥.'의 경우도
    조선왕조실록홈페이지에서 한글로 '사냥.'으로 검색을 하면 세종과 성종은 각각 역대 1위:(세종. 636건.)와 역대 2위:
    (성종. 411건.)을 저질렀고 세종은 가히 '사냥왕.'이라는 악평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고, 또 제가 이미 위에서
    이야기를 했지만 세종은 재위 2년 차인 1419년 4월 한 달 동안에 무려 7번의 사냥을 나가는 정신나간 짓을
    했고, 또 이렇게 사냥에 미쳐서 사냥을 계속 나간 결과 결국 대형사고를 친 사건도 있었습니다.
    구판 조선왕조실록홈페이지의 조선왕조세종실록의 세종 51권, 13년(1431 신해 / 명 선덕(宣德) 6년)
    2월 20일(을묘) 1번째기사 포천 매장원에서 추위에 얼고 굶주린 인마를 구호하다 라는 기사를 보면
    세종이 추운 겨울에 무리하게 사냥을 나갔다가 대형참사가 터져서 세종의 수행원 26명이 얼어죽는
    참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한글로 '능지처사.'로 검색을 해서 한문 원본편을 보면 세종과 성종은 각각 역대 2위:(세종. 63건.)와
    역대 1위:(성종. 71건.)을 기록하는 잔혹성을 보였고, 그래서 성종의 경우는 '능지처참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고, 또 조선왕조실록홈페이지에서 한자로 '水災.'(수재. 홍수.)로
    검색을 해서 한문원본판을 보면(국역판 말고 말이죠.)세종의 경우 역대 2위:(세종. 66건.)을 기록했고, 또 한자로
    '旱災.'(한재. 가뭄.)으로 검색을 해서 한문원본판을 보면(국역판 말고 말이죠.)세종과 성종은 각각 역대 4위:(세종. 98건.)와
    역대 2위:(성종. 148건.)를 기록했고, 또 한자로 '盜賊.'(도적.)으로 검색을 해서 한문원본판을 보면(국역판 말고 말이죠.)
    세종과 성종은 각각 역대 5위: (세종. 84건.)와 역대 2위:(성종. 172건.)을 기록했고, 관청과 민가를 약탈하고 불질러서
    사실상 반역자와 다를 것이 없는 '火賊.'(화적.)의 경우 조선왕조실록홈페이지에서 한자로 '火賊.'(화적.)으로 검색하고
    한문원본판을 보면(국역판 말고 말이죠.)세종은 조선말의 고종에 이어서 역대 2위(40건.)를 기록했고, 또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극치의 행사로 매년 1월 1일과 동짓날, 그리고 중국 황제와 황후,황태자의 생일때 조선의 임금들과 신하들이
    모여서 중국 황제가 있는 궁궐쪽을 향해 만세를 부르고 잔치를 벌이는 관습인 '望闕禮.'(망궐례.)의 경우 세종과 성종은
    조선왕조실록홈페이지에서 한자로 '望闕禮.'(망궐례.)로 검색을 하면 공동으로 역대 3위(51건.)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안 좋은 사건들에서 역대 조선의 27명들중에서 거의 대개 베스트 5위안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런 세종이 우리나라 4천년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무조건 칭해지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이겠습니까?
    허균이 '홍길동전.'을 쓰면서 '홍길동전.'의 배경을 조선 최고의 폭군인 연산군이나 문정왕후의 폭정으로 나라가
    안 망한 것이 다행이었던 명종 시대나 '조일전쟁.'때의 선조시대나(조선왕조원판선조실록이나 선조수정실록이나
    조선의 야사모음집인 '연려실기술.'과 기타 다른 조선의 야사들에서 '조일전쟁.' 당시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극도의 궁핍함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많은 반란,민란들이 일어났다고 나오지요.)'조일전쟁.' 당시와 마찬가지로
    반란,민란들이 많았던 광해군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 않고 흔히 우리가 조선 최고의 전성기로 칭하는 세종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유가 조선왕조세종실록의 저 세종에 대한 안 좋은 수많은 기록들을 보면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한글창제나 측우기를 비롯한 각종 과학기계 발명이나 중국을 능가하는 화약기술 보유나 각종 학문 서적 출판들의
    문화적 업적들과 4군 6진 개척의 업적만 가지고 세종을 무조건 성군으로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지요.
    제가 다시 이야기를 드리지만 기자님께서는 평소에 세종대왕의 잘못되고 파렴치한 면들을 많이 쓰셨으니 세종대왕에
    대해서 윤리적으로나 능력적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한 책을 내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즉, 지금 다는 아니지만 대다수의 한국 국사학자들이 최소한의 양심과 양식도 없이 세종대왕을 무조건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우리나라 4천년 역사상 최고의 위인으로 조작해서 소위 '세비어천가.'만 쓰고 있는 파렴치한 행태를 바로잡아서
    국민들이 세종대왕에 대해서 올바로 알 수 있도록 세종대왕의 인격적,능력적인 장단점들을 사실대로 제대로 평가한
    책을 내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말씀 드리는 것인데, 죄송하지만 제가 예전의 오래전에 기자님에게 조선왕조의 역대 27명의
    임금들 재위기간중 각 임금별로 몇 건의 반란,민란들이 일어났는지 제가 질문을 드렸을때 기자님께서는
    저의 이 질문에 대해서 기사로 쓰는 것을 고려해 보시겠다고 말씀하신지가 오래인데 아직도 아무 답변이 없으시네요.
    정말 죄송하지만 이 부분은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은 빨리 결단을 내리셔서 기사로 써 주시길 꼭 좀 부탁 드립니다.
    이상으로 마칩니다. 그럼...............................